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尹정부, 글로벌 한미동맹 의지 커… 中눈치보는 외교 성공 못해”《한미 정상회담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순방에 대한 불만으로 북한은 장단거리 탄도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 중-러 전투기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침범하며 반발했다.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은 25일 바이든 대통령 순방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안보 환경을 분석하는 좌담회를 가졌다.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좌담에는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주미대사), 박철희 서울대 교수(국제학연구소 소장),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진행은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맡았다.》○ 도발하는 북한, 원칙적 대응이 답 ―윤석열 정부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로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핵과 미사일 무력을 강화하는 북한에는 핵을 포함한 공동 대응을 발표했다. 북한과 중-러는 예상한 것처럼 즉각 불만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안: 태영호 의원 얘기를 들어 보면 1990년대 남북 대화가 활성화됐을 때 북한 외교부 내에서는 냉전이 끝났으니 살길은 남북 간 관계 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1993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모두 중단했다. 그 후 북한은 제네바 회담, 6자 회담 등 무슨 회담을 하든 뒤에서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했다. 박: 북한과 중-러의 도발은 한미일 협력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질서가 강화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형세는 힘을 사용해 국제 질서를 변경하려는 세력과 룰과 가치에 기반해 국제 질서를 지키는 세력의 상호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후자를 선택했음을 대외적으로 밝혔다. 우: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에 어떤 반응을 했다고 우리의 원칙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북한을 끌어내기 위해 원하는 것을 줘야 된다고 정책이 바뀌면 처음 이루려고 했던 장기적인 목표를 이룰 수가 없다. ○ ‘글로벌 동맹’, 위상 높아져 외연 확장 당연 ―윤석열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의 핵심 키워드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선언했다. 박: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에는 4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뒤틀리고 약화됐던 동맹의 정상화다. 두 번째는 동맹 강화다. 가시적인 조치로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연합훈련 재개, 전략자산 필요 시 적시 전개 등이 제시됐다. 세 번째는 동맹 확대, 즉 군사 안보뿐 아니고 경제 안보, 기술 안보 등으로의 외연 확장이다. 마지막은 동맹의 심화다. 아태 지역이나 글로벌 문제도 미국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글로벌’이 새로운 것이고 중요하다. 한미 동맹의 역할이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면 부담을 키워 동맹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국력이 커질수록 동맹의 외연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 우: ‘포괄적 전략동맹’은 2009년 이명박-오바마 대통령 때 처음 나왔지만 이번에 주목받는 것은 양국 정상 모두 실행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동맹을 한반도 내 역할로 국한시켜 한국의 위치를 과소평가했다. 안: 호주 수도 캔버라의 전쟁박물관 입구에는 ‘평화를 희망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구절이 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있는 호주는 안보 위협을 직접 당하지 않으면서도 1, 2차 세계대전, 이라크전쟁에 참여해 책임을 다했다.○ 한미 ‘행동하는 동맹’이 동맹의 정상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북 위협 대응 확장억제에 ‘핵’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갔다. 우: ‘핵 능력과 재래식 능력을 포함한 모든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서’라는 표현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번에 주목할 만한 것은 전략자산을 적시에 전개해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양국 정상이 의견 일치를 봤다는 것이다. 전략자산이 매번 한국에 오지 않아도 북한에 전달하는 메시지의 강도가 상당하다. 안: 지난 5년간은 사실 정상적인 동맹이 아니었다. 문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대선 때 트럼프의 말을 듣고 대통령이 되면 동맹국들이 어려움에 처하겠구나 생각했는데 현실이 됐다. 핵 확장 억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신뢰다. 정상 간이나 워킹 레벨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양국 국민 간 신뢰도 중요하고 확장억제의 가장 큰 담보가 된다. ―김성한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행동하는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연합방위 약속과 실행 의지를 보여주지만 북한의 반발도 커지지 않겠나. 우: 북한은 작년 1월 당 대회 때 국방력 강화를 김정은이 언급한 뒤 줄곧 미사일을 발사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에도 미사일을 연이어 쐈다. 새 정부의 어떤 원칙적인 대북 정책에 자극을 받아서 북한이 도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박: 북한의 전략이 한국 정부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으면 오히려 좋겠다. 북한은 일관되게 핵무장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안: ‘행동하는 한미 동맹’이라고 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은 행동을 안 했다. 작년 5월 한미 공동성명을 보고 문재인 정부가 이런 합의를 할 수 있나 깜짝 놀랐는데 문제는 후속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尹-바이든, 변화된 北에 현실적 대응―바이든은 김정은이 진정성 있게 나오면 만나겠다고 했다. 바이든의 대북한 태도 등을 두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닮았다고 했다. 우: 바이든의 대북 정책을 ‘전략적 인내’라고 부르는 의도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미가 뭔가를 제공해야 북한이 반응을 할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바이든의 접근을 전략적 인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만 볼 것은 아니다. 2016년 이후 대북 제재가 촘촘해져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되고 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전략적 인내’는 사실은 ‘비전략적인 무시’라는 의미였다. 