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트럼프 2기 유럽, 고기만 있는 식사에 초대받은 ‘채식주의자’ 신세”

  • 동아일보

이반 크라스테프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센터 이사장
대서양동맹·NATO 체제 최대 위기… 유럽, 안보자강 소홀했던 것 사실
美, 핵 경쟁으로 러시아 재정 압박 의도… 우크라戰, ‘정전-충돌’ 반복 우려
韓 계엄 극복, 민주주의 저력 보여줘… 저출산 현상 심각, 깊이 들여다봐야

유럽의 유명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센터 이사장은 5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안보 자강에 소홀했고 대서양 동맹을 홀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세계대전 후 수립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종언을 맞았다”고 논평했다. 크라스테프 이사장 제공
유럽의 유명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센터 이사장은 5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안보 자강에 소홀했고 대서양 동맹을 홀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세계대전 후 수립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종언을 맞았다”고 논평했다. 크라스테프 이사장 제공
《“지금 유럽은 식탁에 고기만 놓여 있는 식인종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채식주의자 같은 상황이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유럽의 유명 정치학자로 ‘민주주의 위기’ 연구를 활발히 해온 이반 크라스테프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센터’ 이사장(61)은 5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뒤 유럽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및 관세 압박, 덴마크령 그린란드 합병 위협 등으로 대서양 동맹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있는 현실에도 유럽의 대응책이 마땅하지 않음을 자조한 것이다. 그는 “유럽연합(EU)은 단일 국가가 아닌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안보 투자에 소홀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은 타당하다며 자성론도 제기했다.》

크라스테프 이사장은 유럽외교협회(ECFR) 설립 위원으로 오스트리아 빈의 인문과학연구소(IWM) 종신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각종 저서와 기고를 통해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유럽의 분열 등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명쾌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크라스테프 이사장은 한국의 12·3 계엄 극복 과정에 대해 “민주주의는 늘 위기 속에 있지만 한국의 사례는 ‘위기가 곧 끝이 아니다’라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트럼프 집권 2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1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등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트럼프 집권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고 자유주의 질서가 끝났다는 가정에서 정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기존 동맹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은 역대 가장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서양 동맹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에 직면했나.

“러시아의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나토 체제의 위기 등으로 유럽은 미국의 안전보장을 더 이상 당연하게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글로벌 무역 시스템 해체와 중국의 저가 공세가 지속되면서 유럽이 느끼는 경제적 압박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복합적인 위기로 EU는 1993년 창설 후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각국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는 유화책을 펴면 국내 정치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면 국내 선거에서 이기는 사례가 많다. 카니 총리, 덴마크 정부 등이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파급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딱히 효과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론이 대서양 동맹에 큰 균열을 야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린란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같은 상징물이다. 푸틴 대통령처럼 영토를 확장해 역사적 유산을 남기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이다. 그린란드를 사거나 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나토 체제를 이해한다면 절대 주장할 수 없는, 근거가 없는 발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욕이 결실을 볼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했던 방식으로 그린란드를 사거나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 군사적 침공 또한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 그린란드 내에 더 큰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 식으로 미국과 덴마크가 협상할 것으로 보인다. 미군 수뇌부, 미국 집권 공화당의 주요 의원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린란드 합병은 일종의 자살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서 점차 물러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론이 자원 채굴권 등 막후 이익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라는 분석이 있다.

