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새소설 '수수밭으로'낸 공선옥씨 인터뷰

  • 입력 2001년 7월 25일 18시 43분


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소설가 공선옥(37)씨가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3년만에 낸 신작소설 ‘수수밭으로 오세요’(여성신문사)를 들고….

이번 소설도 세련됨과는 한참 거리가 먼 공씨의 실제 모습을 닮았다. ‘지질이도 복도 없는’ 30대 여성의 이야기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이 매운 시절을 살아낸 주인공 강필순. 공장에서 만난 첫 남편에게 버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같은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의사를 만나 재혼한다. 팔자가 피는가 싶었던 것도 잠시 뿐. 그에게 ‘지식인’과의 결합이란 환상에 불과했다.

이 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필순의 주변인물이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들이다. 밖에서는 자연을 걱정하고 봉사활동을 벌이지만 집안에서는 필순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렇다.

“90년대 들면서 생태주의 운동이니 대안적 삶이니 하면서 시골로 내려와서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한 지식인들이 있었어요. 이들과 진짜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사이에 놓인 격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언뜻 지식인의 낭만적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처럼 읽히지만 중년 여성의 삶에 대한 무언의 고발에도 상당한 무게가 실려 있다.

소설은 필순이 의사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아이들을 기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어설픈 희망의 기미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정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공씨는 “진짜 가난한 사람은, 특히 여성은 무언가를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상적인 대목은 강필순이 의사 남편과 헤어지자마자 맨처음 쌀부터 들여놓는 장면이다.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묘사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다수의 여성이 처한 ‘현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필순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다. 작가 스스로는 이런 행동의 동기를 ‘어미 마음’이라고 불렀다.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소설가 공지영씨가 “이 소설을 읽은 후 내가 여자이고 어미라는 사실에 뿌듯해졌다”고 소감을 말했다.

평생 남자가 벌어다준 돈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공씨는 “아직도 겨울이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먹을 것을 비축해두어야 맘이 놓인다”고 말했다. 몇 해전 타향인 전남 여수에 ‘번듯한’ 아파트 전세방을 얻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배고픈 시절’을 떠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공씨는 “슬픔이 슬픔을 치유하듯, 불행한 사람들이 강필순을 보면서 살아갈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환히 웃었다. 인세가 수입의 전부여서 세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전투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그녀의 자기 다짐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