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옛그림 읽기…' /조선조 걸작 12점 감상법

  • 입력 1999년 9월 3일 18시 29분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솔 펴냄/227쪽 9500원▼

김정희의 ‘세한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김홍도의 ‘씨름’ ‘무동’, 김명국의 ‘달마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윤두서의 ‘자화상’….

우리 옛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서 한번쯤 눈여겨 봤음직한 명품들이다. 그러나 정작 ‘실물’ 앞에 서면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난감하다. 마른 붓질로 몇번 쓸고 지나간 흔적에 지나지않는 것 처럼 보이는 ‘세한도’. 이 그림이 어떻게 정신의 고결함을 표현했는지. 빠르게 지나간 묵선(墨線) 몇개밖에 보이지 않는 ‘달마도’가 어떻게 선(禪)을 구현했는지. 귀도 목도 없이, 덩그러니 허공에 매달린채 부릅뜬 눈으로 정면을 노려보는 윤두서의 ‘자화상’이 왜 조선 최고의 초상화로 평가받는지. 인왕산 바위만이 두드러져 보이는 ‘인왕제색도’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소장 미술사학자가 펴낸 이 책은 오랜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선과 색, 여백에 숨어 있는 그림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화 12점의 세계로.

문화유산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 옛그림 감상 안내서가 흔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있다고 해도 대개 간단한 개요 정도에 불과하다. 이 책은 그같은 한계를 극복하면서 그림 한점 한점을 깊고 넓게 들여다본다. 저자의 시각은 독특하고 참신하다. 구도 원근법과 같은 세부 기법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그림을 읽어낸다. 화가는 어떤 기분으로 누구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는지, 화가의 주변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등등을 추적하고 그것을 재구성해낸다. 동시에 여백과 필치, 인물과 산수의 표정까지 꼼꼼히 훑어간다.

비 갠 인왕산의 풍경을 그린 정선의 ‘인왕제색도’. 언뜻 보면 단순하고 밋밋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하고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일흔여섯 나이에 이 그림을 그렸던 정선의 내면세계를 찾아낸다.

절친한 친구인 시인 이병연의 임종을 앞두고 그의 쾌유를 비는 한 노화가의 애틋함. 이 그림에 서려있는 비장미, 물안개와 함께 피어오르는 슬픔의 카타르시스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저자는 이병연의 임종 직전 7일동안 장마비가 내렸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확인했다. 저자의 시각은 이처럼 참신하고 풍요롭다.

또한 시적(詩的)이기도 하다. ‘달마도’에선 선(線)의 강약, 먹의 농담(濃淡)을 통해 질풍처럼 치닫던 김명국의 붓놀림을 생각한다. 그리고 호쾌한 선(線)을 관통하는 선(禪)의 기운을 발견한다. ‘달마도’의 선(禪)보다 시적이고 한편의 시보다 더 시적이다.

훌륭한 그림엔 화가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법. 이 책은 선인들의 고결하면서도 깊은 인간미와 시대 정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즐겁고 행복하다. 일반인들도 별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는 책. 저자는 앞으로 이같은 옛그림 안내서를 10권까지 펴낼 계획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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