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과 내일/이승헌]尹, 1주일 뒤 한미정상회담부터 올인하라취임사로 미루어볼 때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선 6·1지방선거, 검수완박, 내각 인선 파행 등을 주로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들은 윤 대통령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다음 주 토요일 열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윤 대통령에겐 발등의 불이다. 통상 한국 대통령은 취임 후 한미동맹 차원에서 외교 행사 중 한미정상회담을 가장 먼저 해왔지만 이번 회담은 취임 직후 열린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취임 후 54일 만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51일 만에 미국 정상과 만났다. 이것도 빠른 편이었으니 이번 한미정상회담 시기를 놓고 준비가 충분하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은 별다른 외교 경험이 없다. 그만큼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그에게 기회인 동시에 리스크적인 요소가 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이번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의 글로벌 데뷔 무대다. 바이든이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잠시 갖는 상견례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한미동맹 특성상 복도에서 잠시 만나는 ‘풀 어사이드 미팅’도 사실상의 회담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난해부터 워싱턴에선 미중 반도체 전쟁, 공급망 이슈,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등을 놓고 새 정부의 스탠스를 주시해왔다. 윤 대통령이 회담에서 내놓을 한마디 한마디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분석팀에 보내질 것이다. 윤 대통령이 북핵 정책이나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 등을 놓고 한미 관계가 삐걱거린 것을 바로잡겠다면 워싱턴의 관심이 집중된 이번 회담만 한 기회도 없다. 둘째, 윤석열이라는 정치인 개인이 동맹국 정상에게 드러나는 자리다.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이 실무적인 준비는 하겠지만 외교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정상 간의 케미스트리가 의외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허물없이 주변 사람들과 호형호제하는 윤 대통령과 농담 좋아하고 사교적인 바이든 간에 통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윤석열만의 메시지가 어떻게 발신될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에선 MB의 첫 한미정상회담을 자주 거론한다. 2008년 4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첫 회담에 선물로 전통 공예품을 들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MB는 부시 부부가 아꼈던 반려견을 위한 선물을 전용기에 실어갔다. 그게 계기가 됐는지 부시와 MB는 퇴임 후에도 종종 만났다. 정상외교에 걸맞은 긴장감 있는 애티튜드도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종종 했던 ‘쩍벌’이나 취임식장에서도 보여줬던 다소 헐렁한 넥타이 매듭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말들이 외교가에선 적지 않다. 셋째, 대통령 집무실과 연회 공간이 바뀐 후 갖는 첫 번째 정상회담이다. 백악관이 해외 순방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로지스틱스(logistics)’, 즉 세부적인 일정 계획이다. 미국도 그동안 청와대를 기반으로 방한 일정을 짜온 만큼 처음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자칫 의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도 그렇지만 백악관은 해외 순방 중 경호상 티끌만 한 리스크나 오류가 발생해도 종종 계획 자체를 틀어버린다.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은 정부의 외교 역량과 대통령의 개인기가 더해져 새 집권세력의 실력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이벤트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 관문을 어떻게 넘을지 국내외 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2022-05-13 03:00 
尹의 40일, 점차 드리우는 0選의 그림자[오늘과 내일/이승헌]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전까지 ‘선출직 0선’이라는 사실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음과 양이 모두 있다. 우선 플러스 요인. 여의도에 빚진 게 없기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정치를, 더 정확히는 과감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주변의 우려에도 경선 과정에서 김종인과 결별하고 막판에 안철수와 별다른 협상도 없이 전격적인 단일화를 이뤄낸 게 그러하다. 하지만 당선 이후 40여 일 동안 용산 집무실 이전 결정과 인선 논란을 보면서 이제는 0선의 그림자도 드리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기존 정치적 문법과 무관하게 당선되어서인지 여의도가 관행적으로 중시해 온 안배, 고려, 여론 살피기 등을 그다지 감안하지 않는다. 그 대신 효율, 빠르고 가시적인 성과, 자신과의 호흡이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했다. “국정운영이라는 게 대단한 뭐가 있다기보다는 상식을 갖고 전문가, 관료 중 능력 있고 검증된 사람을 잘 뽑아 쓰면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원론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최근 인선 등을 보면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물론 효율이나 성과는 중요하다. 