“한글印章 읽기쉽고 아름답게”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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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글씨체로 새긴 인장들(위)과 보기 쉽고 아름다운 글씨체로 만든 인장들. 글씨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치지 않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알아보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글씨체로 새긴 인장들(위)과 보기 쉽고 아름다운 글씨체로 만든 인장들. 글씨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치지 않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획을 심하게 구부리고 변형시킨 한글 인장(印章·도장)의 글씨체. 그건 한글 글씨체의 왜곡입니다. 이 정체불명의 글씨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알아보기 어려운 한글 인장의 글씨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훈민정음체와 같은 전통 한글체나 최근 새롭게 개발된 세련되고 아름다운 글꼴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글씨체 인장은 주로 관공서나 기관 단체 등의 직인에서 발견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한글 인장의 글씨체 바꾸기 운동이 전개되어 왔지만 극히 일부 기관만 인장을 바꾸었을 뿐 대부분은 무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원로 과학사학자인 전상운(77) 문화재위원이 최근 글씨체 바꾸기 캠페인을 벌일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는 한자와 달리 한글의 경우 구불구불한 글씨체가 근원을 찾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글씨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전 위원의 설명.

“도장에서 볼 수 있는 꼬부랑 한글 글씨체는 한글의 역사나 서예의 역사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국적 불명이라는 말이죠. 우리 글씨를 망가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최근 들어 세련된 한글 글꼴이 많이 개발되고 있음에도 유독 도장에서만 형편없는 글씨체로 한글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인장 글씨체의 유래=19세기까지는 모두 한자 인장이었고 한자 인장은 대부분 전각(篆刻)이었다. 전각은 한자의 전서체(篆書體)나 예서체(隸書體)로 새긴 도장을 말한다. 서예나 그림에서 흔히 보는 낙관(落款)이 바로 이 전각이다. 전서와 예서는 모양을 구부리고 변형해 일종의 상형문자처럼 꾸민 글씨로, 한자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한글에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인장업자들 사이에선 한자를 유별나게 구부리고 변형시키는 것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유행은 한글 인장이 등장한 광복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이 같은 글씨체로 관공서의 직인을 새기면서 잘못된 인장 문화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종합예술 한글 인장을 위하여=한글 인장의 글씨체를 바꾸자는 움직임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이에 힘입어 1999년 새 국새는 대한민국 네 글자를 훈민정음체로 새겼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한 전각인은 “2001년 정부 기관에 직인을 바꿀 것을 요청했지만 바뀐 게 거의 없다”면서 “이대로 계속 갈 경우 우리의 전통 문화는 국적 불명의 글씨 공해에 숨이 막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민간 기관을 중심으로 인장의 한글 글씨체를 바꾸는 경우는 조금씩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3년 인장을 바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 사업회의 차재경 사무국장은 “2년 전 우리 직인의 글씨체가 집도 절도 없는 서체라는 지적을 받곤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 무례를 범한 것 같아 매우 부끄러웠다”면서 “곧바로 알기 쉬운 한글 서체의 직인으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전 위원은 인장의 한글 글씨체 바로잡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장은 전통적으로 서예와 조각이 합해진 종합예술입니다. 한글 인장의 글씨체 바로잡기는 인장의 예술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전통 문화를 올바르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훈민정음에 대한 우리의 예의이기도 합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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