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은 흔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유된다. 확률은 희박해도 일단 바늘구멍을 뚫으면 보상이 엄청나다. 비만약의 대히트가 빅테크급 제약사를 키워냈듯, ‘노벨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획기적 탈모치료제가 나오면 빅테크를 능가할 기업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과정이 불투명해선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선 속이 보이지 않는 블랙박스를 놓고 대박의 꿈을 내세워 약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천당에서 황천길로 급락한 주가
중견 제약사 삼천당제약은 올해 코스닥 시장을 달군 아이콘이었다. 주사형 단백질 의약품을 먹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독자 플랫폼 ‘S-PASS’를 앞세워 ‘먹는 당뇨약’ ‘먹는 비만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1월 일본, 2월 유럽, 3월 미국 등 일련의 기술 수출 계약을 공개하며 한국의 일리아릴리, 노보노디스크의 서사를 쌓아갔다. 올해 20만 원대에서 출발한 주가는 지난달 말 120만 원대로 급등하며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의문점도 커졌다. 보도자료에선 유럽에서 5조3000억 원, 미국에서 15조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는데, 공시에 명시된 규모는 100분의 1에 불과했다. 판매 수익의 90%까지 가져온다는 계약도 이례적이었다. 주가가 최고조로 향할 무렵 알려진 대표이사의 대량 지분 매각 계획은 고점 신호로 읽혔다. 여기에 삼천당제약을 작전주로 지목한 한 블로거의 주장과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지적이 이어지며 단 사흘 만에 주가가 반 토막이 났다.
‘작전주 의혹’이 트리거가 됐지만 시장이 격하게 반응한 것은 삼천당제약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먹는 인슐린, 먹는 코로나19 백신 관련 투자 협의라는 소식에 대해 수차례 해명 공시를 반복하더니 수년이 지나 협의가 중단됐었다. 삼천당제약 측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에 나섰지만 기술력과 계약 구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해 불신을 잠재우지 못했다.
삼천당제약 사태를 특정 기업의 문제로만 보기엔 기시감이 크다. 항암제 임상 중단 및 내부자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으로 상장 폐지 직전까지 몰렸던 신라젠, 코로나19 치료제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대주주 지분 매각 이후 급락한 신풍제약, 올해 초 기술이전 계약의 로열티 비율이 시장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주가 하락을 겪었던 알티오젠 등 K바이오의 잔혹사는 거듭됐다. 주식시장에서 공시 의무를 위반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상장사의 20% 이상이 제약·바이오 기업이다. 타 산업군에 비해 유독 비중이 높다. 블랙박스 걷어내고 신뢰 쌓아야
전문성과 긴 호흡이 필요한 신약 개발의 특수성 때문에 바이오 기업들의 공시 내용은 대부분 전문적이고 복잡하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정보 비대칭을 악용한다. 화려한 수사를 내세워 매출 전망을 최대치로 부풀린다. 계약이 확정적인 것처럼 얘기하다가 나중에 미정이라며 바꾼다. 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표현으로 바꾸고, 임상 성공 가능성과 위험 요인, 향후 일정 등을 흐름에 따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공시 전반을 뜯어고치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예전처럼 땜질 처방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올해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은 수출 300억 달러(약 44조 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잇는 차세대 국가 전략산업으로 꼽히지만 일부 기업들의 소통 방식은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소통 없이는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이나 건전한 장기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투자자들에게 믿음만 강요하는 방식으론 약장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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