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숙현 동료들 “감독은 폭행, 주장은 폭언, 팀닥터는 성추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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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폭력]현역선수 2명 국회서 폭로 회견
“감독, 야구방망이 등 상습적 폭행… 손을 발로 차 손가락 부러지기도
주장, 고인을 정신병자라며 따돌려
팀닥터, 극단선택하게 만들겠다 해… 두 사람이 돈 상납 강요하기도”

“이런 불행 다시는 없어야” 지도자와 선배 선수의 폭언과 폭행 등의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 최숙현 선수의 인권 침해와 관련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 회의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최 선수의 동료 선수 녹취록을 공개하며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이런 불행 다시는 없어야” 지도자와 선배 선수의 폭언과 폭행 등의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 최숙현 선수의 인권 침해와 관련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 회의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최 선수의 동료 선수 녹취록을 공개하며 질의하고 있다. 뉴스1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의 ‘왕국’이었습니다.”

6일 오전 10시경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경주시청 소속이었던 철인3종 선수 2명은 회견 내내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달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선수(22)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이들은 “숙현 언니와 함께 일상적으로 가혹행위에 시달렸다”고 단호하게 증언하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들은 증언에 앞서 세상을 떠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부터 전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숙현 언니와 함께 용기를 내 고소하지 못했다”면서 “언니와 유가족에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삼켰다. 선수들은 “지금이라도 가해자들이 죄를 인정하고 처벌이 제대로 이뤄져 모든 운동선수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견과류 먹었다고 견과류 통으로 맞아”
선수들의 기자회견과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을 통해 전한 추가 피해 등을 종합하면 최 선수를 포함한 피해 선수들은 경북 경산에 있는 합숙소에서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이 ‘24시간 내내’ 가혹행위에 노출돼 있었다.

A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 옷걸이 봉 등을 이용해 상습적인 폭행이 이뤄졌다”고 했다. 진술에 따르면 해당 팀의 감독은 선수들을 엎드리게 한 뒤 옷걸이 봉으로 마구잡이로 때리다 봉이 휘어지자 야구방망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다시 때리기도 했다.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리거나 청소기를 집어던진 적도 있다. A 선수는 “감독이 훈련장에서 손을 발로 차 손가락이 부러진 선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술을 마시면 가혹행위는 더 심해졌다”고 한다. 합숙생활 도중 맹장수술을 받은 지 이틀도 되지 않은 선수에게 “(실밥을 풀지 않은 수술 자리에) 반창고 붙이고 수영하라”고 지시한 일도 있다고 주장했다. “견과류를 먹었다고 견과류 통으로 머리를 때리고, 복숭아를 먹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술자리에 불려가서 맞기도 했어요.”

선수들은 ‘팀 닥터’라 불린 운동처방사와 팀 주장인 선배도 가혹행위 가해자로 지목했다. 특히 이 고참 선수는 “숙현 언니를 포함해 모든 피해자들이 ‘처벌 1순위’로 여길 정도로 가장 괴롭혔다”고 했다. 특히 이 선수에게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최 선수의 경우 ‘정신병자’라 부르며 팀에서 ‘왕따(따돌림)’를 시키려 했고, “방에서 울고 있는 최 선수를 찾아가 ‘쇼하지 말라’며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고 전했다.

“팀 닥터는 숙현 언니가 심리 치료를 받는다는 소릴 듣고는 ‘극한으로 몰고 가 자살하게 만들겠다’는 얘기까지 했어요. 팀 닥터는 치료를 빙자해 가슴과 허벅지 등을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적도 있었어요.”(B 선수)

두 사람은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돈을 거둬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A 선수는 “국제대회 갈 때마다 80만∼100만 원 정도를 주장 명의의 통장에 입금했다”며 “2015년 뉴질랜드 전지훈련 때는 비행기 삯과 합숙비 명목으로 수백만 원을 거둬갔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돈을 내기 힘들다”고 하면, 두 사람은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애들까지 (훈련을) 못 하게 된다”며 상납을 강요했다고 한다.

○ “한 달에 10일 이상 폭행당해”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두 동료는 이런 폭행이 “한 달에 10일 이상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견디다 못해 올해 3월 최 선수가 피해 사실을 검찰에 고소할 때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폭력이 일상처럼 이어져 어떤 행위가 폭력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가 되면서, 가해자들로 인해 선수 생활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중도에 고소를 포기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3일 해당 사건에 광역수사대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대구지방검찰청 역시 6일 해당 사건에 총 14명 규모의 특별수사팀을 편성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의 전·현직 선수 명단을 경주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체육계 폭력#최숙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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