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푸젠 A형은 단순한 ‘변형 독감’

  • 입력 2003년 12월 7일 17시 19분


코멘트
북미와 유럽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푸젠(福建) A형 독감이 아시아까지 상륙해 국내 보건당국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국내외 일부 언론에서는 30년 만에 독감의 대재앙으로 인류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지구상에서는 10년 또는 30년 주기로 독감의 변종이 나타나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는데 이번에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독감 위기론의 근거다.

위기론자들은 특히 푸젠 A형 독감이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봄 발표하는 ‘올해의 독감’이 아닌 변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이번 독감의 위험성이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왜 그럴까?

▽올해가 독감의 대유행 시기?=의학계에서는 역사적으로 10년 또는 30년마다 독감의 변종이 나타나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다는 ‘주기설’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1918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20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57년 아시아독감, 68년 홍콩독감, 77년 러시아독감도 수십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보건학자들은 최근 수십년간 독감이 비교적 잠잠한 상태를 유지하자 언제쯤 새로운 독감이 나타날까 주시하고 있었다. 1997년 홍콩 조류 독감이 나타났을 때도 그랬지만 올해 푸젠 A형 독감이 맹위를 떨치자 또다시 ‘주기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독감 감시=WHO와 미국 질병관리통제센터(CDC) 등은 매년 세계 각국에서 어떤 독감이 유행하는지를 분석하며 대유행에 대비하고 있다.

WHO는 매년 봄 ‘올해의 독감’을 예측해 발표하며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에 포함된 독감 바이러스 균주의 활동력을 없앤 뒤 유정란(有精卵)에서 배양해 ‘올해의 백신’을 만들어 각국에 공급한다.

지금까지 WHO의 예상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금년에는 파나마 A형, 뉴칼레도니아 A형, 홍콩 B형 등 3종의 독감 바이러스를 올해의 독감으로 지정했지만 푸젠 A형이 갑자기 맹위를 떨치고 있어 각국의 보건당국이 긴장한 것. 그러나 푸젠 A형의 실체에 대해 알려지면서 보건당국은 한결 여유를 되찾고 있다.

▽왜 대유행이 아닌가?=독감에 대해 알면 궁금증은 풀린다. 독감을 일으키는 오소믹스 바이러스는 A, B, C 세 가지 유형이 있다.

A형은 사람과 돼지, 새에서 유행하며 심각한 증세가 나타난다. B형은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나고 아이들이 많이 걸리며, C형은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A형은 헤마글루틴(H)과 뉴라미니다제(N)라는 항원의 종류에 따라 수십 개의 아형으로 나눠진다. 현재까지 H는 15가지, N은 9가지가 발견됐다. 지구촌에서 주로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H3N2 바이러스이며 더러 H1N1 바이러스도 유행한다.

그런데 돼지의 몸속에서 새의 독감 바이러스와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가 섞인 재조합 과정을 거쳐 전혀 새로운 아형이 나타날 수 있다. 갑자기 새로운 아형이 나타나는 것을 ‘대변이(Shift)’라고 하는데 이것이 인류의 재앙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나타난 푸젠 A형은 대변이가 아니다. WHO가 올해의 독감으로 선정한 파나마 A형과 비슷한 H3N2 바이러스이기 때문. 파나마 A형의 유전자가 사람의 몸속에서 바뀐 ‘소변이(Drift)’다. 더구나 푸젠 A형은 이미 지난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유행한 독감이다.

▽그래도 독감은 무섭다=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3000만∼5000만명이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 중 10만명이 입원하고 2만명 이상이 폐렴, 기관지염 등으로 사망한다.

특히 올해의 독감 백신으로는 푸젠 A형을 50%밖에 예방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래 모든 독감 백신은 독감을 70∼80%밖에 예방하지 못하며 이보다 예방률이 떨어진다는 의미이지 효과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또 백신을 맞으면 독감에 걸리더라도 증세가 가벼워지고 합병증이 적어진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맞아야 한다.

만약 지금 백신을 맞은 경우 2주 후에 항체가 생기므로 그 전에 독감이 유행하면 독감 치료제를 예방약 차원에서 복용하거나 흡입하는 것이 안전하다.(도움말=한림대 의대 한강성심병원 감염내과 우흥정 교수,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지금 백신 맞아도 예방 가능▼

독감 백신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맞아야 할까.

독감은 그 자체보다는 합병증이 무서운 병이다. 따라서 만성폐쇄폐질환(COPD), 심장병, 당뇨병, 콩팥질환, 만성간염 등의 환자나 기타 이유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 65세 이상의 노인, 5세 이하의 어린이, 아스피린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등 ‘고위험군’이나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 의료인 등이 맞는 것이 원칙이다.

생후 6개월 이전의 아기는 접종 효과가 미미하며 고열과 두통 등 부작용이 흔하므로 접종시키지 않는다.

5∼12세 어린이의 접종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이번 푸젠 A형 독감의 경우 맞히는 것이 좋다.

영국 정부에서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푸젠 A형은 주로 어린이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특히 천식, 심장병 등이 있는 아이는 반드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맞으면 때가 늦지 않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독감은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유행하고 백신은 접종 2주 후부터 효과가 나타나므로 지금 맞아도 된다.

어린이는 첫해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맞히고 이후 매년 맞으면 되고 어른은 매년 맞는다.

독감 백신은 항체가 6개월∼1년밖에 지속되지 않는데다 오소믹스 바이러스는 매년 변종이 나타나기 때문에 해마다 접종해야 한다.

독감 백신은 계란 속에서 배양하기 때문에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만일의 백신 부작용에 대비해 가급적 오전에 맞는 것이 좋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