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르네상스 신동’이 본 언어의 신비로운 힘

  • 동아일보

◇천사들의 문법/에드워드 윌슨-리 지음·김수진 옮김/336쪽·2만2000원·까치


1486년 가을, 한 청년이 로마에 입성해 ‘900개의 논제’를 제시하며 토론을 제안했다. 논제는 바다가 짠 이유, 부엉이가 해를 보지 못하는 이유, 들창코 교정법 같은 것에서 ‘신이 당나귀나 나무 조각, 저주받은 영혼, 심지어 악마로까지 변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까지 종교, 철학, 자연철학, 마법에 관한 것을 망라했다.

오늘날 관점으로야 ‘괴상한 문제’일 수 있지만 당시는 ‘암흑시대’로도 불렸던 중세의 끝자락. 청년이 이런 논제를 제시한 건 “어떤 신조에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모든 철학자의 사상을 밑바닥까지 파헤치고, 모든 문헌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온갖 사상에 통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청년의 정체는 인문주의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르네상스의 신동’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1463∼1494). 바야흐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삶과 르네상스 지성사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시드니 서식스 칼리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는 인물로, 전작 ‘물의 시대(A History of Water)’ 등으로 호평을 받았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너(인간)에게는 어떤 한계도 없으며…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조각하면 된다”(‘인간의 존엄에 대하여’·1486년)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또한 “알려진 세계의 사상을 종합하겠다”는 원대한 계획 아래 “각각의 사상은 모두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진리를 다양한 버전으로 표현한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다양한 종교와 철학 전통을 통합하려 했던 것.

특히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탐구한 언어의 신비로운 힘에 책은 주목한다. 다양한 언어를 섭렵한 그는 자장가나 노래 후렴구, 연설 등으로 나타나는 언어의 힘이 “개인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천사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한다”고 봤다. 기독교-유럽 사상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던 그는 젊은 나이에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았다. 지난해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올해의 책’에 선정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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