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화제의 책]「이봉창」,인간적 고민-약점 감동

  • 입력 1997년 5월 10일 09시 49분


우리 어린이들이 가장 즐겨 읽는다는 위인전. 강감찬 을지문덕장군에서 부터 세종대왕 신사임당에 이르기까지 「물리도록」 읽고 듣고 배우는 「무흠결」의 인간열전. 인간적인 약점이 많았던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도 우리 위인전에서 만큼은 빈틈없이 완벽한 인물로 등장한다. 우리와는 달리 이들에 대한 전기적 문헌과 기록이 아주 풍부한 데도 말이다. 「위인」들은 어쩌면 이리 한결같이 영명하고 어른스러웠을까. 나면서부터 남달랐고 모두가 호랑이의 용기와 담력, 솔로몬의 지혜, 부처의 마음을 지녔던 듯싶다. 그러나 우리 어린이들이 「정직의 화신」으로 알고 있는 그 조지 워싱턴이 사실은 여러명의 배다른 자녀를 둔 난봉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이 실은 언론탄압에 가장 앞장을 섰다면? 문제는 위인전이 「심술궂고」 변덕이 죽끓듯 하는 동심의 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인간적인 고민과 약점을 찾아볼 수 없는 위인들의 행적이 어린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과자 가게 점원에서 독립 운동가로」. 도서출판 산하가 어린이 책 1백권 출간 기념으로 펴낸 인물이야기 「이봉창」은 여느 위인전과는 많이 다르다. 「따분할 정도로」 평범한 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이봉창. 어려서부터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게 없었던 이봉창. 그저 남들처럼 돈을 벌어 마음 편히 살고 싶었던 이봉창 이야기. 그런 그가 어떻게 독립운동가가 됐을까.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으로 뼈가 굵은 보잘것 없는 조선 청년이 어떻게 일본 왕을 향해 폭탄을 내던지게 됐을까. 그저 일본 사람으로 살려고 발버둥쳤던 그다. 「이봉창 이야기」는 이제까지 잘못 알려져 있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상세히 담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의 생활과 상해 임시정부 산하 한인애국단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도 가감없이 그리고 있다. 보통학교만 간신히 나온 뒤 가난한 집안을 돕기 위해 과자 가게 점원이 된 이야기. 용산역의 전철수로 일하면서 똑같이 일하는데도 일본인의 반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고 어처구니없어 하는 이야기. 이에 분개한 나머지 일본으로 건너가 그저 일본인처럼 살고 싶었던 보통사람 이봉창. 너무나 평범하고 별나지 못했던 이봉창. 그랬기에 일본인으로 자신을 속이고 사는 삶이 스스로에게 더 큰 고통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더욱 더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5천원.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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