“그린란드의 희토류와 광물 자원은 시장경제 방식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미국 기업들이 일부 이점을 얻을 순 있겠지만, 결국 땅은 덴마크가 소유할 것이고 모든 인허가도 덴마크 정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교한 계산 없이 그린란드 병합론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스스로 영토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당한 논거를 가진 주장이라고 본다. 유럽은 안보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대 큰 전쟁이 유럽 땅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주요 고객인 유럽이 절대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또한 유럽의 안보 자강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가까워지기 위해 대서양 동맹을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기에 유럽 안보의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미국은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높이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유럽에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보진 않는다. GDP 대비 국방비를 현 수준에서 1.5%포인트 내외 높이라는 주장인데 유럽 각국의 우려만큼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국방비 안에는 각종 인프라 비용이 포함될 수 있다. 예컨대 안보 목적의 도로나 교량 건설도 이 비용에 포함된다. 국방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도 유럽이 미국 등을 기술적으로 따라잡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유럽의 다른 국가를 공격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매우 예측하기 어렵지만 러시아가 추가 공격을 감행할 준비가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인적, 재정적 자원을 상당수 소진했다. 올해 안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휴전이 가능하다고 해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 각국의 재무장 속도가 빠른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의 도발에 대한 유럽의 대비는 더 강해질 것이다. 러시아로선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낄 것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유럽에서 전쟁을 절대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언제든 상상하기 힘든 일까지 일어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을 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거창한 평화 협정이 체결되기보다는 ‘정전(Ceasefire)’에 가까운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처럼 어느 정도 규칙이 있고 통제가 되는 ‘동결된 갈등’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기보다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적 위기와 분열을 가중시키는 것을 더 기대하고 있다. 정전과 충돌이 반복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다.”

―대서양 동맹의 균열로 중국, 러시아 등 반(反)서방 진영이 반대급부를 얻었다는 평가가 많다.

“유럽과 미국의 균열, 트럼프의 관세 위협 등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중국이다. 유럽외교협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트럼프로 인해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감소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중국은 러시아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경기에 나설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어떻게 전망하나.

“북-러 관계가 한일 관계보다 더 따듯해 보인다. 북한이 포탄을 러시아에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사람’이다. 러시아는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데, 향후 러시아의 노동시장에서 북한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도 자국 군대의 군사적 경험을 쌓기를 원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거뒀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이 5일 만료됐다. 미국이 연장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일단 중국을 새로운 핵 조약에 포함시키겠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그 기저에는 세계 각국의 핵 군비 경쟁을 가속화해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상당한 돈을 낭비한 러시아 경제를 재차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보인다.”

―뉴스타트 만료로 세계 핵 군비 경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군인을 충분히 확보하는 건 돈도 많이 들고 안전보장에 효과적이지도 않다. 모든 국가들이 핵보유국이 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핵 비확산 조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로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국 또한 자체적인 핵무장 확대에 나설 것이다. 한국 일본 등도 핵 보유를 두고 고심이 깊어질 것이다.”

―저서 ‘모방 시대의 종말’에서 많은 국가들이 서구식 자유주의를 일방적으로 모방한 것이 각종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제 20세기에 태어난 모든 유형의 정치적 정체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 중국뿐 아니라 유럽 등 모든 나라는 향후 5년 안에 우리가 알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모든 국가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있고, 자신을 재발명해 나가고 있다. 이런 변화에 놀라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2024년 12월 계엄 사태를 겪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다 해도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드러낸 사례였다. 강압적인 인물이 등장해 계엄령을 내려도 한국 국민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가만히 두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늘 있지만 위기가 끝이 아니라는 걸 한국이 제대로 보여줬다.”

―2026년의 한국 사회를 평가한다면….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소프트파워가 크고 매우 부유하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매우 낮다는 점에 주목한다. 더 많은 아이를 갖기 위해 사회 전체가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큰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유럽 또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반 크라스테프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센터 이사장

△1965년 불가리아 루코비트 출생
△1990년 불가리아 소피아대 철학부 졸업
△1991년 싱크탱크 자유주의전략센터 창립
△2000년 오스트리아 빈 인문과학연구소종신 연구원
△2005년 유럽외교협회(ECFR) 창립 이사
△2019년 저서 ‘모방 시대의 종말’ 출간
△2025년 유럽투자은행(EIB) 글로벌 자문위원회 위원
△2026년 글로벌 안보포럼 글로브섹(GLOBSEC) 이사
△2026년 국제 분쟁관리 NGO 국제위기그룹(ICG)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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