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대담]「국가와 성」/여성에게 정보화의 의미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08분


백화점의 여성 화장실이 감시 카메라에 의해 녹화되고 전화가 수시로 도청당하는 우리의 삶. 권력이 모든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판 옵티콘의 감시체제를 예언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과 얼마나 다를까?

국가와 가정이 전산망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시대. 이제 가장 큰 자본과 권력은 바로 ‘정보’ 그 자체다. 인류역사의 가장 오래된 권력관계 중 하나는 남녀간의 성적지배관계. 정보화 기술은 이러한 남녀간의 성역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성(性)에 대한 국가의 감시체제와 개인의 문제를 다룬 ‘국가와 성’(법문사)이 최근 발간됐다. 저자인 단국대 이영애교수(정치외교학과)와 한국전산원 전문연구위원 윤성이박사(정치학)가 ‘국가와 성’에 담긴 정보화사회의 성역할의 변화전망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윤성이〓미래 사회를 ‘여성(Female)’‘가상(Fiction)’ ‘감성(Feeling)’의 3F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정보화사회는 여성에게 유리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농업 산업시대에서는 육체적 힘이 중요했지만 정보화사회에서는 지적능력과 창의력이 중요시되지요. 여성이 갖고 있는 꼼꼼함과 세밀함은 정보화 사회를 주도할 장점이 될 것입니다.

▽이영애〓최근 물의를 빚은 ‘O양의 비디오’처럼 정보화사회에서 성(性)은 더이상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새로운 정보미디어 기술은 혁명적으로 발전하지만 거기서 전달되는 내용(contents)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네트워크 상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남성위주의 폭력적인 내용을 주로 담는다면 성차별과 왜곡은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윤〓경제활동의 조직원리에 있어서도 부장이 이끄는 권위적 조직이 아닌 팀장이 이끄는 수평적 조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리더의 조건은 전문성으로 여성팀장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직장과 가정생활이 융합되는 점도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반대되는 전망도 있습니다. 97년 현재 전체여성취업자중 67%가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고 있으며, 1백대 기업에 근무하는 여사원 중 96.2%가 평사원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종사하고 있는 경리 비서 등 단순 하위직 업무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점차 대체될 것입니다.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일부 여성을 제외한다면 여성의 사회참여는 산업사회보다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윤〓결국 정보기술에 대한 접근 능력의 차이가 문제군요. 제가 근무하는 한국전산원에서도 신규 프로젝트의 개발에 참가하는 인력은 90%이상이 남성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보를 사용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터치스크린 방식 등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하게 될 것입니다.

▽이〓아무리 컴퓨터를 TV채널 돌리듯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칩시다. 그러나 이미 개발된 장비를 잘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권력의 상승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기존 패러다임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고부가가치가 발생하는 것이죠. 어릴적부터 성차별적 직업관을 갖게하는 교육제도부터 바뀌지 않으면 정보화시대에도 성별 권력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정보화사회를 대비해 법과 정치 교육제도가 여성에게 더욱 친숙해져야 합니다. ‘여성인력 할당제’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지요.

▽윤〓다른 이야기입니다만, 21세기에는 정보기술만이 아니라 생명공학의 발달도 성권력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급진적 성해방론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대안(代案)가족’으로 성해방을 이루려고 하기도 하는데요.

▽이〓맞습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가족형태가 다양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혼자사는 여성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갖거나, 동성애 부부가 복제를 통해 아이를 갖는 경우도 생겨날 것입니다.

▥ 「국가와 성」이영애 지음 법문사 369쪽 14,000원 ▥

성(性)을 감시하고 통제해 온 권력의 역사를 밝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성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적 차원에서 성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분석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혁명은 과연 여성에게도 해당되는가. 저자는 사회계약론의 기본원리인 △자유권 △생명권 △사유재산권 등 3가지 차원에서 고대사회로부터 현대정보화사회까지 남성과 여성의 성차별의 역사를 탐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성정치학 이론과 남녀평등 실천방안을 모색.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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