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장신구의 역사'

  • 입력 2000년 1월 14일 19시 40분


▼ '장신구의 역사' 클레어 필립스 지음/시공사 펴냄 ▼

인류의 역사는 장신구의 역사’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니다. 기원전 3만년경, 동물 뼈와 이빨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녔던 사냥꾼들을 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몸을 치장하고픈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장신구는 인간 본능의 산물이자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위험을 막아주는 부적, 권력의 상징이자 투자의 대상, 마음을 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유럽 장신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영국의 디자인사(史) 전문가로 현재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박물관의 장신구 담당 큐레이터. 원저는 ‘Jewelry: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1996).

구석기시대 조가비 목걸이의 소박함에서 15,16세기 르네상스 금세공의 화려함, 19세기말∼20세기초 아르누보 장신구의 세련미와 현란함, 그리고 20세기말 포스트모더니즘 장신구의 실험정신에 이르기까지 그 장구한 역사와 미학적인 흐름을 소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다. 변화의 흐름에 담겨있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읽어낸다. 장신구의 역사는 한 시대의 관습과 문화 정치 경제기술수준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따라서 장신구를 통해 바라본 유럽의 역사다. 그동안 문화사나 미술사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장신구 분야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았다.

장신구는 한 시대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12,13세기엔 고딕건축 양식을 받아들여 선을 강조하는 장신구들이 유행했다. 16세기엔 유럽에 식물학연구가 확산되고 튤립과 같은 이국적인 꽃이 들어오면서 꽃의 이미지가 장신구의 중요 모티브로 자리 잡았다.

장신구에 숨겨진 정치적 분위기를 읽어내는 저자의 안목도 흥미롭다.

청교도혁명이 있었던 17세기 영국, 장신구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는 은밀한 상징물이었다. 18세기말 프랑스 혁명기엔 보석 장신구는 곧 귀족층 부유층을 의미했고 따라서 반지 하나 낀 것만으로도 처형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였다.

장신구가 기호품 차원을 벗어나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잡은 것은 20세기초입. 저자는 그 중에도 1960년대의 변화에 주목한다. 당시 금속공예 예술가들은 장신구를 성적(性的) 아름다움을 강조하거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보려는 견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장신구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첫 작업은 소재의 파괴였다. 금 다이아몬드만이 아니라 알루미늄 플라스틱 같이 값싸고 흔한 것도 소재로 끌어들였다. 이후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개 자갈 등의 자연물과 폐품까지도 장신구의 소재로 활용했다. 장신구는 그렇게 모든 사람을 감싸 안는 예술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귀고리 하나, 반지 하나에 숨어 있는 시대와 문화의 흔적.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즐거움. 아울러 장신구를 그저 호사가들의 사치품 정도로 생각했던 그동안의 편견을 교정시키는데도 도움을 주는 책이다. 김숙 옮김. 238쪽, 1만2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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