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규제’에 발목잡힌 인천공항 해외사업 수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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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이상 투자 예타 의무화
8600억 印尼롬복공항 개발사업
글로벌 수주전 참여 결정못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해 12월 국내 공항 운영사로는 처음으로 해외 공항의 운영 개발 사업을 수주한 인도네시아 바탐 항나딤 공항 
전경. 국내 공항이 해외 공항 사업을 확대하려면 경직적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해 12월 국내 공항 운영사로는 처음으로 해외 공항의 운영 개발 사업을 수주한 인도네시아 바탐 항나딤 공항 전경. 국내 공항이 해외 공항 사업을 확대하려면 경직적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올해 입찰공고가 나오는 인도네시아 롬복공항 개발사업. 총 8600억 원 규모로 롬복공항 30년 운영권은 물론이고 배후도시 개발권까지 포함돼 글로벌 공항들이 벌써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수주전 참여를 결정 못 하고 있다.

이는 민관협력(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사업으로 수주국의 공공기관 최소 투자액이 600억 원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금액을 투자하려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받아야 한다. 예타에 드는 기간은 최소 6개월. 통상 3개월간 진행되는 경쟁입찰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억눌렸던 항공 수요 회복으로 한동안 멈춰 있던 국제공항 개발 수주전 열기가 최근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은 일률적인 ‘예산 규제’에 묶여 경쟁의 출발선에도 못 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정부와 인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해외사업 매출액은 지난해 273억 원으로 3년 연속 200억 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항공 수요가 정상이었던 2019년 인천공항 전체 매출에서 해외 사업 매출 비중은 0.9%에 그친다. 이는 인천공항공사가 해외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사실상 500억 원 이하로 묶여 있는 영향이 크다.

해외 수주전 ‘예타 족쇄’… 佛-獨공항 年1조 벌때, 인천공항 200억


‘획일적 예타 규제’
500억 이상 투자땐 ‘예타’ 받아야… 대형 프로젝트 수주전 엄두도 못내
지난해 매출액중 ‘공항 수출’ 비중… 獨 39%-佛 27%-인천공항 4.9%
엔데믹에 세계 공항 개발 본격화
전문가 “예타 면제규정 완화 시급”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국제공항 개발사업. 사업비 4000억여 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글로벌 공항 운영사들이 앞다퉈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아예 포기해야 했다. 반면 지난해 12월 인천공항공사는 인도네시아 바탐 항나딤 공항 개발 사업 수주전에서 25년간의 공항 운영·개발권을 따냈다.

두 사업의 성패를 가른 것은 기술력도 네트워크도 아닌 투자액 규모였다. 제다공항 사업은 민관협력(PPP) 사업이어서 인천공항공사가 공공기관 자격으로 1000억 원을 투자해야 했다. 해외사업에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받기 위한 기준선인 공공기관 투자액 500억 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반면 바탐 공항은 총 투자액 2000억 원 중 기준선 아래인 480억 원만 투자하면 돼 수주전에 나설 수 있었다.

11일 인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공항의 해외 사업 매출액은 273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5594억 원)의 4.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공항 운영사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을 운영하는 프라포트는 지난해에만 그리스 14개 공항 등으로 총 매출액(약 2조8000억 원)의 39.3%인 매출 1조1000억 원을 해외에서 거뒀다. 프랑스 샤를드골공항을 운영하는 파리공항공사(ADP)도 지난해 터키 안탈리아공항 운영권 등을 수주하며 총 매출액의 26.7%인 약 9600억 원을 해외에서 올렸다.

인천공항은 세계 공항서비스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공항 운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공항 수출’ 실적은 초라한 셈이다. 실제 프라포트와 ADP는 각각 해외 공항 20여 곳을 운영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바탐공항 등 2곳뿐이다.

이 같은 차이는 한국의 예타 면제 요건이 경직된 영향이 크다. 해외 공항 인프라 개발사업은 대부분 해외 공항운영사에서 투자를 유치해 인프라 확장비용을 충당하고 추후 운영 수익을 나눠주는 구조다. 투자 규모가 수주전의 성과를 가르는 주된 요소인 셈이다.

한국의 경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이 총사업비 1000억 원 이상인 해외사업에 500억 원 이상 투자하려면 반드시 기획재정부 예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예타 면제 기준을 현재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올리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별도 법규를 적용받는 해외사업은 이번 완화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글로벌 공항운영사들은 사업 타당성과 예산 반영을 자체 판단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사업을 따낸다. 한국과 같은 예타 제도를 도입하는 국가는 일본(사전타당성평가 방법론) 외에는 찾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해외공항 개발·운영사업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등 파급효과가 큰 만큼 예타 면제 규정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엔데믹으로 항공 수요가 회복되면서 내년부터 쿠웨이트, 폴란드 등에서 대규모 공항 개발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항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해외 수주 매출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지금은 해외사업 수주전에서 활약할 실력은 있는데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아 발끝만 담그고 있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예타 규제#인천공항#해외사업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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