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폰 부수고 싶다” SNS 중독과 싸우는 아이들

  • 동아일보

전북 무주 청소년 ‘치유 캠프’ 가보니
12일간 폰 반납… 절반 “SNS 유해”

4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국립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 시골 허허벌판의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곳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 30명이 ‘치유 캠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은 11박 12일 동안 스마트폰을 반납한 채 오전에는 맞춤형 상담을, 오후에는 운동과 보드게임 같은 체험 활동을 하며 SNS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이날 기자가 참관한 수업에선 남학생 9명이 둘러앉아 스마트폰이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주제로 토론했다. 광주에서 온 김준수(가명·16) 군은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안 하면 불안하지만 종일 SNS만 하다가 하루가 끝나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며 “밤마다 스마트폰을 부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만 전국 곳곳에서 온 중고교생 45명이 이 SNS 디톡스 캠프를 거쳐 갔다. SNS 덫에 빠진 청소년들의 실태는 동아일보와 한국청소년재단, 공공의창이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전국 15∼24세 청소년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5.8%)가 ‘SNS가 유해하다’고 답했다. ‘유해하지 않다’는 응답(22.4%)의 두 배를 넘었다. 또 청소년 38.7%는 하루 평균 4시간 이상을 SNS를 하는 데 썼다.

청소년 절반 “SNS 해로워”… “화려한 남의 일상에 빠질수록 박탈감”
[SNS 디톡스 캠프 찾는 아이들] 10대들에 ‘SNS 중독’ 물어보니
“다들 행복한데 나만 힘든 것 같아”
“사용시간 조절 못해 스스로 자책”
‘좋아요’ 받으려 자해계정 만들기도
현실 속 대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
4일 전북 무주군 ‘국립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공 옮기기 게임을 하며 SNS 없이 여가 활동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4일 전북 무주군 ‘국립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공 옮기기 게임을 하며 SNS 없이 여가 활동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어딜 가든 친구들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게임에 다시 빠지게 됐어요. 하루 5시간 넘게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이민호(가명·14) 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북 무주군에 있는 ‘국립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의 SNS 중독 치유 캠프에 참가했다. 이 군은 잠들기 전 2시간 넘게 숏폼 영상을 보거나 친구들과 영상을 공유하며 채팅을 한다. 이 군은 “여기서는 휴대전화 안 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거나 얼굴 보며 노니까 너무 재밌다”면서도 “캠프를 나가면 금방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군처럼 지난해 이곳 치유 캠프를 수료한 501명 가운데 다시 입소한 중고등학생은 11명에 달한다. 드림마을의 심용춘 기획운영부장은 “SNS에 중독된 아이들은 대부분 사회성이 약해져서 온라인 의존을 줄이기 쉽지 않다”며 “캠프 입소는 단기 처방일 뿐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당사자와 가족의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 청소년 절반가량 “SNS 마음 건강에 해로워”

SNS 중독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 청소년 상당수는 SNS가 정신 건강에 끼치는 폐해가 크다고 봤다. 9일 동아일보가 한국청소년재단,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인 ‘공공의창’과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5.8%는 ‘SNS가 마음 건강에 유해하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19∼22일 전국 15∼24세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SNS가 유해한 이유로는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박탈감’을 꼽은 청소년이 37.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34.3%), ‘과몰입과 집중력 저하를 유발하는 숏폼 콘텐츠’(23.4%) 등의 순이었다.

10대들은 SNS에 빠질수록 다른 사람의 화려한 일상과 자신을 비교하며 박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부산의 한 고교에 다니는 박시우(가명·17) 군은 “SNS를 보니 다들 행복한데 나만 힘든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하루 8시간씩 SNS에 접속한다는 장모 양(15)은 “친구들이 가족과 여행 간 사진을 보면 부럽다”며 “친구들이 못 가진 걸 자랑하고 싶어서 비싼 피규어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연속해서 보여주는 알고리즘은 10대의 SNS 중독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는 “어린 학생들에게 SNS의 숏폼 콘텐츠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지루한 일상 속에 엄청난 도파민을 선사한다”며 “길이가 짧고 화면이 빠르게 바뀔수록 도파민이 강력하게 분비되고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 “SNS 중독, 다른 중독으로 전염될 우려 커”

SNS 중독 치유 캠프에 참가한 한 중학생이 그린 그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할 때는 주가가 오를 때처럼 즐겁고, 하지 않을 때는 주가가 폭락할 때처럼 괴롭다는 것을 표현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SNS 중독 치유 캠프에 참가한 한 중학생이 그린 그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할 때는 주가가 오를 때처럼 즐겁고, 하지 않을 때는 주가가 폭락할 때처럼 괴롭다는 것을 표현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그러나 정작 SNS를 통해 청소년이 얻는 심리적 만족은 크지 않았다. 응답자의 20.7%는 SNS 사용 시간 조절을 하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한다고 했고, 11.7%는 공허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홍다운 부산 충렬중 교사는 “현실의 초라한 내 모습과 SNS에서 부풀린 내 모습이 너무 달라 우울감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SNS 중독은 현실 속 대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학생들이 얼굴을 직접 보고 표정과 행동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일상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버거워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경기 남양주시 오남초교의 박재훈 교사는 “SNS에 빠진 아이들은 교실 속 의사소통에서도 문제를 겪는다”며 “갈등이 있어도 사과나 해결을 온라인으로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좋아요’나 ‘하트’를 받고 싶어 극단적 행동으로 치닫는 학생들도 있다. 자해 계정이나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려 관심을 끄는 것이다. 이번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53%는 ‘자해, 자살과 관련된 생각과 경험을 담은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초교의 전유선 상담교사는 “자해 계정을 만든 뒤 좋아요와 댓글 등을 통해 공감을 얻자 더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다른 아이들까지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SNS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SNS나 게임 중독 청소년은 흡연, 도박 등 다른 종류의 중독에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황인국 한국청소년재단 이사장은 “SNS에 빠져 사고와 행동의 폭이 좁아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해외 선진국들처럼 SNS 연령 제한이나 알고리즘 적용 제외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규제하더라도 아이들은 우회 방법을 찾게 된다”며 “SNS를 건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디톡스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공공의창은 2016년 문을 연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한국사회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시그널앤펄스·소상공인연구소·PDI·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2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관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출범시켰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매달 의뢰자 없는 조사와 분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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