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무역 새판 짜겠다는 美 vs 다자협정 맏형 되겠다는 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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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TPP 탈퇴]美-中 패권경쟁속 무역질서 요동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해온 미국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한다며 자유무역의 리더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다. 반면 글로벌 교역 무대에서 후발 주자였던 중국이 미국의 역할을 떠맡겠다고 나섰다. 주요 2개국(G2)의 리더십 재편이 삐걱대며 부쩍 어려워진 교역시장에 ‘리더 없는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앞으로 각 나라와의 개별적인 무역 협정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상대국마다 경제 상황과 교역 내용이 서로 다른 만큼 일대일 ‘맞춤형 무역 협정’ 체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TPP 등 다자협상에서는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탓에 미국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기 어려웠다는 반성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양자 무역협정에 대한 강한 전투의지를 내비쳤다. 백악관은 20일 공개한 ‘6대 국정과제’에서 “미국과 맺고 있는 무역 협정을 위반하거나 우리 노동자에게 해를 가하는 국가들은 철저히 단속(crack down)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crack down’은 미국에서 경찰이나 연방수사국(FBI)이 마약 밀매, 성매매 등 범죄 현장을 단속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그만큼 고강도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틈을 타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세계 자유무역 경제 패권을 꿰차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TPP 탈퇴를 발표한 23일 장쥔(張軍) 외교부 국제경제사 사장(국제경제국장)이 ‘중국이 세계 경제 질서의 리더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은 미리 계획된 고도의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RCEP 협상에 속도를 내겠다”는 기존 발언에 비해 수위가 상당히 높아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외교부가 이런 문제에 조심스러워했기에 장 사장의 발언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리더십을 잘 발휘하면 RCEP는 TPP보다 경제적 효과가 훨씬 높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TPP는 교역 규모가 큰 중국을 끌어들이지 못해 핵심이 빠진 협상이란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이 세계 무역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 패권을 쥔 리더가 되려면 다자협상 참여국들이 경제적 효과를 누리도록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지만 중국은 자국 중심적인 무역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 박사는 “중국은 아직 기술력이 부족해 자국 제품이 선진국에 밀릴 것을 우려한다. 막상 협상에 들어가면 시장을 잘 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CEP에 참여한 일본 인도도 중국에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지역무역협정팀장은 “일본이나 인도는 국제사회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에 RCEP가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과의 통상전쟁 때문에 당분간 RCEP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리더 부재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성립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관세무역일반협정(GATT·1994년 세계무역기구(WTO)로 전환)이라는 양대 기둥을 바탕으로 70년 넘게 이어진 글로벌 경제 질서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워싱턴=이승헌·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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