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미술대전 심사장 엿봤더니…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22분


3일 올해 대한민국미술대전(구상계열) 작품심사가 열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 심사과정은 심사위원간의 미묘한 갈등이 일어나고 이 갈등이 점차 커져 언쟁으로까지 발전하다가 결국 극적인 화해가 이뤄지지만 그 화해의 내막이 궁금해지는 한편의 복잡한 드라마였다.

한국화 부문의 심사위원 7명이 특선작 13점을 확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작품 A앞.

“사진의 구도다. 산수화의 구도는 위 아래가 이렇게 잘리지 않는다.”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아래 위가 잘렸다고 결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찬부(贊否)를 묻기로 한다. 과반수인 4명 찬성. 잔류.

작품 B앞.

“기본적인 데생이 안돼 있다.”

“이제 와서 그걸 트집잡을 수 있나.”

겨우 2명 찬성. 제외.

문제가 지적된 작품을 가려내다 보니 13점에서 1점이 모자란다.

한 심사위원이 “작품의 질이 중요하지 꼭 숫자를 채울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지만 숫자를 채우자는 쪽이 우세여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인물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말하는데 인물화를 하나 올려달라.”

“그렇게 얘기하면 산수화도 마찬가지다.”

심사위원들이 인물화를 올리느니 마느니 언쟁이 붙는다. 심사위원장이 나서 투표로 결정하자고 중재한다. 투표결과 문제가 지적돼 탈락한 작품 B가 인물화 작품 C를 누르고 다시 올라온다.

점심시간. 작품 B의 문제를 제기했던 심사위원이 “심사안하고 가버릴 지도 모른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심사위원이 다시 모였다. 대상 추천작을 뽑는 시간. 13점의 작품중 최종적으로 박만규의 ‘삶―U턴은 없다’와 천태자의 ‘아름다워라 Ⅱ’가 추천된다. 박씨 작품에 대해 그림속 인물의 오른쪽 발이 왼쪽 발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작아보인다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화가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심사위원들이 한참동안 작품을 본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천씨 작품보다 박씨 작품쪽에 있다.

심사위원장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투표로 하지말고 거수로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박씨 작품에 만장일치 지지. 박수가 터진다.

대상을 뽑을 차례다. 동양화를 비롯해 서양화 판화 조각 등 네부문에서 한작품씩 추천됐다. 박석원 미술협회 이사장이 “장르별로 대상이 고루 배분됐으면 좋겠다”며 은근히 압박한다. 조각이 먼저 물러난다. 판화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다가 동양화가 고집하는 바람에 멈춰선다. 결국 세 작품을 놓고 투표. 동양화 1표,서양화 3표로 서양화 작품이 모처럼 대상으로 선정된다.

심사장을 나오다 들으니 안이 시끄럽다. 대상을 양보한 만큼 특선작 여유분 하나는 동양화 차지라는 주장과 무슨 소리냐는 서양화측 주장이 대립, 험한 소리까지 오고간다. 동양화측은 작품 C를 올려 완벽한 해피엔딩을 만들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다음날 4일 발표를 보니 여유분 하나는 서양화 차지였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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