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입자의 전세집 구하기]결국 살던 집 재계약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당장 3000만원을 마련할 일이 걱정되지만. 시부모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네요. 손자를 지금처럼 매일 보실 수 있게 됐으니까요.”

마음 고생 한 달만에 한시름 놓게 된 강향순씨(33·교사)는 “이제야 방학을 맞은 듯하다”고 말한다.

인천 부평구 부개3동에서 25평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는 강씨가 집주인한테서 ‘집을 비워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방학 시작 직후인 7월 중순.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던데….’

며칠 뒤 단지내 상가에 있는 한 중개업소를 찾을 때만 해도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다. 자금지출 계획이 어긋나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주변에서 물건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2년 전 이맘 때 강씨네 전셋집이 있는 부개지구 5단지와 그 앞의 7단지가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해 물량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씨는 2년 전 2500만원이던 25평 전세금이 5500만∼6000만원으로 올랐다는 중개업소의 말에 말문이 딱 막혀버렸다. 2년 전 겨우 평당 100만원에, 비록 전세지만 새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운이 좋다’는 생각은 했지만 2년 뒤 이 정도로 오를 줄은 누가 상상했으랴.

더구나 전세 찾는 사람은 줄을 잇는데 물건은 1주일에 한 두 건밖에 없다고 했다. 전세금이 2배 이상 오르자 세입자들이 다들 이사를 포기하고 시가(時價)를 조금 깎아서 재계약을 하고 있다는 것.

6000만원이라면 평수만 조금 줄이면 오래 전부터 점찍어둔 서울 목동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들 자민이(4) 양육문제가 걸렸다. 맞벌이인 강씨네는 자민이를 낮동안 걸어서 5분 거리에 사시는 부모님께 맡겨 키워왔다.

다음날부터 인근 다섯 개 아파트단지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사정은 다 비슷했다.

“차라리 좀 오래된 아파트로 옮겨갈까 하고 생각도 했어요. 6000만원이면 지은 지 15년 가까이 된 20평짜리를 살 수도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이럴 즈음 한 중개업자에게서 “집주인에게 정말로 들어올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전세금이 너무 오르다보니 올려달라고 말하기가 뭣해서 그냥 집을 비워달라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마음먹고 어렵사리 말을 꺼내봤다. 그런데 정말 맞았다. 집주인은 주저주저하다가 “사실 들어가야 할지 말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드디어 며칠 전 5500만원에 재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

“친구가 그러대요. 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집이 없으면 어떠냐’고 하더니, 거 봐라, 뭘 모르는 소리였지?”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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