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간을 품은 건축으로[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입력 2021-03-09 03:00수정 2021-03-0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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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설비 등 절반만 완성한 집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직접 완성해 나간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반쪽짜리 집(Half a house)’ 프로젝트(위 사진)와 르완다 난민이나 일본 대지진 이재민 등을 위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로 만든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의 가설주택. 프리츠커재단 홈페이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몇 년 전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벌어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이세돌과 세계 정상의 바둑기사들을 완벽하게 이긴 AI 알파고의 대결은 대단히 관심을 끌었고, 모두가 아는 대로 이세돌이 네 번 지고 한 번 이기며 끝이 났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인간이 이길 수 없다는 결과를 앞에 놓고 기계에 졌다고 좌절을 해야 할지, 인간의 기술이 이제는 인간을 이길 정도로 발전했다며 기뻐해야 할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러다가 영화나 공상과학소설의 내용처럼 인간이 결국 기계에 쫓겨나거나 종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러나 정작 걱정해야 할 문제는 인간을 앞서나가는 기계나 인공지능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몸속에 숨어 있는 야만, 혹은 반지성적인 행동과 사고라는 씨앗들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인간의 문명이 이전 시대보다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해 왔지만 과연 그런가. 미국의 의사당을 침탈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력적인 행동, 혹은 미얀마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반지성의 행태들을 보면 문명의 발전에 회의가 생긴다. 화성으로 쏘아올린 우주선이 보낸 화성 사진에 열광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주변과의 소통이 막힌 채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1년째 우리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현대라는 고속전차를 굉음과 함께 급정거시킨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그간의 속도에 보지 못했던 주변의 풍경을 차츰 보게 되었고, 그동안 세계화의 기치를 들고 앞으로만 달려 나가던 문명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건축은 인간을 위해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의 건축은 기능과 과시적 건축에 몰두하고 놀라운 조형과 효율에 건축의 기본적인 가치를 양보하고 있다. 세기말 현상처럼 20세기 말부터 현재의 건축은 건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진정성보다는 자본에 봉사하고 시선을 끄는 건축으로 변화하고 있다. 건축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데이터와 경이로운 외관이 우선시되고, 건축은 점점 온기도 없고 성찰도 없는 기계와 닮아가고 있다. 아니, 닮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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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해 지은 경기 수원시의 백화점 건물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마치 염증이 심한 피부 같은 껍질을 둘러쓴 건물을 보면서, 눈길을 끌긴 하지만 오로지 상업성을 위해 존재하는 건축 같다고 생각했다. 존재의 의미나 존재의 무게보다는 행사를 위해 잠시 열린 박람회를 위해 지은 건물처럼 공허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끝을 보는 듯, 혹은 세기말의 어두운 미래를 보는 듯하다.

현대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점점 가속도가 붙어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고 우쭐댄다. 더불어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이루어야 했던 일들이, 이제 사람의 힘은 아주 적게 들어가더라도 별다른 문제없이 수행된다. 인간은 이제 인간보다는 프로그램과 기계를 더욱 믿는다.

100년 전 현대건축은 사회성과 시대적인 고민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흡족해지며 모든 분야에서 인간이라는 중요한 인자의 의미를 자꾸만 축소시켜 인간은 점점 소외되고 도시는 점점 건조해진다.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중심에 놓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놀라운 조형이나 낯선 재료, 비틀어진 공간보다 인간을 받아들여주고 안아주는 건축이 돌아와야 한다.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도시 재건 프로젝트나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설계를 맡으며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신뢰하는 태도로 임한다. ‘반쪽짜리 집(Half a house)’ 프로젝트는 저예산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설비 등 절반만 완성한 집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직접 완성해 나가는 방식을 제안했다. 초기 개발비용의 부담을 덜고 거주지를 유지하게 된 주민들은 입주 후 각자의 생활과 능력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집을 고치고 증축했다.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는 가공하기 쉬운 종이를 이용해 르완다 난민이나 고베 대지진 이재민 등 약자를 위한 가설주택을 만들었다. 종이 튜브와 텐트 등 저렴한 자재로 손쉽게 만들어진 주택은 어디서나 운반과 폐기, 재활용이 용이해 세계의 수많은 재난지역에 적용되었다. 문명으로부터 소외된 자리에 있는 인간을 돌아보고 인간성의 회복을 돕는 건축은 화려하게 치장한 그 어떤 건축보다 아름답다.

윌 듀런트는 ‘문명이야기’에서 “혼란과 불안정이 끝나는 지점에서 문명은 시작된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호기심과 건설정신이 자유롭게 발산되고, 나아가 인간이 타고난 본능적 충동을 넘어 삶을 이해하고 멋지게 꾸미며 노력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코로나19의 끝에는 다시, 휴머니즘이 중요한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건축#인간#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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