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本色’…두려웠다, 내 時속에 ‘나이’가 있을까봐

  • 입력 2004년 6월 25일 17시 29분


◇本色/정진규 지음 천년의 시작/120쪽 6000원

중견 시인 정진규씨(65)가 새 시집 ‘本色(본색)’을 펴냈다.

4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에는 시 79편과 산문 2편이 실려 있다.

수록된 시들은,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제왕절개’의 것들이 아닌 대부분 ‘자연 분만’의 것들”이다. 일부러 ‘쓴’ 시라기보다는 절로 ‘씌어진’ 시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처럼 ‘제 스스로 언어의 몸짓을 하는 시’ 덕분에 그는 “퇴고 시간이 전에 없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시에도 ‘생태’라는 것이 있음을 나는 근간 적극 동의해 오고 있다. 내 의지로서의 언어적 조율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언제나 후행(後行)의 작업으로 왔다.” (산문 ‘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우이산과 더불어 삼십여년을 살고 있는 시인은 ‘아름다운 자연의 우주적 화응’을 시로 노래한다.

‘미리 젖어 있는 몸들을 아니? 네가 이윽고 적시기 시작하면 한 번 더 젖는 몸들을 아니? 마지막 물기까지 뽑아 올려 마중하는 것들 용쓰는 것 아니? 비 내리기 직전 가문 날 나뭇가지들 끝엔 물방울이 맺혀있다 지리산 고로쇠나무들이 그걸 제일 잘한다 미리 젖어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 (시 ‘봄비’)

‘…이 봄날엔 나무들이 꽃으로 초록 嫩葉(눈엽·어린 잎)들로 本色을 탄로시키고 있다 하느님의 질문엔 어쩔 수 없이 정답이 나온다’ (시 ‘本色’)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어느덧 시력(詩歷) 40년을 넘어선 시인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내 시 속에 내 나이가 맨몸으로 들어앉아 있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늙지 않았다는 말을 다행으로 여겨 왔는데 이젠 아니다 正面이다”라며 “제대로 늙자”고 말한다. (시 ‘詩論’)

그의 시는 여전히 산문시의 전범(典範)같다. “‘노래’를 행갈이 시에만 가두려는 규범이 답답했다”는 그는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산문 속에서 독특한 리듬과 운율을 찾아낸다.

‘迷界에 빠지지 마시기를, 몸은 몸대로 두실 것 풍경만으로 있으실 것 풍경으로만 있으실 것 자체가 되어버리실 것 버려진 집 그것으로만 있으실 것 섬길 주인이 없는 다만 집일뿐이실 것…’ (시 ‘찬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막는 방법’)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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