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마젤란 최후의 항해 필리핀 세부

입력 2003-06-26 17:22수정 2009-10-10 15:5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세부시티 시청사 앞 팔각당에 있는 마젤란 십자가. 팔각당 내부의 천장에는 마젤란 탐험대가 세부섬에 상륙할 당시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사진제공 월드콤

“유능하고 근면한 인간에게는 ‘정지’라는 팻말을 세울 수 없다.”

악성(樂聖) 베토벤의 말이다. 세계사에 기록을 남긴 탐험가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탈무드의 격언대로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길로 인도되는 걸까?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그 비참한 죽음마저도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했던 곳은 필리핀의 조용한 섬 세부(Cebu)다.

● 세계사 바꾼 3년간의 세계일주

마젤란은 1480년 포르투갈의 하급 귀족으로 태어났다. 20대에는 해군 장교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항로 등에서 근무하며 무역을 배웠다. 마젤란은 포르투갈 왕의 중신이었으나 모로코에서 현지 무어인과 한 거래를 왕이 의심하자 조국과의 인연을 끊고 스페인(당시 에스파냐)으로 갔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포르투갈 태생의 스페인 항해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마젤란은 1519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의 명을 받아 역사적인 3년간의 세계일주 길에 올랐다. 265명의 탐험대가 5척의 범선에 나눠 타고 스페인 남쪽의 산 루카 항을 출발했다. 생명을 건 여행이었지만 성공한다면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도 있었다.

탐험대는 그해 12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닿았고 이듬해인 1520년 1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를 흐르는 라플라타 강에 도착했다. 이후 남하를 계속해 11월 새로운 해협을 빠져나가고 새로운 해면을 만나 각각 ‘파타고니아’ 해협(후에 마젤란 해협이 됨)과 ‘태평양’이라고 이름 지었다.

1521년 3월 6일 괌에 도착해 원주민과 교전했고 16일에는 필리핀에 도착했다. 필리핀 군도는 풍요로웠다. 마젤란은 원주민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세부의 왕과 부하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켰다.

하지만 세부섬의 왕과 적대 관계였던 이웃 막탄섬의 주민들은 마젤란의 선교 활동과 소유권 요구에 저항했다. 탐험대측에서 60명의 무장 군인들이 막탄섬에 상륙하자마자 1500명가량의 막탄섬 원주민들이 이들을 에워싸고 독화살을 쏘아댔다. 마젤란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탐험대는 간신히 막탄섬을 탈출해 포르투갈로 향했는데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1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3년간의 항해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사실,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마젤란은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정복자에 맞서는 피정복자의 자존심, 라푸라푸

세부섬은 필리핀의 중부 비사얀 제도 최고의 관광지다. 중심지인 세부 시티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막탄섬은 세부 시티와 두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으며 국제공항이 있다.

관광명소는 세부 시티와 막탄섬 양쪽에 흩어져 있다. 세부 시티에는 ‘마젤란의 십자가’가 있다. 마젤란이 필리핀에 상륙해 만들었다는 거대한 나무 십자가는 세부 시청 앞 팔각당에 안치돼 있다. 1521년 필리핀 최초의 기독교도가 된 추장 라자 후마본과 그 일족 800여명이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십자가는 복제품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양초를 켜고 기도를 드린다. 십자가가 있는 팔각당 내부의 천장엔 당시의 세례 광경을 묘사한 벽화가 남아 있다.

또 마젤란이 라자 후마본의 부인인 파나에게 건넸던 산 토니뇨상(어린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는 성 어거스틴 교회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산 토니뇨상은 수차례의 전쟁을 거치고도 그 형태가 온전히 보존돼 세부 사람들에게는 기적의 수호신으로 숭배받고 있다.

천혜의 자연 경관과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든 세부섬 플랜테이션 베이리조트의 전경

산 토니뇨상은 화려한 옷으로 치장돼 있는데 매년 1월 셋째주에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세부섬의 가장 큰 축제인 시눌로그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강이 흐르는 모습을 흉내내며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행진하고 각종 행사와 쇼를 즐긴다.

성 어거스틴 교회는 1565년 스페인의 초대 총독인 레가스피가 세웠고 두 번의 화재 끝에 1704년에 재건됐다. 최근엔 맞은편에 로마 교황청을 본뜬 신관이 들어서 주일이면 이 일대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시티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곧 막탄섬으로 이어진다. 동서로 6km, 남북으로 4km 정도 뻗은 작은 섬이지만 비치와 리조트가 즐비하다.

오래 전 마젤란에 대항해 침략자들을 응징했던 막탄섬의 왕 라푸라푸 기념비는 마젤란 기념비와 대칭을 이루고 서 있다. 규모가 작은 마젤란 기념비와는 달리 황금빛의 힘차고 강건한 용사의 모습을 한 라푸라푸상은 바다를 향해 침략자를 응징하듯 관광객을 맞는다. 밤에는 조명이 그 화려함을 더한다.

