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절충주의 시각으로 본 남북관계는?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8시 59분


외무부 장관을 지낸 고려대 한승주 교수가 정치외교 칼럼집을 냈다. 이 책자는 ‘남북한 관계의 변화’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 하에 통일 문제, 북한 핵과 한반도의 위기, 포용정책과 남북 정상회담, 한반도와 지역정치, 한국 세계화의 길, 그리고 세계질서의 재개편 등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안문제들을 명쾌하고 논리적인 필치로 다루고 있다.

아무리 저명한 필자라 해도 이미 발표되었던 컬럼들을 한 편의 책자로 엮어낼 경우, 진부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교수의 이 저서는 이런 통념을 벗어나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새로운 남북관과 세계관을 부각 시켜주고 있다.

한 교수는 세 개의 큰 메시지를 이 저서에 담고 있다. 그 첫째는 남북한 관계와 통일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단순한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차가운 머리로 냉철한 현실주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중한 현실주의의 예지가 이 책자 전반에 흐르고 있다.

두 번째는 세계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한 교수는 과거와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중상주의로는 세계화의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공생과 공영의 논리로 세계화를 전향적으로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적 자율성을 기초로 한 다원주의의 공고화를 새로운 국내 및 세계질서의 중심 가치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 교수는 이 책자를 통해 자유주의와 현실주의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절충주의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맹목적 현실주의는 대결과 갈등을 전제로 하는 한편, 감상적 이상주의 또는 자유주의는 현실의 왜곡을 통해 위기를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 한 교수의 이 같은 절충주의적 현실진단과 정책처방은 편견과 독단을 넘어 균형된 시각으로 불확실성의 21세기를 헤쳐나가는 중요한 단서를 제시해 주고 있다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책자를 읽으면서 흥미롭게 느낀 것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필자가 외무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김영삼 정부 초기의 대북정책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위기를 다룬 제 2장 수록 칼럼들은 아직도 음미할 가치가 크다.

전반적으로 이 책자는 자유주의의 당위론과 현실주의의 실용론을 이론과 실제의 포괄적 변증법적으로 잘 엮어내고 있다. 한반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필독서라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수긍하기 어려운 점은 필자가 남북한 관계를 과도하게 현실주의적 이해관계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 이해관계도 중요하지만 명분, 민족애, 그리고 정체성의 인정 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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