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반구대 암각화' 주변 '先史공원' 조성계획 비판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50분


▲반구대 암각화의 실측 복원도 일부
▲반구대 암각화의 실측 복원도 일부
한국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선사시대 바위그림,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285호)와 울산 천전리 암각화(국보147호). 고래 사슴 멧돼지 거북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과 사냥 어로 장면, 그리고 추상적 기하학적 문양이 가득한 이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일상문화와 종교 미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세계적 걸작이다.

◇ 문화재전문가-환경론자들 발끈

최근 울산시가 이들 암각화 주변에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자 관련 전문가들이 유적훼손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울산시는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반구대 암각화 일대에 선사유적 관광공원을 만들고 이 곳에서 천전리 암각화 지역까지 ‘원시문화 산책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암각화 실물을 재현한 조형물과 기념관도 만들어 암각화 유적 일대를 울산지역의 관광상품으로 만들 예정이다.

◀ 선사시대인들의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암각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경

이 소식이 전해지자 문화재 전문가들과 환경보호론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나친 관광상품화는 유적 훼손을 초래하며, 문화유산 보존의 제1원칙은 ‘원형 유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호태 울산대박물관장. “문화유산은 그 자체 뿐 아니라 주변의 환경까지 보존되어야 한다. 울산 암각화의 경우, 그 주변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주변에 무분별하게 공원을 만들어 관광상품화하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식의 발상은 곤란하다. 암각화의 원형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풍납토성 유적 훼손도 과거에 토성 자체만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그 주변을 그대로 방치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공원 조성에 앞서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반구대 암각화는 댐 건설로 인해 1년 중 8개월 이상 물에 잠겨 있다. 풍화작용이 급속히 진행되어 훼손 상태가 우려할 만하다. 문화재위원인 서울대 김수진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 전체를 방수처리하고 그 앞에 방수벽을 설치해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일부

반발이 거세자 울산시 관계자는 “당장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기본설계안만 마련된 상태고 아직 가부를 결정하지는 않았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보존도 중요하지만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 세계문화유산 지정 멀어질수도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신청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다. 세계문화유산 선정 심사의 첫 번째 기준은 ‘문화재의 원형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그 주변에 인공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면 대부분 심사에서 탈락한다. 울산시가 암각화 주변에 관광공원을 만든다면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 학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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