‘발견’이란 단어는 서구 문명사회의 관점일 뿐이다. 마젤란이 상륙했을 때 필리핀 세부에는 강력한 세력의 원주민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세부섬 현지인들이 생각하는 마젤란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탐험가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인들은 위인전을 통해 익숙해진 마젤란의 흔적을 더듬지만 세부 사람들은 라푸라푸상 앞에서 조상의 용감함에 숙연함을 느낀다. 세부라는 섬 이름은 원주민어로 외세의 침략자들이 배에서 내려 섬으로 걸어 들어올 때 냈던 “절벅절벅” 하는 의성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세부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품은 단연 기타이다. 조개장식이나 산호로 만든 수공예품, 마닐라삼(Abaca)으로 엮은 가방 등도 눈에 띄지만 품질이나 명성으로는 기타를 따라올 만한 물건이 없다.

막탄 섬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대를 이어 손으로 기타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다. 기타라는 악기를 유달리 사랑해 기타 음악의 대가들을 배출해 온 스페인의 통치를 300여년 이상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부의 기타로는 알레그레, 수징 등이 유명하지만 그 중 ‘인데이 셀리아 기타’는 막탄 섬의 아보노, 파작, 라푸라푸 시티에 흩어져 있는 12곳의 일반 가정에서 만든 부품들을 조합해 완성하는 기타 공장으로 유명하다. 세부의 기타는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을 후원하는 기관(국립가내수공업 발전기구·NACIDA)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맑고 깨끗한 소리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세부 최고의 수공예품인 기타로 즉흥 연주를 즐기는 필리핀 사람들 (사진제공 월드콤)

기타 공장들이 많은 곳은 리조트가 즐비한 마리바고 마을이다. 이곳에선 기타를 만드는데 여러 가지 수작업 공정을 볼 수 있고 완성품을 살 수도 있다. 숙련된 장인 한 사람이 일주일에 고작 2개 정도의 기타를 만들어낼 만큼 공정은 꼼꼼하고 정교하다.

세부 기타의 또 다른 특징은 장식성에 있다. 막탄 섬에서 나는 조개나 산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토속적인 미학을 드러낸다. 대부분 장난감 스타일의 만돌린으로 품질이 좋은 것은 미화로 50∼60달러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명 호텔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밴드가 필리핀 사람들임을 감안하면 음감을 타고난 낙천적인 이 사람들이 기타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 사람이 모이면 노래를 하고 네 사람이 모이면 춤을 추고 다섯 사람 이상이 모이면 밴드를 구성, 가까운 해외로 나가 공연을 한다는 필리핀 사람들. 세부에선 어느 리조트를 선택해도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리조트 아일랜드로 유명한 세부는 그야말로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특히 리조트가 들어선 여러 해변은 세부 시내에서 모두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국제공항이 있는 막탄 섬 동쪽의 플랜테이션베이 리조트, 샹그릴라 막탄 아일랜드 리조트, 마리바고 블루워터 비치 리조트 등 10여개의 리조트 호텔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리조트들은 최근 세부 퍼시픽 항공사의 한국 직항편 취항으로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자 한국인 매니저를 채용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리조트 내에선 각종 해양 스포츠와 선택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리조트 안의 레스토랑들도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만족시킬 만큼 수준 높은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리조트들은 전용 비치가 있다. 또 리조트 내에 다양한 테마 수영장을 마련해 놓아 여행자들의 편리함을 더한다. 리조트를 벗어나 아일랜드 호핑(island-hopping)이나 바다낚시, 무인도 탐사 등 선택 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부는 산호섬이어서 스킨 스쿠버나 스노클링 마니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막탄 섬 동쪽, 올랑고섬 근해의 바다 밑은 산호와 열대어의 밀집 장소이다. 특히 세부 남서쪽의 해안도시 모알보알과 페스카도르섬에는 산호 절벽과 동굴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많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

인천에서 세부까지는 세부 퍼시픽 항공(02-3708-8500, www.cebupacificair.

co.kr)으로 바로 갈 수 있다. 7월초부터 주 4회(현재 주 2회) 운항하며 소요

시간은 4시간 20분 정도.

● 숙박정보

세부는 필리핀 최고의 리조트 관광명소답게 초특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8가지 테마의 바닷물을 끌어들인 초대형 해수풀로 유명한 플랜테이션베이 리조트(www.plantationbay.org)를 꼽을 수 있으며 공항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세부 관광이 포함된 리조트 패키지 요금으로는 7, 8월 성수기

기준으로 3박4일 상품이 약 140만원이다. 문의 코오롱(02-3701-4803), 한화 투어몰(02-311-4301).

● 기타 정보

필리핀에 관한 일반 여행정보는 필리핀 관광청(02-525-1709,

www.wowphilippines.or.kr)에서 얻을 수 있다.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