윤 대통령은 대화에 대한 기본 입장은 바뀌지 않지만 정상회담을 (비핵화 해결의) 입구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의지와 구체적인 행동 없이 말만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 ‘지속 불가능’ ―한국은 안보는 쿼드(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 4개국 협의체), 경제는 IPEF라는 두 날개의 대중 포위 견제전선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중국에서는 ‘미국의 앞잡이가 되지 말라’ ‘중국 배제는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안: 중국의 반발 때문에 IPEF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이 미중 관계에서 지난 5년간 전략적 모호성을 취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미국이 한국에 배신감을 얘기한다. 트럼프 시절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태 차관보는 “미중 사이의 선택이라면 한국은 이미 1970년대에 했다”고 했다. 미 의원들 중에는 저울질하는 한국을 보고 이러려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냐고 한다. 중국도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을 약한 고리로 여긴다. 조금 건드리면 한미 관계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준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맹삼호(一盟三好)라고 했다. 한국에 하나(미국)의 동맹과 주변의 3개 우호 국가(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훈수를 해서는 안 된다. 박: 윤 대통령의 외교 안보 캐치프레이즈가 ‘튼튼한 안보, 당당한 외교’다. 중국의 강압에 굴복하는 외교는 성공할 수 없다. 국내에서 ‘중국이나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것이다’ 하고 미리 조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본말로 ‘손타쿠(忖度)’라고 한다. 국익에 맞고 주권적인 판단이라면 상대방이 안 받더라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 정부의 IPEF 가입 결정은 우리 이익에 맞느냐가 일차적으로 중요하지 중국을 고려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문재인 정부 때는 부차적인 요소를 먼저 고려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의사 결정이 있었다. 박: 우리가 ‘룰 테이커’가 될 거냐 ‘룰 메이커’가 될 거냐의 문제다. 시작 단계에 한국을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역량과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역할을 하라고 문을 열어줬는데 옆 나라가 겁나서 못 들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대만해협 안정, 원칙적인 입장일 뿐―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동 성명에서 대만을 언급하면서 ‘아태 지역 안보 핵심’이라고 했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등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 공동성명 어디에도 중국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대만해협의 안정’이란 표현은 작년 4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했던 미국의 한 싱크탱크 연설에 거의 똑같은 문장이 있다. 지역 내 인권 문제나 대만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이다. 그런 표현을 정상회담 선언문에 못 담을 이유가 없다. 박: 나는 거꾸로 중국에 묻고 싶다. 그럼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냐. 우리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대만을 한국이 군사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도 아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는 한국에 중요한 항로다. 원유의 90%가 여기로 오고 수출의 30∼40%가 지나간다. ―바이든은 일본에서 “대만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군사 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안: 바이든의 말실수를 ‘개프(gaffe)’라고 하는데 이번 말실수는 가장 논리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국방부는 (하나의 중국)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해명했다. 미국 언론은 바이든과 국방부가 각각 배드 캅(나쁜 경찰), 굿 캅(좋은 경찰) 역할을 분담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를 오래 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말실수를 가장해 내심을 던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한국 대미 수출은 6위, 투자는 13위―바이든 순방을 즈음해 현대자동차와 삼성이 미국에 거액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안보를 제공하고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것인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이 선물을 챙겨 간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우: 기업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니까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라고 부각됐지만 사실 미국과의 교역 규모에 비해 투자는 크지 않다. 미국에 대한 투자국 중 한국은 일본 유럽 등에 이어 13위다. 박: 글로벌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서 미국이 효용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강조되는 경제안보와도 관련이 있다. 한국 기업 투자는 상당 부분 첨단 기술 분야로 미국에서는 보안이 유지되고 현지 연구개발과 시너지가 높은 반면 중국에 가면 첨단 기술을 뺏기거나, 기술이 유출되거나 따라잡힐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 더 미룰 수 없는 과제”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공통적으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이 포함됐다. 박: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같이 미국에 정책협의단으로 갔을 때 주요 정책 결정자들은 줄곧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위협, 중국의 공세적인 외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등 불안한 상황에서 가치를 같이하는 한미일이 한편에 서서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국가들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의 안보에 제일 도움이 되는 게 한미일 협력이다. 북한이 오판해서 유사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미일이 협력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안보를 지킬 수가 없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것을 중국은 ‘아시아판 나토’라고 비판한다. 박: 중국은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 것은 가만히 두고 한국이 방어 기제를 강화하는 것에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한일 관계 개선의 장애 요인으로 일본의 우경화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오래 봐왔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번에 가서 만났을 때 “한일 관계 개선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과제”라고 했다. 일본 내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 미룰 과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정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정리=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2022-05-28 03:00 
