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62>士 (선비 사)

  • 입력 2005년 2월 13일 16시 49분


코멘트
士의 자형을 두고 어떤 사람은 도구를, 어떤 사람은 단정히 앉은 법관의 모습을 그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牛(소 우)와 士가 결합된 牡(수컷 모)가 소와 생식기를 그린 것을 보면 士는 남성의 생식기임에 분명하며, 이로부터 남성을, 나아가 지식인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壯(씩씩할 장)은 강인한 ‘남성’을, 壻(사위 서)는 ‘사위’를 뜻하며, 吉(길할 길)은 집 입구(口·구)에 설치한 남성 숭배물(士)로부터 ‘길하다’는 뜻을 그렸다.

하지만 壺(병 호)와 壹(한 일)은 사실 士와는 관계없는 글자다. 壺와 壹의 士는 원래 호리병의 뚜껑을 그린 것인데 예서로 오면서 잘못 변했다. 壺는 잘록한 목과 볼록한 배와 두루마리 발에 뚜껑을 가진 호리병을 그린 상형자이며, 호리병은 호리병박을 본떠 만들었다.

壹은 소전체에서 壺와 吉로 구성되었는데, 壹은 단순한 숫자 ‘하나’를 넘어서 만물 창조의 근원인 元氣(원기)는 물론 최고의 개념인 道(도)까지 뜻하는 심오한 글자다.

壺가 어떤 상징이기에 壹의 의미부가 되었을까? 호리병박은 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신화에서 인류가 탄생하는 대상물이자 대홍수 시절 여와와 복희 남매를 살아남게 만든 매개물이기도 하다. 나중에 여와와 복희가 결합하여 중국 민족이 시작된다.

그래서 호리병박은 생명 탄생의 상징이며, 그 때문에 중국 서남부의 이족, 라후족 등 소수민족들은 아직도 호리병박을 숭배대상으로, 자신들의 표지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앙소 문화유적지에서는 호리병의 아가리에다 사람 얼굴을 빚어 놓은 특이한 형태의 人面壺(인면호)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호리병박에서 인류가 탄생했다는 신화적 사유를 형상적으로 그려낸 조형물이다.

그렇다면 호리병박의 속은 음양이 아직 구분되지 않은 혼동의 상태를 상징하며, 그것이 둘로 나뉘어 만물을 낳는다는 만물의 생성 이론과도 통한다. 특히 吉이 남성 숭배를 뜻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이것이 최고의 상징을 가지는 一(한 일)의 다른 모습인 壹을 만들면서 壺를 의미부로 吉을 소리부로 선택하게 한 이유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