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중학교과서 채택 '로비 전쟁'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5분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내년에 바뀌는 중학교 1학년의 11개 검정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는 종이를 고급화하고 사진이나 삽화를 컬러 인쇄하는 등 화려하게 꾸며졌다. 권당 개발비만도 2억원 안팎.

그러나 이같은 화려함의 뒷면에는 출판사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있다. 각 출판사는 많은 중학교가 자신들이 출판한 교과서를 채택해주기 바라며 갖가지 로비를 펼치고 있다. 교과서가 채택되면 이에 따른 부교재까지 팔 수 있는 등 ‘얻는 것’이 많다.

이와 관련해 31개 교과서 출판사들은 과당경쟁 방지대책위를 만들어 선의의 경쟁을 펴기로 했지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불투명하다. 대책위는 일간지에 1000만원의 보상금을 내걸고 로비 사례를 신고받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으며 27일에는 지방 총판 및 대리점들과 함께 자정 결의대회를 갖기로 했다.

▽치열한 로비전〓가장 흔한 것은 선물 공세. 서울 강남지역의 한 중학교 영어교사는 “CD롬 백과사전 영어사전 등 선물을 보낸 출판사가 제법 있다”면서 “학교에 어학실습기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의 영업직원은 “학생 한 명에 영어는 1만∼1만3000원, 수학은 1만원, 과학은 9000원, 기타 3000∼4000원 등으로 ‘채택료 시세’가 매겨져 있다”면서 “단속을 우려해 선정 이후 돈을 주거나 회식비 등으로 미리 일부를 주고 채택된 뒤 잔금을 치르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교과서 저자의 학연, 부교재 무료 지원 등을 앞세운 로비도 이뤄진다고 또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말했다.

▽교과서 채택의 ‘┼α’〓출판사들은 로비에 돈을 써 당장 적자가 나더라도 교과서를 공급하면 자습서와 평가문제집 등 이른바 ‘참고서 시장’에서 ‘본전’을 뽑을 수 있다. 영어 교과서의 채택료가 가장 비싼 이유도 듣기 테이프와 단어장 판매 등 ‘부가 가치’가 높기 때문. 로비 비용은 부교재 가격에 반영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떠넘겨지는 셈이다. 일단 1학년 교과서를 공급하면 2, 3학년 교과서까지도 공급할 수 있게 돼 올해 로비 경쟁은 더욱 뜨겁다.

▽선정과정 투명해야〓출판사가 과당 경쟁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로비가 아닌 질을 따져 교과서를 선정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교육부는 이미 학교별로 과목별 교사심의와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다음달 말 학교장이 최종 결정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지만 이 장치는 이미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한국교총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시민단체들은 조만간 교과서 채택 비리를 폭로하고 근절 운동을 벌일 태세다.

전교조 산하 전국교과모임연합 정사열(鄭士烈)부의장은 “교과서 채택 로비는 뿌리뽑기 힘든 고질적 병폐”라며 “교과서 심의와 선정 과정을 좀더 투명하게 만들어 로비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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