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대구동산병원 ‘코로나19 기억의 공간’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코로나와 싸운 ‘대구 방역’ 현장
의료품-응원편지-사진 등 전시
사망자 추모하는 공간도 조성

대구 중구 대구동산병원의 옛 의료진 사택. 대구시와 대구동산병원이 이곳을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으로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대구동산병원 제공
대구 중구 대구동산병원의 옛 의료진 사택. 대구시와 대구동산병원이 이곳을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으로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대구동산병원 제공
독일 바이에른주 잉골슈타트의 의학사 박물관은 특이한 모양의 마스크를 전시하고 있다. 방독면처럼 얼굴부터 가슴까지 덮는 마스크는 동물 가죽 재질이다. 코 부분은 마치 새 부리처럼 길고 뾰족해 생김새가 다소 섬뜩하다.

이 마스크는 사실 유럽인들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1300년대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해 유럽 전체 인구의 30% 이상인 3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마스크는 당시 의사들이 착용했던 보호 장구로 새 부리 형태의 코 부분에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한 각종 약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잉골슈타트 의학사 박물관은 흑사병으로 생긴 깊은 상처와 역사를 되새기고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마스크를 전시한다. 유럽의 대표적 다크투어(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여행) 관광지로 꼽히는 이유다.

대구시와 대구동산병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과 극복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을 조성한다. 대구의 대표적 다크투어 관광시설로 만든다는 목표다.

9일 대구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당시 전국에서 대구로 전해온 격려 편지, 사투를 벌인 의료진이 사용한 장비, 주요 장면을 기록한 사진 및 영상물 전시관과 사망자를 추모하는 공간을 갖춘 ‘기억의 공간’(가칭)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5월 대구시와 대구동산병원이 진행한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대구동산병원 측이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조성 사업을 먼저 제안했고 권 시장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와 대구동산병원은 기억의 공간 조성을 위해 지난달 5일 첫 회의를 열었다. 당초 대구동산병원 내 유휴 공간 일부에 마련한다는 계획에서 출발했지만 논의를 거치면서 조성 규모가 더 커졌다.

대구시와 대구동산병원은 기억의 공간을 병원 외부 빈 건물 가운데 한 곳을 통째로 이용해 조성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때 의료진 사택으로 이용한 의료선교박물관 주변 빈 건물과 현재 운영을 중단한 동산의료원 어린이집이 대상이다. 조만간 전시 분야 전문가와 함께 세부 조성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대구시가 기억의 공간을 대구동산병원에 조성하기로 한 것은 코로나19 사태 당시 병원이 보여준 희생과 헌신에 대한 보답 차원이다. 대구동산병원은 2월 지역에 코로나19가 확산세가 커질 때 감염병 전담병원을 자처했다.

이곳 의료진은 2월 21일부터 115일 동안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였다. 총 1067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해 981명이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대구동산병원 소속 의사 등 의료진 429명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온 의료 봉사자 440명이 치료 현장에서 활약했다.

대구시는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중앙로역 추모벽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이 같은 경험을 살려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을 단순히 지역민들을 위한 곳으로 조성하지 않고 다른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코로나19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대구(D) 방역’ 현장의 교훈을 기억할 수 있는 다크투어 관광지로 확대 개발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대구동산병원 의료선교박물관이 현재 시티투어의 출발 지점인 만큼 인접 서문시장과 연계한 관광 코스를 구상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코로나19의 아픈 역사를 곱씹으면서 숭고한 의료진의 희생과 대구시민의 성숙한 방역 의식을 본받을 수 있는 교육 현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동산병원#코로나19 기억의 공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