“北 정권교체기 ‘레드 라인’ 도발…‘힘 통한 평화’ 시험대에”북한이 올해 9차례 미사일 발사에 이어 16일에도 평양 순안공항 인근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았으나 발사 직후 폭발했다. 2월 27일과 3월 2일 발사실험은 ICBM 성능 실험이라고 한미 당국이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일인 5월 10일을 전후해 7차 핵실험도 감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은 15일 정권 교체기를 맞아 긴박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에는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이 참석했다. 진행은 구자룡 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맡았다. 북 ICBM, 핵 보유국 향한 대미 협상용 북한은 과거에도 남한의 정권 교체기에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이번 ICBM 성능 시험 발사 등도 대선 일정에 맞춘 것인가. 윤: 화성 17호는 세계 최대 크기로 ‘괴물 ICBM’으로 불린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것이자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거의 완성 단계에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남한 국민을 겨냥한 완전히 새로운 신형의 전술 핵무기가 거의 완성됐다는 것이 우려할 점이다. 북한이 역대 최대 크기의 ICBM 발사 실험을 하는 것은 명실공히 핵보유국이 되는 꿈을 이루려는 마지막 단계다. 북한은 핵을 보유한 후에도 제재를 받지 않는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되고 싶어 한다. 북한은 미국과 담판을 통해서 대남 전술핵 무기는 묵인해 달라고 협상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을 괴롭히는 ICBM은 발사를 유예하고 핵이나 ICBM을 제3국에 넘기지는 않겠다고 할 것이다. 미국과의 이런 협상을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보통 군사력 증강이라는 군사 기술적인 수요, 국내 정치적인 필요성, 그리고 대외 협상용 등의 목적이 있다. 이번 성능시험 발사는 군사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유용하고 지난해 8차 당대회 때 김정은이 얘기했던 ‘전략 국가를 위한 자력 증강’을 착실하게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과의 단기적 협상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시위라기보다 장기적으로 미중 경쟁 시대에 핵 국가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시간표는 15년 이상으로 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불법 행동을 해도 중국이 감싸는 걸 보고 북한은 ‘내가 망하려고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신: 북한의 행보는 지난해 8차 당대회 때 김정은이 결정한 바를 이행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력갱생하고 군사안보적으로 핵능력을 강화하면서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별다른 변수가 아니었다고 본다. 북한은 한국이 아닌 미국을 맞상대하겠다는 생각이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는 것은 자신들의 핵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치를 밟아가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대선을 맞은 한국 국내 정치를 고려했다면 베이징(北京) 올림픽에서 한국 정부 고위층과 만나 화해 제스처를 보였을 수도 있는데 그런 옵션을 걷어찼다. 북한은 미중 전략 경쟁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제재가 나올 수 없다는 확신이 있어 핵능력 극대화를 별다른 부담없이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北 핵과 미사일, 南 정권 교체보다 자체 일정 따라북한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시간표나 장기적 목표에 따라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와 관계없이 ICBM 발사나 핵실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인가. 윤: 문재인 정부 초기 6차 핵실험과 화성 15형 ICBM 시험 발사를 했다. 그 후 한반도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30~40차례 실험 발사하고 실전에 배치했다. 북한이 대선 혹은 정권 교체기라고 해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아니고 무슨 협상용도 아니다. 1차 핵실험은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정부 때 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참수리호가 격침당하고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북한은 군사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보 정부면 도발을 안 하고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화가 나서 도발을 하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 이번 대선에서 진보 후보가 이겼어도 대남 무시 전략으로 갔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이후 문재인 정부가 엄청 군비를 증강한 것을 보았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도 이중 기준을 내세우고 미국의 앞잡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진보 정부였어도 미사일 시험 발사 스케줄을 조정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고 본다. 7차 핵실험, 전술핵 개발용 가능성북한 영변 강선 평산 등에서 핵실험 재개 징후가 발견됐다. 폭파쇼를 벌였던 풍계리 핵실험장의 3, 4번 갱도는 조금만 수리라면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5월 10일 윤 당선인 대통령 취임 전후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위협, 선전 효과는 크겠지만 기술적인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핵개발에 필요한 실험은 이미 다 했다는 생각이다. 이제 핵무기를 실어 나를 미사일이 중요하다.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ICBM은 억지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다만 북한은 2차 핵공격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지 않다. 