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銀’ 37세 김상겸 “아내와 함께 흘린 세번째 눈물은 달았다”

  • 동아일보

[26 밀라노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맏형’ 韓 400번째 메달… 평창-베이징서 ‘패배의 눈물’ 맛봐
2년전 월드컵서 첫 메달후 자신감… 보드 길이 6cm 늘린후 속도 증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상겸(37)이 8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시상식 때 은메달을 들어 보이며 포효하고 있다. 리비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상겸(37)이 8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시상식 때 은메달을 들어 보이며 포효하고 있다. 리비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게 가장 운이 좋은 일이다.”

‘한국 스노보드 맏형’ 김상겸(37)은 8일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깜짝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한국 올림픽 역사상 400번째 메달이었다.

37세의 무명 선수가 이뤄낸 기적 같은 메달에 이재명 대통령도 “네 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다”며 “대한민국 선수단 모두에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오늘 하루,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길 기원한다”고 축하했다.

취재진의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날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 박한솔 씨(31)였다.

개인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김상겸은 가장 먼저 아내 박한솔 씨를 떠올렸다. 김상겸과 박 씨가 반려견 도일이를 안고 있는 모습. 김상겸 인스타그램 캡처
개인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김상겸은 가장 먼저 아내 박한솔 씨를 떠올렸다. 김상겸과 박 씨가 반려견 도일이를 안고 있는 모습. 김상겸 인스타그램 캡처
김상겸이 박 씨를 처음 만난 건 2017년이었다. 스노보드에 대해 잘 몰랐던 박 씨는 ‘국가대표 운동선수’라는 말만 듣고 소개팅에 나갔다. 김상겸은 “알파인은 더 빨리 내려오는 사람이 이기는 종목”이라고 설명한 뒤 슬로프에 데리고 가 보드 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매력을 어필했다.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박 씨는 이듬해인 2018년 남자 친구가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모습을 직접 보러 갔다. 2014년 소치 대회 때 예선에서 탈락했던 김상겸은 박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16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했지만 첫판에 그대로 탈락하며 대회를 마쳤다.

박 씨는 그때까지도 김상겸에게 올림픽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저 처음 ‘직관’한 올림픽 경기장 분위기가 신기했을 뿐이다. 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박 씨는 “나는 마냥 즐거웠는데 오빠(김상겸)가 생각보다 많이 아쉬워하더라. 끝나고 만나 같이 울면서 ‘오빠한테 올림픽이 엄청 큰 무대였구나’ 하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도 어떻게 해야 오빠에게 도움이 되는지 하나하나 배워갔다”고 돌아봤다. 첫 번째 흘린 눈물은 아쉬움이었다.

4년 후 김상겸은 베이징 올림픽에 나서며 박 씨에게 ‘메달을 목에 걸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 결선에도 오르지 못한 채 쓸쓸히 짐을 쌌다. 대회 후 영상통화를 하면서 둘은 이번에도 울었다. 슬픔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박 씨는 오히려 그때 김상겸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서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슬픔을 나눠도 괜찮은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23년 봄 화촉을 밝혔다. 선수 생활 내내 뭔가가 부족한 선수였던 김상겸은 결혼 이후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2024년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에서 개인 첫 메달을 따냈다.

다만 이번 시즌에는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올림픽 무대로 향했다. 박 씨는 “‘남편의 자신감이 꺾이지 않아야 할 텐데’, ‘새로 바꾼 보드가 괜찮을까’ 걱정이 됐지만 나는 무조건 믿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말은 아끼고 남편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평소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까지 길이 189∼191cm짜리 보드를 타던 김상겸은 이번 시즌 보드 길이를 195cm로 늘렸다. 보드가 길어지면 회전은 어려워지지만 속도를 내는 데는 유리하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올림픽을 앞두고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강점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개인 네 번째 올림픽에서 쟁쟁한 강자들을 잇달아 꺾으며 꿈에 그리던 메달을 아내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됐다.

김상겸이 실업팀(하이원)에 입단해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아내를 만난 이후였다. 김상겸은 하이원 창단(2019년) 전에는 짬짬이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훈련비를 마련했다.

이번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부부는 영상통화를 했다. 박 씨는 이번에는 그 통화를 녹화했다. 남편이 올림픽 메달을 보여주는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세 번째로 같이 울었는데 이번에는 눈물 맛이 달았다”며 웃었다. 세 번째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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