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코로나로 현장유세 어려워… 광고비 쏟아붓는 ‘돈의 전쟁’[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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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vs 바이든, 사상최대 선거비용

11월 3일 실시되는 미국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이번 선거가 역대급 ‘전(錢)의 전쟁’ 양상을 보일 조짐이 뚜렷하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현장 유세의 제약이 커짐에 따라 집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측 모두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TV 광고비 지출을 대폭 늘리고 있다. 올해 대선비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이유다.

유례없는 돈 선거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아웃사이더인 내가 워싱턴 정치의 적폐를 청산하겠다. 개인 및 기업의 기부액 상한선을 없앤 특별 정치활동단체 ‘슈퍼팩(Super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은 부패했다”며 슈퍼팩 제도를 손볼 뜻을 드러냈다. 하지만 집권 후에는 지지자들의 슈퍼팩 광고를 말리기는커녕 독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전임자와 달리 취임 직후부터 재선 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서 금권정치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올해 대선비용 30억 달러 넘을 듯

미국의 정치자금 후원은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후보자 개인 또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직접 지원, 슈퍼팩을 통한 간접 지원이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의 지지자, 노조 등 이익단체가 자발적으로 만든 외곽 조직으로 겉으로는 후보자 및 정당과 엄격히 분리돼 있다. 슈퍼팩에 모인 돈을 후보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은 금지돼 있어서 특정 정책에 대한 의견 광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후보자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모금 내역과 기부자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미 전체 선거자금의 약 3분의 1이 슈퍼팩을 통해 유입된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슈퍼팩과 후보자의 분리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상당수 후보가 측근 및 캠프 인사를 슈퍼팩 설립자 및 주축 인사로 내세우는데다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어렵다. 양측의 공모 여부를 칼로 무 자르듯 판단하는 것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2010년 연방대법원이 슈퍼팩에 대한 기업 및 개인 기부액 상한선을 없앰에 따라 ‘돈이 곧 표현의 자유(Money is speech)’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화당의 큰손으로 유명한 에너지 재벌 코흐 형제를 비롯한 극소수 부호들이 정치권과 결탁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를 만들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슈퍼팩이 내보내는 광고의 대부분이 지지 후보의 정책을 선전하기보다 상대 후보를 비방한다는 점도 이런 비판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된다.

미 연방선거위원회(FEC)에 따르면 1992년 대선 전까지는 당내 경선비용을 포함해도 양당이 쓴 전체 선거비용은 4억 달러 미만이었다.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가 약 7억8000만 달러를 모아 개별 후보 모금액 기록을 깼고, 2010년 슈퍼팩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전체 금액은 눈 덩이처럼 불었다.

지난달 말 기준 양당 후보와 각 당의 경선에 등판했던 후보들이 쓴 비용은 이미 29억 달러를 넘었다. 특히 지난해 11월 민주당 경선에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올 3월 하차한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약 100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무려 5억 달러를 쓰면서 비용 증가를 주도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총 14억2570만 달러를 모금하며 또 한번 대선 모금 비용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모금액은 총 9억5760만 달러였다. 2016년 두 후보 합산 23억8300만 달러였다. 이를 감안할 때 올해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 측의 합산 선거 비용 역시 30억 달러(약 3조6000억 원)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 트럼프 누적 모금액 바이든 앞서

현재 트럼프 캠프는 누적 모금액 기준으로 바이든 캠프에 앞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 직후부터 재선 자금 모금을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현직 대통령이 집권 1, 2년 차에는 국정 운영에 집중하고 3, 4년 차 때부터 재선 준비에 나선 것과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트럼프 재선 캠프는 집권 20개월 만인 2018년 9월 모금액 1억 달러를 넘겼고, 올해 7월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답게 ‘굿즈’ 판매로도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는 4년 전 대선구호였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브랜드로 만들어 재선 모금에 활용했다. 그가 공개석상에서 자주 착용하는 MAGA 구호가 적힌 빨간 모자는 재선 캠프 웹사이트에서 45달러(약 5만4000원)에 판매된다. 또 다른 비영리단체 공공청렴센터(CPI)에 따르면 MAGA 굿즈 판매 수익은 2017∼2018년 트럼프 재선캠프 자금 모금의 약 30%를 차지했다.

FEC 등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트럼프 캠프가 현재까지 모은 금액은 9억6480만 달러다. 바이든 캠프는 9억1980만 달러를 모았다. 최근 몇 달간 실적은 양측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다만 대선에서 돈을 더 많이 쓴 후보가 꼭 이기는 건 아니다. 4년 전 대선에서 클린턴 전 후보는 트럼프 후보보다 약 5억 달러가 많은 14억2500만 달러를 썼지만 핵심 경합주에서 패하는 바람에 백악관 주인 자리를 넘겨줬다. 반면 클린턴 후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6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밥 돌 후보보다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압승했다.

○ 이달부터 TV광고전 치열

돈 전쟁의 핵심 전장(戰場)은 TV광고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현장 유세가 사실상 사라져 TV광고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세 차례 TV토론과 이 시기에 등장할 광고가 대선 승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미 친(親)트럼프 성향 슈퍼팩 ‘아메리카 퍼스트 액션’은 9월 이후 2400만 달러어치의 광고를 사전 예약했다. 트럼프 캠프 자체적으로도 9월 이후 TV광고 물량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광고 제작자인 닉 에버하트는 NYT에 “유권자의 마음은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정해진다”고 했다. 트럼프 캠프는 공화당 전당대회(8월 24∼27일) 기간 중 TV광고를 거의 내보내지 않았다. ‘지지율 열세 상황에서 굳이 많은 돈이 드는 TV광고를 과도하게 할 필요가 없다. 대선 직전에 화력을 몽땅 쏟아 붓자’는 캠프 내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바이든 캠프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8월 17∼20일 나흘 동안에만 TV광고에 1600만 달러를 썼다. 9월에도 핵심 경합주,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남부 텍사스와 조지아주에 집중 광고를 내보내기로 했다. 특히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해 민주당에 결정적 타격을 안겼던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538명 중 20명),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 등을 대대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양측 모두 현장 유세에 제한을 받고 있어 디지털 광고 또한 과거 대선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캠프는 바이든 캠프에 비해 디지털 광고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바이든 캠프는 핵심 지지층인 여성 유권자를 사로잡기 위해 페이스북 광고 중 60%를 여성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로 채웠다. TV와 디지털을 합쳐서 바이든 캠프는 올가을에 총 2억8000만 달러, 트럼프 캠프는 2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양측의 광고 전략 또한 상당히 대조적이다. 바이든 캠프 측은 코로나19 부실 대처 등 트럼프 행정부의 실정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 측은 코로나19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최근 격화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를 ‘폭도’로 비판하며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 결집에 나섰다. 트럼프 재선 캠프는 최근 공개한 광고에서 시위 여파로 불타는 건물을 보여주며 ‘범죄자가 아닌 지역사회(Communities not criminals)’ ‘폭도가 아닌 직업(Jobs not mobs)’ 문구를 넣어 ‘법과 질서 수호자’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조종엽 jjj@donga.com·임보미 기자
#트럼프#바이든#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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