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뒤집힌 정형돈…째려보는 유진…“엽기 순간 잡아라”

  • 입력 2005년 7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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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VOD로 캡처 사진을 만들었다. 눈 흰자위만 보이는 김선아와 현빈. 으흐흐. 그런데 인터넷에 올렸더니 이틀 전 만든 ‘주얼리’ 캡처 사진보다 댓글이 적다. 나름대로 야심차게 만들었는데….” 대학생 김문교(26·서울 마포구 합정동) 씨의 최근 일기 한 대목이다.

탤런트 박은혜가 하품하는 사진, 무섭게 째려보며 노래하는 가수 유진, 입이 찢어질 듯 박장대소하는 ‘핑클’의 성유리….

최근 인터넷에는 김 씨처럼 스타들이 무심결에 만들어 낸 의외의 웃음을 사냥하기 위해 눈을 부릅뜬 캡처 사진 사냥꾼들이 넘친다. 한순간의 통쾌한 웃음을 쫓는 캡처꾼들과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 싶은 스타들. 오늘도 인터넷은 연예인들과 누리꾼(네티즌)들 간의 캡처 전쟁으로 왁자지껄하다.

○ 아날로그 동영상을 순간성 디지털 사진에 포획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캡처사진’.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사가 실수로 빚어낸 코믹한 표정을 보며 해방감과 통쾌한 웃음을 공유하지만 때로 악성 인터넷 테러에 이용되는 폐단도 있다. MBC, SBS 화면 캡처 사진

‘캡처(capture) 사진’이란 TV프로그램 동영상이나 일상생활에서 독특하고 코믹한 모습을 순간 포착한 사진이다. ‘연속성’이 특성인 아날로그의 ‘동영상’이 ‘순간성’의 디지털 사진으로 분할되어 나타나는 새로운 인터넷 문화현상인 것.

특히 누리꾼들이 노리는 것은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별난 모습.

누리꾼들은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유명인들의 순간 캡처 사진을 업로드한다. 특히 ‘다음’의 ‘포토 포토’, ‘포샵&캡처’ 코너에는 하루 평균 100여 건의 캡처 사진이 게시된다. 최근 종영된 SBS 오락 프로그램 ‘아이엠’에서는 그날 가장 부진했던 출연자에게 벌칙으로 캡처 사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가수 유진은 2003년 한 가요 인기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1집 수록곡 ‘차차’를 부르던 중 ‘널 차버릴거야’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대목에서 정면을 노려봤다. TV에서는 순간적으로 지나간 장면이지만 무섭게 째려보는 유진의 모습이 한 누리꾼에 의해 캡처돼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됐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개그맨 정형돈의 경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 ‘상상원정대’에서 겁에 질려 눈이 뒤집힌 채 롤러코스터를 타는 캡처 사진으로 각종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수 유진은 “나를 담은 캡처 사진을 보고 그다지 큰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며 “누리꾼들의 관심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형돈 역시 “코믹한 캡처 사진이 개그맨들에게는 당연한 일 아니냐”고 답했다.

○ 유명인 망가지는 모습에서 얻는 위안

누리꾼들이 캡처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학원생 김형지(26·서울 성북구 안암동) 씨는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에 틈틈이 게시판을 뒤지면서 재미있는 캡처 사진을 찾는다”며 “엽기적이고 특이할수록 누리꾼들이 다른 게시판에 퍼 나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캡처 사진 인기에는 ‘웃자’는 유희적 측면 못지않게 대리만족의 심리도 영향을 미친다. 최창호(심리학) 인하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캡처 사진에는 근본적으로 훔쳐보기 심리가 깔려 있다”며 “이를 애써 찾아보고 캡처하는 누리꾼들은 완벽해 보이는 유명인의 결함을 발견하면서 친밀함과 상대적 위안을 느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캡처 문화에 ‘웃고 즐기자’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부각시켜 확대하려는 ‘안티 문화’도 왜곡돼 투영되기 때문. 가수 문희준의 경우 안티 팬들의 악의적인 캡처 사진으로 인터넷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저작권법상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MBC 법무저작권부 송윤석 차장은 “프로그램 저작권은 방송사가, 초상권은 사진 속 인물이 갖고 있기 때문에 누리꾼들이 아무 생각 없이 게시판에 올리는 캡처 사진은 저작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황상민(심리학) 연세대 교수는 “최근에는 캡처한 화면에 (만화의 말풍선처럼) 다른 글자를 넣어 전혀 새로운 내용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캡처 사진이 진화하고 있다”며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조작하고 변형해 나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데서 프로슈머(prosumer) 시대의 특성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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