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디자이너]<2>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 대표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10분


코멘트
《사람들은 공간의 힘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흥겨워지고, 어떤 곳에서는 편안해지며, 어떤 곳에서는 주눅이 들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변화는 공간 디자인, 즉 마감재의 색상과 질감, 공간의 크기, 조명의 색과 밝기, 가구와 물건 등에서 비롯된다.

마영범(48·인테리어 디자인회사 소갤러리 대표) 씨는 이처럼 공간을 통해 마음에 영향을 주고 행동을 유발시키는 디자이너다.》

○ 첨단 공간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청담동은 한국 상업공간 디자인의 트렌드의 발원지다. 이곳의 음식점, 술집, 미용실, 패션 매장은 반드시 솜씨 좋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션과 스타일에 관해 높은 안목을 가진 고객의 눈길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고, 새로운 재료와 가구, 독특한 오브제가 경쟁한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술품처럼 감상되지만 늘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다. 공간 디자인 하나의 수명은 호평을 받더라도 3년 정도.

마영범 대표와 전시형 씨가 공동 디자인한 카페 ‘느리게 걷기’(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정문 앞에 있는 입지를 살려 공원의 연장선이라는 개념으로 디자인했다. 도심에서 공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며 한지 등 전통 소재를 사용했다.

정상의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해 디자인을 한 뒤 1∼2년 안에 다시 고쳐야 한다는 게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속성이 그런 곳이다. 늘 새로워져야 존재가 증명된다. 이곳의 상업 공간들은 전시 기간이 긴 하나의 미술관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마 대표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디자인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이곳의 상업 공간들이 대부분 그의 손길을 거쳤다. 지금도 카페 ‘느리게 걷기’(공동설계), 유기농 퓨전 레스토랑 ‘마켓오’, 바 ‘클럽 어바웃’ 등 그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1993년에 그가 디자인한 패션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이영희 한국의상’ 청담동점은 7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장기 전시인 셈이다. 마 대표는 거대한 디자인 전시장인 이 곳에서 작품 전시가 끊이지 않는 예술가다.

○ 공간은 문화다

마 대표는 15년 넘게 이곳 공간 디자인의 정상권에 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두 가지다. 하나는 디자인하기 전에 해당 공간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식당이면 어떤 음식을 파는가, 재료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고 서비스할 것인가를 먼저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마감재, 가구, 동선 같은 구체적인 디자인은 전체적 프로그램 조망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 낸 공간은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를 낳는다. 1999년에 디자인한 ‘바바’는 ‘가라오케 바’라는 놀이 문화를 제안했다. 디자인에 앞서 상업 공간의 콘셉트와 프로그램을 먼저 내놓은 것이다.

두 번째 비결은 경험한 사실만 디자인한다는 것. 그는 노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노는 게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물건을 사랑한다. 그는 스피커 오디오 조명 의자 등을 한 번 좋아하면 중독될 정도로 깊이 빠진다. 이런 중독을 통해서 물건과 공간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난 뒤에야 디자인으로 표현한다. 외국 잡지의 디자인 사진을 보고 “이거 해보자” 하는 식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디자인은 배우는 게 아니라 배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영희 한국의상’ 청담동점(위)은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매장으로 전통과 현대를 잘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클럽 ‘어바웃’은 메인홀 와인바 가라오케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소용돌이치는 벽돌 기둥 등 독특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 디자인 중심은 사람

카페 ‘느리게 걷기’를 디자인할 때의 일이다. 천장에 수십 개의 전구를 달고, 전체를 한지로 가렸다. ‘느리게 걷기’의 은은한 한국적 조명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일품이다. 그러나 수명이 다한 전구를 어떻게 교체해야 할지? 전구 하나 때문에 한지 전체를 뜯을 수도 없다. 난감했다. 그때 해당 부분만 뚫어 전구를 갈고, 그 크기만큼 새 한지로 오려 붙인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면 전구의 수명이 다할 때마다 새로운 한지가 붙여지고, 한지 천장은 형태와 색이 다른 새로운 구성이 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구멍 뚫린 창호지를 그때그때 메워가듯. ‘느리게 걷기’의 자연스러운 조명은 이런 아이디어를 통해 지금도 형성되고 있다.

최근 그는 자연스럽고 생태학적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자연스러움을 처음부터 보여 주는 것은 가짜”라며 “‘느리게 걷기’의 천장 한지처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자연스러움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마 대표는 앞으로 상업 공간 디자인을 넘어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 하이테크보다 로테크를 지향하는 디자인, 생태학적인 디자인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다.

글=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kshin@design.co.kr

사진 제공=디자인하우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