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들여다보기]詩 클래식 뮤지컬… 잘 자라라 문화야

  • 입력 2003년 12월 15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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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문화 포식자인가, 문화 생산자인가?

TV는 문화를 먹고 산다. 사회 문화 수준과 상관없이 TV에는 모든 문화 요소가 스며든다. TV가 탄생했을 당시, 미국의 TV 문화는 20세기 초 새로 등장한 미국 문화의 반영이었다.

TV는 종일 편성을 위해 문화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수밖에 없다. 몇 편의 완성도 높은 연극이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TV에는 다양한 문화가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TV가 문화를 만드는 기초 작업을 도외시하면서 기존의 문화만 먹어 치운다면, TV가 표현할 문화 요소는 고갈 위기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기존의 문화 요소만 재탕 삼탕 하거나, 다른 나라의 문화를 모방 또는 표절할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른 사회는 새로운 문화를 생산할 수 없는 ‘문화적 불임(不姙)’ 상태와 다름없다.

이런 면에서, KBS1 ‘문화지대’(월∼금 밤 11·35)는 문화를 키우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8일 ‘음악 속으로’는 백건우와 쇼팽을 소개했고, 9일 ‘미술관 가는 길에서’는 천안 아라리오 미술관을 안내했다. 10일 ‘낭독의 발견’에서는 박목월의 시를 낭독했다.

MBC ‘즐거운 문화읽기’(목 오전 11시)와 SBS ‘금요 컬처 클럽’(금 오전 11·35)도 록 음악과 뮤지컬 같은 대중문화를 새롭게 조명한다. ‘즐거운 문화읽기’는 11일 ‘비틀스’ 마니아와 카피 밴드를 조명했다. ‘금요 컬처 클럽’은 12일 뮤지컬 ‘풀 몬티’의 공연을 소개했다.

이들 문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5%에도 못 미칠 만큼 낮다. ‘문화지대’의 시청률은 같은 시간대 SBS ‘한밤의 TV연예’(17%)나 MBC ‘섹션TV 연예통신’(20.4%)와 비교하기에도 애처로운 수준이다.

그러나 문화계 논리로 보면 이들 프로그램의 가치는 만만치 않다. 시청률이 3∼4%라지만, 이는 2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봤음을 의미한다. ‘문화향수 실태조사’(2000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 동안 음악회에 0.2회, 미술전시회에 0.3회 간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 비하면 한번의 방송에 200여만 명이 본 ‘문화지대’의 가치는 결코 낮은 게 아닌 것이다.

TV는 늘 문화를 키워야 하며 시청자들에게 문화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10년 뒤 방송의 내용을 채울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방송이 단기적인 문화 포식자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문화 생산자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창현 교수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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