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행동-감정변화 세심하게 살피고 눈높이 언어로 불안감 씻어줘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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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째 집콕 아이들 ‘심리방역’ 요령
ADHD-인터넷중독 등 후유증 심각
영유아는 식사량 변화-퇴행행동도
잘못된 정보 접하지 않게 관리하고 수면-게임시간 규칙 함께 만들어야

미국심리학회가 만든 가이드북 이미지 컷. 어린이가 코로나19에 맞서는 모습을 표현했다. 출처:미국심리학회
미국심리학회가 만든 가이드북 이미지 컷. 어린이가 코로나19에 맞서는 모습을 표현했다. 출처:미국심리학회
#1. 경기 하남시에 사는 정모 씨(36·여)의 아들(10)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친구들을 못 보는 게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 힘들어져 응급실을 찾은 적도 있다. 주말에 여행을 가려고 하면 “코로나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돌아다닌다고 욕할 수도 있다”며 외출도 극도로 꺼린다.

#2. 4남매를 키우는 김모 씨(38·여)의 큰딸(8)은 최근 원형탈모 치료를 받고 있다. 평소 태권도가 취미인데, 다섯 달째 태권도 학원을 못 다니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였기 때문이다. 여섯 식구가 집에만 머물다 보니 서로 부딪치는 일도 잦아졌다. 셋째(5)는 누나들과 싸우면 장난감을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팬데믹(대유행)이라는 낯선 재난을 처음 접하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아이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학교에 못 가고 친구들과 만날 수 없는 것도 아이들에겐 큰 스트레스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아동상담센터 등엔 이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상담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고민수 고려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손 씻기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지거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는 아이들이 증상이 심해져 내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래보다 예민한 아이일수록 코로나19를 견디기가 더 버거운 것으로 조사됐다.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연구팀이 올 2∼6월 서울대어린이병원 ADHD 클리닉 환자와 우울증 등으로 내원한 136명을 관찰한 결과 기존 치료에 변화가 없는데도 65%는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 활동 감소와 감염에 대한 공포, 친구들과의 교류 단절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족 내 갈등,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최근엔 게임이나 인터넷 중독을 고민하는 상담이 늘어나는 추세다.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생활 리듬이 무너진 영향으로 보인다. 실제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올 4월 11∼17세 청소년 1009명을 조사한 결과 운동 시간은 평균 21분 줄었고, 스마트폰과 게임 등 미디어 이용 시간은 2시간 44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에 빠져 있는 등 시간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많아졌다”며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졌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행동이나 감정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언어발달이 덜 된 영유아들은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를 표출한다. 식사량 변화, 분리 불안, 주의력 저하, 퇴행 행동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과도한 공포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인터넷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접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해 묻는 아이에게 “몰라도 된다”며 무시하거나 “아빠 말을 안 들으면 감염될 수 있다”고 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 부모가 아이 눈높이에 맞는 쉬운 언어로 코로나19를 설명하면 아이의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가령 ‘거리 두기’ 대신 ‘두 팔 벌린 만큼 떨어져 있기’나 ‘바이러스가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친구들과 당분간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부모의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것도, 악화시키는 것도 결국 부모에게 달렸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부모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흡수한다”며 “육아 스트레스에 부모가 번아웃(Burnout·소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수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모든 일상을 챙겨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수면 시간을 지키고, 휴대전화나 게임 이용 시간 등 큰 틀의 규칙을 자녀와 함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심리방역#코로나19#코로나 블루#스트레스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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