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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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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번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반(反)DJ, 비(非)이회창 간판을 내걸고 마지막 손에 쥔 모든 것을 털어 넣고 한판 승부를 벌이자는 심정은 모르는 바 아니다. 국민도 대체로 그렇게 안다. 그러나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성사되려면, 그렇게 오기 집념의 투사처럼 보여서는 될 턱이 없다.
한국 대통령이라는 큰 권력을 누린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사사로운 정치적 영향력을 즐기거나 누릴 뜻이 없다. 다만 나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다 바쳐 좋은 세상 여는 데 밀알이 되겠다’고 선언부터 해야 한다. 그렇게 진짜로 마음 비운 것을 국민에게 믿도록 해야, 그 길이 열릴까 말까다.
▼안될 말 우기고 작은 것에 목매▼
그 두번째. 권노갑 고문 등 동교동 사람들의 눈치코치 모르는 언행이다. ‘동교동이 민주당의 핵심인데 무슨 해체냐’는 소리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동교동이란 없다’고 해야 할텐데 반대로 말함으로써 욕을 먹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국민의 시선은 냉엄하다. 동교동은 집권을 달성하는 순간부터 해먹는 집단, 권력의 단물을 즐기는 집단으로 비치고, 그래서 해체되고 없어져야 할 존재로 비치지 않을까. 3공의 혁명주체, 문민정부의 상도동이 그러했듯이 감시 경계 요시찰 대상일 뿐이다. 동교동 사람들은 ‘과거 정권보다 해먹은 게 없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집권 그 자체로 무한 책임과 도덕성을 강요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의 청렴도 비교우위론만으로는 면죄부를 쥘 수 없는 것이다.
동교동이 민주당의 핵심이라고 우길수록, 민주당은 우스운 사당(私黨)으로 전락한다. 대통령도 그저 출세한 호주나 지역맹주가 될 뿐이고, 민주당 정권의 대통령 후보도 덩달아 표를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교동은 DJ집권으로 사라졌다. 그 정신은 민주당에 녹아버렸고 민주 개혁과 통일 지향 세력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 세번째. 영남후보론을 입에 담는 정치인이 있다. 그 말을 뒤집으면 영남인을 무작정 대권에만 향수를 느끼는 집단처럼 매도하는 의미가 있으며, 지역정권 시대를 길이길이 끌고 가서 나라를 더 갈라놓고 망치자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그런 말이 나오더라도 정치인이라면 말려야 옳다. 그런데도 도덕적으로 뒤틀리고 가히 범죄적이라 할 이런 발상을 서슴없이 되뇌는 정객이 있는 것이다.
대통령감으로 훌륭한 인물이 있는데, 그가 영남출신이더라 라면 모른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TK, PK 지역정서를 불지펴 집권을 꿈꾼다는 발상은 안 된다. 그런데도 이런 붕당 시대의 사랑방 타령 같은 소리가, 일부 정치인의 입에서 운위되는 현실이다.
그 네번째. 역대 정권을 경험해온 프로들이 모였다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의 갈지자 행보다. 이북에 쌀을 보내는 것을 ‘김대중 정부의 일방적 퍼주기’라고 욕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남는 쌀을 북한에 보내자고 했다. 그러다 반론이 일자 홱 뒤집고 돌아서 버린다. 햇볕정책이 아니라면 ‘달빛정책’이라도 내놓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을 만하다. 언론에 편승하고 여론에 기생하는 정치와 정체성으로 무슨 집권 타령이란 말인가.
▼국민 의식을 어떻게 보기에▼
이용호 의혹 추궁도 그렇다. 한나라당은 6개월은 국정조사를 벌이고, 그 후 6개월을 특별검사 내세워 수사하게 하자고 한다. 차라리 10년 국조에 10년 특검하자고는 왜 말하지 못할까. 법과 인권을 알고 사리분별에 밝다는 판사 출신 대권후보, 제1야당총재가 그렇게 국민의식을 우습게 보고, 비현실적인 정쟁(政爭)적 당론으로 당을 이끌고 있다. 정권의 인기가 이 지경인데도 그의 지지율에 크게 보태지지 않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이 총재는 내 것(정체성) 없이도 집권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지 모른다. 그러나 3김은 좋으나 궂으나 나름의 제 것을 앞세워 싸우고 누리고 버텨왔다. 하지만 이 총재는 3김청산을 내세우면서도 거꾸로 가고 있다. 그들의 장점이나 자산은 외면한 채, 그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권위주의적 당내 군림 같은 것만 배워 가는 것인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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