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30>井 底 之 蛙(정저지와)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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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 底 之 蛙(정저지와)

井-우물 정 蛙-개구리 와

晩-늦을 만 諾-허락할 락 誼-좋아할 의 刺-찌를 자

굳이 孫子(손자)의 ‘知彼知己’(지피지기)를 인용할 것도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세계와 어깨를 겨뤄야 할 때가 됐다. 그러자면 한 번 쯤 되돌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혹 그동안 우물안만 맴돌았던 개구리는 아니었던가.

지금부터 2000년 전, 그러니까 東漢(동한)이 서기 직전의 이야기다. 이 격동의 시대에 馬援(마원)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고사 ‘老益壯’(노익장)과 ‘大器晩成’(대기만성)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직 그가 출세하기 전의 일이었다. 조그만 고을의 장이 되어 罪囚(죄수)를 호송할 때였다. 죄수들의 통곡소리에 마음이 아팠던 그는 모두 풀어주고는 자신도 북방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축을 길러 큰 부자가 되었다.

후에 劉秀(유수)가 일어나 東漢을 세웠다(A.D. 25년). 이 즈음 그는 (농,롱)西(농서)의 외효(외효)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그때 蜀(촉. 현재 四川省)지방에서는 公孫述(공손술)이 일어나 稱帝(칭제)하고 있었다. 사실 馬援과 公孫述은 同鄕(동향)으로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이다. 그래서 외효는 馬援을 시켜 公孫述의 爲人(위인)됨을 떠보고자 하였다.

馬援도 쾌히 應諾(응낙)했다. 옛 친구이므로 아마도 자기가 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만나본 公孫述은 전혀 딴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많은 호위병을 집결시켜 놓고는 거만하게 말했다.

‘옛 情誼(정의)를 봐서 장군에 임명하겠으니 이곳에 머물고 있거라.’

이건 마치 임금이 신하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馬援은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와 외효에게 보고했다.

‘그 자는 井底之蛙(우물안 개구리)입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상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외효도 그와 사귀겠다는 마음을 고쳐 먹을 수밖에 없었다. 후에 馬援은 외효의 소개로 光武帝(광무제·곧 劉秀)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光武帝의 태도는 公孫述과는 대조적이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만나주는 것이 아닌가. 馬援이 그 까닭을 묻자 말했다.

‘그대는 刺客(자객)이 아니라 說客(세객)이오. 그것도 훌륭한…. 내 어찌 실례를 범하겠소.’

결국 그는 光武帝의 인품에 반해 그의 신하가 되어 혁혁한 무공을 세우게 된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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