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책꽂이]당신의 손이 따뜻할때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책이 말을 걸어왔다. 제목이 끌리는 것도 아니었고 디자인이 독특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책의 뒷면에 한 사내의 부음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에토 준(江藤 淳). 일본 비평계의 최고수였던 인물이다. 그가 41년을 아옹다옹거리며 지내온 아내와의 마지막 시간들을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간 수기(手記)의 원제는 ‘아내와 나’. 작년 ‘문예춘추’ 5월호에 게재되어 일본인들의 마음을 바닥에서부터 울렸던 바로 그 내용이다.

책을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못한 내가 채 반나절도 안 돼 다 읽어낼 만큼 길지 않은 분량이었다. 수기라고 하지만 격정이 담긴 것도 아닌, 마치 일본우동처럼 밋밋한 맛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휘감아버렸다.

아내 게이코가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던 97년 12월부터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인 98년 12월까지 근 1년의 흐름을 담고 있는 글이지만 그 책 안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었다. 아내와 그 사이에 가로선 삶과 죽음의 진공같은 것이 일상의 시간을 정지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에토 준이나 그의 아내 게이코 모두 그 시간의 위세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애써 몸부림치거나 반항하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 채 이렇게 고백했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함께 있었다. 사실, 함께 있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것이다.”

아내 게이코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어느날 에토 준도 기꺼이 그 뒤를 따랐다. 1999년 7월 21일의 일이었다. 신문의 부음기사는 그가 자살했다고 온기없는 필체로 알렸지만 그는 더 이상 의미없이 드리워져 있던 시간의 장막을 거두어냈을 뿐이었다.

작년초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헬렌 니어링이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을 만나 50년을 함께 산 이야기다. 에토 준의 수기를 읽으면서 헬렌 니어링의 책이 계속 머리에 떠오른 것은 함께 살아낸다는 것의 진정성, 그 일상의 위대함을 두 책 모두에서 절절히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에토 준의 수기가 나를 휘감았던 까닭도 그가 죽은 아내의 뒤를 쫓아 자살했다는 애잔한 비범함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아내와 함께 있었다는 묵직한 평범함에 있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아낸다는 것은 너무나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는 아옹다옹거리며 함께 살아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존중받을 만한 일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경남(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교장) 옮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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