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2차파업 세 표정]癌환자까지 입원 안시켜

  • 입력 2000년 8월 7일 19시 30분


▼환자들 "너무하네"▼

전임의 파업 첫날인 7일 대형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수술과 입원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서봉덕씨(71·여)는 “대장암으로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전남 순천에서 올라왔다”며 “5일간 입원하면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웬만하면 입원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약이 떨어져 처방전이 필요한 환자들이 병원에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김순이씨(55·여·가명)는 “남편이 간경화로 3년째 고향인 충남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며 “예약취소를 통고받았지만 당장 먹을 약이 떨어져 처방전이라도 써달라고 하려고 혼자서 상경했다”고 말했다.

수술지연도 큰 고민거리. 축농증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은 정희영씨(21·여)는 “8월말로 수술일정을 잡아놨는데 오늘부터 수술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니 지연될까봐 걱정”이라며 “중소병원에 가서 빨리 수술을 받을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전임의의 파업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성윤희씨(33·여)는 “의사들이 또다시 파업에 나서니 환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의사들은 빨리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전임의 "오죽하면"▼

“환자들을 생각하면 떠날 수 없죠. 의사란 환자와 함께 있어야 사회적 생명력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렇게 하는 사정도 좀 이해해 주십시오.”

7일 병원측에 사직원을 제출한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의 한 전임의(36·호흡기내과)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6일까지 전공의들이 떠난 공백을 메우며 현장을 지키던 이들 80여명의 전임의들이 이날 오전 11시 열띤 회의 끝에 일제히 병원측에 사직원을 냈다.

이들이 파업을 불사하는 이유에 대해 내과의 한 전임의(35)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자괴감때문”이라고 말한다. “의대 6년과 인턴 레지던트 5년을 거쳐 전문의 자격증까지 딴 전임의의 월급이 200만원이 안 되는 현실에다 의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일할 수도 없다”는 설명.

이같은 의료계 모순의 근본적 원인은 저수가 의료정책이지만 정부가 이를 외면한 채 미봉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사표를 냈다지만 전임의들은 비상응급체계를 갖춰 적어도 응급실과 중환자실에는 진료공백이 생기지 않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사직원을 제출했으나 매일 당직을 설 수밖에 없다는 한 전임의(35·재활의학과)는 “응급실을 지키는 것은 환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교수들 "어쩌라고"▼

“말릴 수도 없고, 안말릴 수도 없고….”

전공의에 이어 7일 전임의마저 파업에 참여하자 대학병원 교수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찾아오는 환자를 모른 척할 수도 없지만 “현 의약분업에서는 의사의 미래가 없다”며 가운을 벗어 던진 후배 제자들을 탓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대장(전임의)도, 부대원(전공의)도 없이 전투를 치르는 중대장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중대장마저 전투를 포기하면 나라(환자)는 누가 지킵니까?”

후배 의사들의 파업으로 힘겹게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내과 H교수의 얘기다. 그는 30여명의 수술 입원환자를 이날부터 10여명으로 줄였다.

H교수는 “후배, 제자의 심정도 이해가지만 이번 2차 파업으로 환자 한 명이라도 잘못된다면 그들에게 평생 죄를 짓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을 고집하는 전공의 전임의가 안쓰럽다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외과 K교수는 “시험을 볼 때마다 100점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의약분업에 대해서도 이번엔 80점으로 만족하고 다음에 100점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며 의약분업 자체를 거부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K교수는 “의료계 지도부를 무작정 구속, 대화의 채널을 끊어놓고 논리적으로도 의사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가 원망스럽다”며 조속한 사태해결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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