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좌파 가라, 뉴레프트 뜬다… 新진보주의 선언

  • 입력 2005년 10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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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진보진영의 분배지상주의와 획일적 평등주의를 비판하는 ‘뉴레프트(New Left)’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본격화한 ‘뉴라이트’ 운동이 낡고 정체돼 있던 기존 보수세력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데 이어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좌편향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고 있는 것이다.

소장 경제학자들이 주도하는 학술계간지 ‘동향과 전망’ 여름호는 ‘신진보주의’를 표방한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 특집에 참여한 학자들은 개방, 혁신, 연대를 키워드로 삼아서 개방과 혁신을 통한 한국경제의 대외경쟁력 향상과 새로운 고용창출을 위한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 세계화와 시장개방에 반대해온 기존 진보진영과 뚜렷이 차별되는 목소리다.

이어 9월 초 열린우리당 내 개혁세력이 중심이 돼 출범한 신진보연대는 구좌파를 “국가적 통제와 계획을 통해 결과적 평등을 지향한다”고 비판하며 역시 신진보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이들은 구좌파를 획일적 평등주의와 분배지상주의로 비판하면서 실질적 평등과 자기혁신을 통한 사회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또 노무현 정부를 측면 지원해온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진보’를 모토로 하는 가칭 ‘선진정책포럼’이 연내 창립을 목표로 회원 확보에 나섰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임혁백(정치학) 고려대 교수, 김형기(경제학) 경북대 교수 등이 공동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형기 교수는 “기존 진보 보수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함께 이뤄낼 수 있는 합리적 정책대안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을 뉴레프트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먼저 기존 좌파를 구진보 내지 낡은 좌파로 보고 극복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뚜렷한 이념을 갖추지 못하고 효과적인 정책대안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콘텐츠의 부재’에 대한 대내외 비판을 수용한다.

이들은 대내적으로는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긍정하고 △고용과 복지 창출을 위한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가경쟁력 향상과 실질적 평등을 위한 교육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또 대외적으로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기존 좌파의 소극적 방어적 개방정책을 비판하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장개방을 지지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지역 경제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의 주장은 중도좌파적이라는 점에서 언뜻 보기에는 노무현 정부의 노선과 유사한 측면이 많지만 민족주의적 색채를 탈피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며, 기존 좌파노선과 뚜렷한 경계 짓기를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양극화 비판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국가의 역할 강조라는 점에서 여전히 좌파의 전통에 서 있다고 주장한다.

뉴레프트의 대두는 △노무현 정부의 지지도 추락으로 인한 진보진영의 위기의식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활용이 필요하다는 좌파진영의 분화 △내년도 지방선거 및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한 포석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호기(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뉴레프트는 결국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절충한 ‘제3의 길의 한국화’라고 볼 수 있다”며 “이는 기존좌파와 신자유주의 양측으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이념적·정책적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과제로 남는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진영의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제대로 된 좌파로서 뉴레프트의 등장은 뉴라이트도 학수고대하던 바”라면서 “그러나 경제성장, 북한 인권, 세계화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통성 평가라는 4가지 기준에 대해 기존의 구태의연한 좌파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뉴레프트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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