공정, 상식 못지않게 문재인 정부에서 간과된 가치들이다. 문제는 여기에 집중하려다 보니 기존의 정치 문법에서도 물려받아야 할 것들이 동시에 휩쓸려 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중 핵심은 최고 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정치인지 감수성이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정치 초짜라는 사실을 드러내왔다. 오히려 자신의 브랜드로 삼았다. “내가 정치언어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바꿔 말하면 기존 정치적 화법, 상황 인식을 몰라도 첫 번째 선출직 도전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자기 스타일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당선인이 간과하고 있는 정치인지 감수성의 요체는 뭘까. 내가 사실이라 믿는 것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필자는 본다. 윤 당선인이 능력을 보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생각하더라도, 사람들은 적폐청산 수사를 위해 최측근 인사를 발탁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선인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범법 사실 이전에 새 정부 조각에서 조국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긴다. 이런 괴리가 길어지면 민심과 역주행하게 되고, 사람들은 당선인이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국정은 기업도 검찰도 법정도 아니다. 효율, 성과, 법리적 팩트만으로는 온전히 꾸려가기 어렵다. 정치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고차 방정식이다. 수십 년간 쌓인 정치 혐오가 0선의 윤 당선인을 불러냈으나, 그에게 여전히 고도의 정치력을 요구하는 게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윤 당선인이 기자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고 거의 혼밥을 하지 않을 정도로 소통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만남 자체가 목적이거나 보여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나고 밥 먹는다고 통치를 위한 정치인지 감수성이 저절로 키워지는 건 아니다. 당선인이 세상과의 진짜 소통을 통해 0선의 그림자를 서서히 거둬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2022-04-20 03:00 
바이든 낙관론, 아직은 성급하다[오늘과 내일/이승헌]“정말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길까?” 미국 대선이 7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요즘 외교가는 물론이고 여의도 정치권에서도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4년이 워낙 시끄럽다 보니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를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 은근히 녹아 있다. 실제로 바이든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민주당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4년 전 학습효과를 거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는, 더 정확히는 이겨야 한다는 미국 진보 성향의 주류 언론을 믿다가 정반대의 결과를 받아봤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정확한 판세는 어떤 것일까. 미국 정치를 오래 관찰한 전문가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민심의 이면을 살펴볼 것을 권한다. 각종 조사에서 바이든이 오차범위 안팎에서 트럼프를 앞서는 것으로 나오지만, 반(反)트럼프 성향이 강한 미 기성 언론이 잘 전하지 않는 대목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 필자가 최근 조사를 분석해본 결과 ‘바이든 낙관론’은 아직 성급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유고브에 의뢰해 16일부터 18일까지 미국 성인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3.4%포인트)를 보면 ‘지금 대선이 치러지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50%, 트럼프 40%였다. 10%포인트 차이. 그런데 질문을 ‘누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느냐’로 바꾸면 바이든 39%, 트럼프 40%로 오차범위 내지만 결론이 뒤집힌다. 지지율과 당선 가능성에 대한 여론이 다른 것이다. 당선 가능성에 대한 여론을 더 구체적으로 보면 바이든 캠프가 식은땀을 흘릴 만하다. 남성 응답자는 45%가 트럼프를, 37%가 바이든을 택했다.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여성층에서도 트럼프가 36%, 바이든은 41%였다. 미국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의 최대 관건 중 하나로 적극 지지층들의 투표 참여를 꼽는 데 큰 이견은 없다. 코로나19 사태 한복판에서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투표장에 나오느냐는 것. 이와 관련해 최근 선거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특정 후보에 대한 열정 지수(enthusiasm score)’라는 독특한 지표를 볼 필요가 있다. 미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12일부터 15일까지 미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표본오차 ±3.5%포인트)의 지지율 추이는 바이든 54%, 트럼프 44%로 여타 조사와 비슷하다. 