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플러스]‘향기없는 꽃’ 나오미 캠벨

  • 입력 2003년 4월 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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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톱모델 나오미 캠벨(33)이 지난달 28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회 코리아 패션 월드’ 무대에 올라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패션쇼 무대에 처음 선 그를 만나기 위해 기자는 이날 점심을 거른 채 ‘삼고초려’해야 했다. 약속 시간인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를 훌쩍 넘긴 오후 3시15분, 기사 송고 마감 시간을 목전에 두고서야 이유 없이 인터뷰를 지연시킨 캠벨을 만날 수 있었다.

주최측 관계자는 “오전에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캠벨이) ‘질문이 시시하다’며 기자를 쫓아냈다. 달래듯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쇼룸 옆 대기실에 들어서자 캠벨은 소파에 웅크린 채 나른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처음 만나는 ‘손님’을 보면 몸을 일으킬 법도 한데 두 눈만 깜박대고 있어 황당했다.

행사 관계자들은 “더 많은 ‘사건’이 있었다”며 혀를 찼다. 그들이 전한 에피소드 몇 가지.

△쇼에서 국내 모델들이 입었던 옷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나중에 다 선물로 달라”고 졸랐다 △“음식을 골라 먹고 싶다”며 백화점 식당가의 메뉴판(총 40여개)을 모두 걷어오게 했다 △무엇이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왜 ‘슈퍼’ 스타 대접을 해 주지 않느냐”고 항의해 왔다. 평소 여러 인터뷰에서 “나를 ‘슈퍼’ 모델로 부르지 말라. 난 다른 모델들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주장했던 그녀가.

하지만 캠벨에게 ‘누구보다도 많이 시달렸다’는 주최사의 김성환 본부장(CI엔터테인먼트)은 “조금씩 그를 알아 갈수록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정론을 폈다.

“유럽의 통신사와 영국 매스컴의 기자들도 캠벨을 쫓아 왔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캠벨이 한국에서 사고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대중도 그의 돌출행동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15세에 데뷔한 후 줄곧 대중의 ‘과도한 관심’ 속에 살아온 캠벨은 괴팍한 성격 때문에 세계 어느 곳을 가나 구설에 올랐다. 자살 소동을 벌였는가 하면 1999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성질 죽이고 사는 법’ 강좌를 듣기도 했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는 마약중독치료도 받았다. ‘성공해서 세상에 복수하라’고 딸에게 채찍질한 어머니의 피해의식이 캠벨의 성격 형성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안타깝게도 캠벨은 기자의 기억 속에 ‘향기 없는 꽃’으로 남을 것 같다. 검고 윤기나는 피부와 탱탱한 가슴선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선명한데도 성격과 인품에서 우러나는 ‘사람 냄새’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김현진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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