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넬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넬슨

  • 입력 2005년 5월 13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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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10월 21일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허레이쇼 넬슨은 프랑스 전함이 발사한 탄환을 맞았다. 부하들은 서둘러 그를 의무실로 옮겼지만, 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덮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사기를 잃을까 염려해서였다. 사진 제공 생각의나무
1805년 10월 21일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허레이쇼 넬슨은 프랑스 전함이 발사한 탄환을 맞았다. 부하들은 서둘러 그를 의무실로 옮겼지만, 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덮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사기를 잃을까 염려해서였다. 사진 제공 생각의나무
◇ 넬슨/앤드루 램버트 지음·박아람 옮김/647쪽·1만9800원·생각의나무

“결국 나를 잡는 데 성공했군. 총알이 내 척추를 부수고 지나갔어.”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서남 해안 트라팔가르, 영국 지중해 함대 사령관 허레이쇼 넬슨은 직경 1.75cm의 납덩어리를 가슴에 맞고 갑판에 몸을 처박으면서도 자신의 상처에 대해 놀랍도록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동맥이 끊어진 자리에서 분출한 피가 왼쪽 폐로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죽어가면서도 그의 의식은 너무도 또렷했다. 의무실로 옮겨져서도 승조원들의 함성이 들릴 때마다 그는 대단히 기뻐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투결과를 물었다.

“각하, 이제 콜링우드 제독에게 전투를 지휘하라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토머스 하디 함장의 말에 그는 날카롭게 응수했다. “아니, 아직 내가 살아 있는 한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네.”

하디 함장으로부터 마지막 키스를 받은 뒤 그는 말했다. “이제 나는 여한이 없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로 끝을 맺었다. “신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노라.”

영국 최고의 해전사 전문가로 통하는 저자가 그린 영국의 영웅 넬슨의 최후는 “지금 싸움이 고비를 넘기고 있다.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던 충무공 이순신과 너무도 닮았다.

400여 년 전 이순신이 그랬듯 200년 전 넬슨도 용맹스러운 군인정신으로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조국을 지켜낸 전략가이며 지도자였다. 1794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3년 뒤엔 오른쪽 팔까지 잃었지만 그는 47세의 나이로 최후를 맞을 때까지 어떤 고난도 꺾을 수 없었던 불굴의 전사였다.

이 책은 넬슨과 관련한 모든 출판물을 철저히 고증하고 선입견과 추측을 배제하려 한 저자의 고심이 엿보이는 역저. 넬슨이 살던 시대의 시각에서 사건들을 조명하면서 후대의 낭만적인 과장이나 주관적 요소를 잘라낸 뒤 그 현대적 의미를 되새겼다. 따라서 신격화된 ‘영웅 넬슨’이 아닌 ‘인간 넬슨’을 그리고 있다.

넬슨은 스무 살의 나이로 영국 프리깃함 함장에 기용돼 영국 해군 사상 최연소 함장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외삼촌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저자는 빼놓지 않는다. 나아가 함정의 군목(軍牧)직을 그만둔 형에게 2년 동안이나 월급을 지급한 것이나 출세를 위해 왕족에게 줄을 서 아첨하던 젊은 시절도 그대로 그려진다.

한편으로 저자는 그에게 잘못 덧붙여진 ‘어두운 전설’도 예리하게 파헤친다. 특히 넬슨이 자신의 사생활을 치욕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영광스러운 죽음을 통해 그것을 보상하고자 전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암시를 주는 빅토리아풍 전설을 단호히 부정한다. 저자는 “1805년 넬슨에게 전사는 일종의 직업병과 같은 위험이었지 결코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원제는 ‘Nelson’(2004년).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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