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단속 '비틀' …단속지침 무시-측정기 부정확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1분


술을 마신 뒤에는 핸들을 잡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술을 마시고도 다음날의 출근 때문에 ‘음주운전 귀가’를 감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경찰은 지난달부터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해 ‘요행’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음주운전은 올들어 6월말까지 전국에서 총 11만3185건이 적발됐다. 음주운전은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경찰의 잘못된 단속방법과 측정기 자체의 오차로 인한 ‘과잉 단속’도 문제다.

▼음주후 20분내 측정은 무효▼

▽단속지침 무시〓경찰은 ‘주취(酒醉)운전 단속지침 및 음주측정기 사용관리지침’을 통해 경찰관이 반드시 지켜야 할 18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측정 전 운전자에게 최종 음주시간을 물어보는 일. 또 1, 2차 측정 후 3차 측정 때에는 측정기를 바꿔야 한다.

서울고법 특별7부는 지난해 8월 홍모씨(31)가 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운전면허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음주 후 20분도 안돼 측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홍씨의 손을 들어줬다. 입안에 남아 있는 알코올이 없어지는 데 20분 이상 걸린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창원지법 제2행정부도 작년 6월 음주운전(혈중 알코올농도 0.126%)으로 면허가 취소된 김모씨(38)가 낸 소송에서 “경찰이 입안을 헹구게 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단속현장에서 경찰이 지침을 잘 지키지 않는데도 음주운전자는 이를 모르거나 강압적 분위기 탓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측정오차 심해 못믿겠다"▼

▽음주측정기 신뢰도〓조모씨(34)는 지난달 초 대전에서 승용차를 몰고 귀가하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1차 음주측정 결과는 형사처벌기준(혈중 알코올농도 0.05%)을 넘어선 0.072%.

조씨는 “3시간 전에 동동주 2잔을 마셨는데 이 정도 수치가 나올 리 없다”며 재측정을 요구해 2, 3차 측정 결과 각각 0.035%, 0.05%가 나와 0.05%로 검찰에 송치됐다. 조씨는 검찰에서 “오차가 심해 측정기를 믿을 수 없다”고 항변해 결국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안모씨는 지난달 중순 음주측정치가 0.109%로 나오자 채혈을 요구, 0.09%로 나와 가까스로 면허취소(0.1% 이상)가 아닌 면허정지(0.05∼0.1% 미만)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부산지법은 올해초 0.103%로 적발돼 면허취소된 신모씨(57)가 낸 소송에서 “측정기의 오차범위가 ±0.005%이므로 면허취소 기준에 못미칠 수도 있다”며 신씨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보행시험 도입도 검토할만▼

▽측정기 문제점과 대책〓현재 경찰이 사용하는 측정기는 영국산 ‘SD400’이 3500대, 미국산 ‘ASⅣ’가 1400대. 이것으로 동일인에 대해 동시 측정을 해도 측정기마다 다른 수치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박종욱(朴鍾郁·45)교수는 “음주측정기는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특히 “음주량이 0.1%를 넘어설 경우 오차범위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측정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소송이 잇따르면서 행정력의 손실도 막대하다”면서 “혈액채취 등 과학적 측정방법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거나 외국처럼 보행시험, 신체균형 테스트 등 새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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