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 품은 냉이[이재국의 우당탕탕]〈51〉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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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집 앞 공터에 어른 여럿이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물어봤더니 냉이를 캐고 있다고 했다. 나는 냉이 캐기에 동참하고 싶어 집에 오자마자 작은 모종삽을 집어 들었다. “자기 냉이 캐봤어?” “그럼, 어릴 때 논두렁에 가서 많이 캐봤지.” “괜히 이상한 거 캐오지 말고 그냥 사다 먹자.” “내가 금방 캐올 테니까 된장 준비하고, 물 올려놔!”

나는 아내의 걱정을 듣는 둥 마는 둥 장비를 챙겨 냉이 캐기 대열에 동참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아직 덜 녹은 탓인지 땅은 딱딱했다.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은 풀들 사이로 초록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름 모를 들풀이었지만 초록색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나는 냉이처럼 보인 것들을 열심히 캤다. 어떤 것은 뿌리가 깊어 한참 흙을 판 다음에야 캘 수 있었다. 냉이 장사할 것도 아니고, 냉이 된장찌개 한 끼 먹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열다섯 뿌리 정도를 캐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나물을 깨끗이 씻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냉이가 아니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내가 캔 냉이를 들고 다시 공터로 가서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냉이도 있고, 지칭개도 있고, 민들레도 있네요”라는 답을 들었다.

나는 궁금해서 냉이와 지칭개, 민들레를 검색해봤다. 냉이와 지칭개는 생긴 게 정말 비슷했다. 다만 냉이는 뿌리가 더 굵고 하얀 빛이 난다면 지칭개는 잎이 더 넓게 퍼져 있고 뿌리가 얇고 붉은 빛이 돌았다. 그리고 뿌리를 코끝에 대고 향을 맡아보니 냉이 향이 확실히 좋았다. 지칭개는 지천에 널려 있어서 지칭개라는 말도 있고, 놀라거나 망설이는 모양의 우리말 ‘주춤’에서 왔다는 설도 있었다. 지칭개는 쓴맛이 많이 나는 편이지만 봄철 최고의 건강 음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민들레는 냉이보다는 지칭개와 생긴 게 비슷해서 내가 착각한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캔 열다섯 뿌리 중에 다섯 뿌리만 냉이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지칭개. 나는 냉이와 지칭개를 알려주신 아주머니께 지칭개를 모두 드리고 냉이 다섯 뿌리만 들고 집으로 왔다.

작은 뚝배기에 냉이 다섯 뿌리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먹기 전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리고 한 입 뜨자마자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울컥했다. 냉이에 콩가루를 묻혀 된장 푼 물에 푹 끓여주시던 엄마의 냉잇국이 생각나서였다. 학창시절 아침에 냉잇국이 나오는 날이면 깨우지 않아도 눈을 떴다. 된장국 냄새 사이로 상큼하게 묻어오는 냉이 향. 아침 먹고 학교에 갔다가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서 냉잇국을 또 먹고 가고, 저녁에 자기 전에 한 그릇 더 먹고 잘 정도로 좋아했던 엄마의 냉잇국.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엄마의 냉잇국이지만, 냉이가 엄마 생각을 불러온 덕분에 한참을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학창시절 ‘봄은 어머니다’로 시작하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것 같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봄#향기#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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