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MBC스페셜’ 김영옥 대령 전투 공적과 삶 조명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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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 미국인이자 100% 한국인이다.” 미국 시민이지만 항상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전쟁영웅 김영옥 씨의 일대기가 25일 MBC 스페셜 ‘영웅 김영옥 대령’ 편에서 방영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나는 100% 미국인이자 100% 한국인이다.” 미국 시민이지만 항상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전쟁영웅 김영옥 씨의 일대기가 25일 MBC 스페셜 ‘영웅 김영옥 대령’ 편에서 방영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해 2월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고 포 브로크 재단’ 회의실에서 80대의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인 김영옥(86) 씨.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대신해 훈장을 수여한 필립 라리외 프랑스총영사는 “2차 세계대전 때 피를 흘려 싸워 프랑스를 구해준 김 대령에게 감사하며 프랑스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스페셜’은 25일 밤 11시 20분 ‘영웅 김영옥 대령’ 편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 영웅 김 씨의 삶과 공적을 방영한다.

김 씨는 레지옹 도뇌르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전공으로 미국 특별무공훈장,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 프랑스 십자무공훈장을 받았고 6·25전쟁에서도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장으로 불패의 신화를 쌓아 미군 은성·동성 무공훈장을 받았다.

19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 1세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1년 미 육군 병사로 입대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 로마 입성을 앞두고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대위였던 그가 일본계 병사와 독일 진영에 침입해 2명의 독일군을 납치했고 이들을 통해 독일군의 병력 배치 상황을 파악해 손쉽게 로마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가 몸담은 100연대가 해방시킨 프랑스 브뤼에르나 비퐁텐 지역에선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노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

6·25전쟁에서도 그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는 2차대전 후 제대했지만 고국에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입대했다. 그는 1951∼52년 중부전선 최전방 대대의 대대장으로 교착상태였던 전선을 돌파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부대는 다른 부대보다 60km나 더 북쪽으로 진격할 정도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강원 화천 일대의 휴전선이 북쪽으로 치솟은 형태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또 서울 삼각지의 경천애인사라는 보육원을 부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등 전쟁고아를 돌보는 데도 힘썼다. 6·25전쟁 이후 1963∼65년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군의 현대화에 힘썼고 2000년 노근리 사건 조사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지난달 여야 국회의원 100명이 ‘김영옥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는 서한을 청와대와 총리실 등에 발송했다. ‘영웅 김영옥 대령’은 두 차례 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김 씨의 근황 및 미국 한인사회와 일본인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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