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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9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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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바둑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가 심리학적으로 ‘고정 관념을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오히려 정석을 외우고, 사활 문제에 집착하는게 바둑 실력의 정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프로 바둑기사인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오는 11일부터 이틀동안 열리는 ‘제1회 바둑학술대회’에서 ‘바둑의 문제 해결에 사용되는 인지적 전략’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 대회에서는 정 교수와 함께 국내외 여러 학자들이 심리학, 의학, 인공지능 등 과학적 측면에서 바둑을 분석한 논문들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바둑을 둘 때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수를 고집하며, 이러한 ‘기능적 고착’때문에 실력이 향상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즉 착수를 할 때마다 과거에 성공을 가져다준 수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고 하지만 정수가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날 경우 오히려 이를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제 해결에 실패하며, 결국 바둑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정 교수는 프로기사 20명, 아마 고수 20명, 초·중급자 20명을 대상으로 상당히 까다로운 사활 문제를 풀게 했다.
실험 결과 정답에 이른 사람은 프로기사 6명과 아마고수 1명에 불과했다. 이는 정답에 이르는 과정중 사활 문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상식에 어긋난 수’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심지어 프로기사조차 상대방의 수를 자기 뜻대로만 생각한 오답을 정답으로 확신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무조건 정석을 외우는 방식의 기존 바둑 공부는 문제가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를 볼 때 바둑이 늘려면 ‘심리적인 고착’을 버리고 자신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수외에 다양한 수를 계속 생각하고 시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수를 두면서 ‘상식’에 포함되는 수의 범위를 넓힐 때 바둑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고려대 윤영화 교수(심리학과)는 이번 대회에서 ‘바둑은 뇌의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논문을 통해 바둑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예상된다고 논문을 발표한다.
뇌가 노화되는 것은 신경세포(뉴런)가 많이 죽기 때문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연결체인 시냅스가 줄기 때문이므로, 바둑을 둘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시냅스가 늘어나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일본에는 70세에 바둑을 배워서 82세에 아마 3단이 된 사람도 있다”며 “매일조금씩, 특히 수읽기를 하는 바둑을 두는 것이 뇌의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벨기에의 얀 라몬 박사는 인간을 이길 수 있는 바둑 컴퓨터의 가능성에 대해 “바둑은 체스와 달리 가능한 수가 너무 많아 현재 기술로는 만들기 어렵다”며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면 인간을 이기는 컴퓨터도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