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편측광장[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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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에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보면 오른쪽으로 뻗어가는 등선에 정자가 하나 보인다. 청운대다. 광화문 일대가 가장 잘 보이는 북악산 능선의 지점이다. 한양도성길을 따라 청운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경복궁 축선과 세종로 축선이 일치하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세종로 축선이 경복궁 축선에서 5.6도 동쪽으로 꺾여 있다. 일본이 신작로를 만들 때 한국의 기를 꺾으려고 일부러 꺾어 놓았다고 한다.

▷일부 복원주의자들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면 그 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복궁 축선과 일치하게 세종로를 서쪽으로 꺾으면 세종문화회관에서부터 벌써 세종로 서쪽이 건물에 닿을 듯이 지나간다. 따라서 축선을 바로잡으려면 서쪽에 자리 잡은 건물은 경복궁에서 멀수록 누진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반대편 건물은 누진적으로 앞으로 나와야 한다. 불가능한 주장인데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하는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없지 않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광화문광장 변경 계획은 복원주의자들에 호응해 광화문 앞 월대(月臺)를 조선 때처럼 복원하고자 남쪽으로 세종로사거리까지 세종로 도로 구간을 아예 없애고, 광화문 앞을 동서로 잇는 사직로도 정부서울청사 쪽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쪽을 잇는 왕복 2차로 지하도로를 확대해 우회시킴으로써 광화문 일대 전체를 공원화한다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이 발상은 행정안전부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사직로는 유지하되 세종로는 교보 쪽으로만 남겨두는 편측광장 계획이 나왔다. 서울시는 시공사와 5일 계약을 끝냈고 곧 공사에 들어간다.

▷광화문 편측광장 계획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만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의 광장이 좌우대칭이 아닌 편측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감 탓이다. 광장 자체만 생각하면 양쪽으로 차가 달리는 것보다는 한쪽으로만 차가 달리는 것이 더 사람 중심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나라의 중심 공간이 편측으로 이뤄진 곳은 거의 없다.

▷편측광장이 되면 이순신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 위치에서 벗어난다. 박 전 시장은 이순신 동상까지 옮기려 했으나 여론의 반대가 커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조각가 김세중이 만든 이순신 동상은 작품 자체가 뛰어날 뿐 아니라 청와대와 옛 궁궐 앞에 나라를 지키듯이 서 있는 위치 때문에 사랑받는 작품이다.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 경비처럼 한편에 서 있는 모양새는 곤란하다. 편측광장화로 차도가 줄어 그렇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에 심한 교통체증이 더 늘 것이 확실하다. 현재 상태로 큰 불편이 없다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광화문 편측광장 계획#일제 잔재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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