하지만 ‘열정 지수’를 놓고서는 두 후보의 희비가 엇갈린다. 바이든 지지자 중 ‘바이든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절반이 안 되는 48%가 ‘매우 열정적’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지지자는 65%가 ‘트럼프를 매우 열정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최근 미 대선 투표율이 하락세인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의 결집력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미 대선 투표율은 2016년에 56.9%로 2008년(62.2%), 2012년(58.6%)에 이어 계속 하향 추세. 바이든이 당선되려면 흑인, 히스패닉들이 투표장에 나와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방역 능력이 취약한 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참여할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흔히 주고받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이 이번만큼 유효한 선거도 없을 것이다. 우리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계도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는 전략적 마인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2020-08-25 03:00 
현실화되는 ‘K5’, 이게 과연 정상인가[오늘과 내일/이승헌]이 정도면 무풍지대라 할 만하다. 부동산 정책 후폭풍으로 청와대 수석들에 이어 일부 부처 장관들의 인사설이 나돌고 있지만 몇몇 장관은 굳건하다. 이 중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거의 요지부동이다. 후임 하마평조차 들리지 않는다. 같은 외교안보 라인인 통일부 장관은 이미 이인영 의원으로 바뀌었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후임이 검증에서 날아갔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러다 박근혜 정부의 ‘오병세’(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년 가까이 재직했다는 의미)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선 ‘K5’(강 장관이 5년 채운다는 의미)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말이 외교가에서 파다하다. ‘5년 강경화’라는 뜻에서 5G라는 표현도 나돈다. 강 장관이 2017년 6월부터 3년 2개월째 장악하고 있는 외교부는 어느덧 ‘강경화의 외교부’로 바뀌고 있다. 강 장관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 외교부 주요 보직을 맡았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외교부 장관이 오래 버텨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국무장관은 대개 대통령과 4년 임기를 함께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8년 렉스 틸러슨을 1년 만에 바꿨지만 후임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년 4개월째 현직에 있다. 임기 초만 해도 “얼마나 버틸까”란 말을 들었던 강 장관이 어떻게 K5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일까. 일각에선 강 장관의 국제적 감각을 평가한다. 한 여권 핵심 인사의 전언. “국제무대에 가보면 다들 먼 산 보고 있는데, 강 장관은 물 만난 고기처럼 세련되게 대통령을 보좌한다. 외국 공기가 더 편한 것 같다.” 또 다른 여권 핵심 관계자는 “폼페이오랑 통역 없이 영어로 말하는 걸 들어본 사람이라면 강경화 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게 K5라는 표현이 나오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교부 장관으로서 그 무게에 맞는 역할이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없는 상황이 장기화돼 이젠 다들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요구 수준에 맞게 일하는 정치적 무색무취함이 역설적으로 강 장관의 롱런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구상의 핵심인 북핵 이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가정보원이 주도해 왔다. 외교부, 통일부는 지원 부서에 가까웠다. 미사일 지침 개정,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이슈도 안보실이 주도했다. 한일 강제징용 이슈는 이낙연 의원이 총리 시절 동분서주했고, 막판에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까지 나섰다. 다 외교부 몫인 일들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외교부가 지금처럼 일하다가는 큰코다치는 환경이 다가온다.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북-미 관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같은 동맹 이슈를 진짜 마음대로 하려고 할지 모른다. 조 바이든이 당선되면 4년 만에 ‘국무부의 시대’가 부활할 것이라고들 한다. 트럼프가 일부 백악관 참모와 주물러 온 외교 이슈를 전문가 집단인 국무부가 다시 가져가 지난 4년을 재평가하게 될 텐데 그 상대는 외교부다. 여기에 강제징용 이슈는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자산압류명령에 즉시 항고 의사를 밝히면서 다시 한일 양국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는 삐끗하면 미중 양국을 한꺼번에 건드릴 수 있는 사안이다. 환경이 이런데도 강 장관의 외교부는 별 변화가 없고 K5라는 말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건 정상이 아닌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2020-08-1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