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이제 우리말로 합시다" 우리사상硏 첫 학술대회

  • 입력 2000년 5월 1일 20시 03분


이성, 문화, 자연, 존재, 자아…

철학서에서 쉽게 쓰이는 이같은 개념어는 사실 수입품이다. 예컨대 ‘이성’은 일본 철학자 니시 아마네가 ‘백일신론’(白日新論·1872)에서 ‘Reason’을 ‘理性’으로 번역한 것을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일본어를 경유해 무분별하게 수입된 철학 용어들은 모호한 개념 탓에 연구자간에 학문적 소통을 막고 철학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왔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우리사상연구소가 올해 연구주제를 ‘우리말로 철학하기’로 잡고 지난달 29일 첫 학술대회를 열었다. 1차로 이성, 문화, 언어, 과학 등 4개 용어에 대해 박이문(포항공대) 백종현(서울대) 정대현(가톨릭대) 장회익(서울대) 교수가 나서서 각 용어의 개념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했다.

하지만 이번 학술회의는 ‘외국 철학용어에 대한 주체적 개념 정립’이라는 의욕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종합토론에서는 “과연 우리말로 철학하자는데, 그렇다면 한자어는 외래어인가”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부터 “외국산 철학개념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발제문이 외국산 용어를 대거 동원하고 있다”는 일침이 이어졌다.

이번 회의를 기획했던 신승환 교수(가톨릭대)는 “이번 학술대회가 철학 용어의 주체적인 의미규정에 이르지 못하고 그간의 다양한 해석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서 “수 십년간 고착화된 문제를 풀기가 맘처럼 쉽지 않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소장학자를 중심으로 철학용어의 한국화가 이뤄지고 있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덧붙혔다. 예컨대 ‘자연’으로 오독해온 그리스어 ‘Physis’를 ‘스스로 그러함’이라고 쓰는 식이다.

우리사상연구소는 가을 학술회의에는 주제에 근접한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이를 철학사전 형식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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