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놓치지 말기를[이재국의 우당탕탕]〈50〉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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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후배 A는 늘 바빴다. 학창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해도 하나만 하는 법이 없었고, 꼭 두 개씩 했다. 다들 학창시절을 즐기기 바빴을 때도 A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열심히 콘퍼런스도 쫓아다니고 시간을 쪼개서 생활했다. 그렇게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A를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엔 뜬금없이 찾아와 보험을 들어달라고 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건 보험이 제일 좋다며 쉴 새 없이 설명했고 결국 난 보험에 가입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직업을 바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학 동문 모임이 있는 날에도 얼마나 바쁜지, 약속 시간에 늦게 왔지만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일정이 촉박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를 다시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콘텐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콘퍼런스에 갔다가 거기서 오랜만에 A를 다시 만났다. 요즘은 방송작가 안 하고 콘텐츠 제작사를 차렸다고 했더니, “잘하셨어요, 형. 요즘은 디지털이 대세죠. 앞서가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미래를 선점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내가 A에게 궁금한 건 결혼은 했는지, 요즘 취미 생활은 뭔지, 요즘도 글 쓰는지, 이런 일상에 관한 일이었다.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 대학시절부터 20년 넘게 알고 지낸, 그야말로 우정을 나눈 관계였기에 그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했는데 A는 예나 지금이나 미래 타령이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과 미래 얘기만 하고 헤어졌다.

그날 A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를 맺고 난 후에야 그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게시물을 공유하거나 뉴스를 공유하는 게 전부였다. A는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면 서둘러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고, 틱톡이 대세라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틱톡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요’를 누르면 바로 전화가 와서 “형! 유튜브 해야 돼. 이제는 유튜브가 미래야!” 그렇게 또 미래 타령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A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당분간 유튜브도 접고, 잡혀 있던 강의도 취소하고 온전히 휴식을 취할 거라며 목적어가 없는 사과문을 올렸다. 난 걱정이 되어 바로 전화를 했다. “괜찮아?” “지금은 집에 와서 쉬고 있어요, 형.” “아무리 바빠도 건강 챙기면서 해야지.” “3일 정도 쉬면서 생각해봤는데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네요, 형.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주변을 돌아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너 그동안 너무 미래를 위해 산 거 아니니? 미래도 중요하지만 건강해야 미래가 있지. 그리고 우리는 현재를 사는 거잖아.”

새해가 되면 각종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이 잘 팔린다. 다들 미래가 알고 싶겠지만 그 책을 읽어보면 모두 과거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들뿐이다. 과거를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했겠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를 좇느라 ‘오늘’을 놓치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에 별만 좇는 사람은 발아래 들꽃은 못 보는 법이니까.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학창시절#아르바이트#콘텐츠 제작사#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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