북한이 선제 타격을 받아도 2차 핵공격 능력을 가질 때까지는 실험을 계속할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이 2차 핵공격 능력을 가지면 미국도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은 사라진다.신: 북한이 남북 관계 차원에서 도발을 해온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서 일관되게 핵개발을 했고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되는 때 역량 테스트를 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2006년과 2009년 그리고 2013년, 그리고 2016년 등으로 근 3년 주기설이 적용됐다. 2016년과 2017년 실험 횟수가 늘어난 것은 핵개발의 완성 단계로 최종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핵실험은 6차례면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파키스탄도 6차례 실험에 그쳤다.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전술핵 시험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지난 2년 동안 북한이 개발한 중단거리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전술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북한은 원자탄과 수소탄의 위력을 어느 정도 확보해 더 이상의 성능 테스트가 필요 없다. 이제 소형 전술핵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지 검증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尹 시험대에 설 ‘힘을 통한 평화’ 윤석열 당선인은 ‘힘을 통한 평화’을 강조했다. 다음달에는 실병력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권 교체기의 북한 리스크가 차기 정부 초기의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신: 한반도 4월 위기설이 상당히 가시화되고 있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규모를 늘렸든 줄였든 시작되는데 북한으로서는 도발 명분이 된다.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 110년이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도발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도발이 윤 당선인 취임 이후에도 이어지면 새 정부의 안보 역량을 테스트 받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신속한 한미 공조, 북한 도발을 억제하도록 중국을 견인할 수 있는 지 등이 역량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윤: 남북협력을 중시하는 지난 30년의 포용정책의 적실성에 대해 철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관성적으로 무조건 포용한다고 했지만 북한과 남북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남북협력을 위한 정상회담을 하다 한반도를 겨냥한 북한의 핵무장은 현실이 됐다. 개성공단 금강산이 무슨 변화를 가져왔나. 개혁도 개방도 없었다. 탈냉전 시대에 체제우위 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 포용정책이었다면 지금은 신냉전 시대다. 남북한 군사력 균형이 무너졌다. 재래식 군비는 북한 핵 앞에서 효용이 없다. 과거에는 주변국 북방 외교를 통해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겠다는 북방 외교의 꿈이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변화는커녕 뒷배를 봐주는 상황이 됐다. 문: 윤 당선인은 선제 타격 등 대북 강경 자세를 보였다. 선거 때와 달리 윤 당선인이 직접 정부를 운영하면서 조금 조정될 수 있나. 신: 윤 당선인의 대북 공약이나 자세를 강경이나 강공이라고 보는 것을 맞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유화정책과 대비해 윤 당선인의 말을 강경하다고 잘못된 프레임이 씌여지고 있다. 대화의 문을 열어두되 북한이 도발하면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국가 외교안보 정책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전: 대북 군사력 강화를 통한 억지와 경제제재를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은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제재를 약화시키면서 협상을 하려고 하거나 군사훈련을 하지 않아 억지력을 약화하면서 협상을 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억지와 제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대북 관여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윤 당선인의 대북 정책에서 ‘대화가 열려 있다’고 되어 있는데 문재인 정부보다 더 효과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말 ‘핵을 버릴까’(가능성은 낮지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대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韓 쿼드 가입 = 대중 적대’ 잘못 윤 당선인의 한미 관계는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이 키워드다.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미국의 MD체제 가입 등 한미 관계에서 문재인 정부와는 달라질 부분들이 많다. 윤: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나온 것으로 그것을 현실화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쿼드는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지지를 표명했다. 쿼드가 대중 군사동맹으로 비쳐지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 같이 중국이 주도하는 것은 다 가입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것에 가입하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된다. 문: 한국이 미국의 MD 체재에 가입하려는 액션이 나오면 사드 이상으로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윤: 지금 북한의 전술 핵무기를 실은 미사일 수백 발이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다 겨냥하고 있는데 우리는 방어망이 거의 없다. 미국의 MD 체제에 들어가면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고 동북아의 군비 경쟁을 일으킨다고 김대중 정부 이래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하겠다지만 우리가 가진 역량으로는 탄도미사일은 요격도 못한다. 미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가 없는 실정을 알아야 한다. 전: 한미간 ‘포괄적 전략 동맹’과 한중간 ‘상호 존중’은 잘 선택한 말이다. ‘포괄적 전략동맹’은 좋은데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문제다. 우리의 대미 전략과 대중 전략 얘기를 하는데 그거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미중 관계 전략이다. 미중 관계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큰 원칙을 세울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하위의 한미 및 한중 전략의 그림이 나온다. 포괄적 동맹은 이슈의 포괄일 수도 있고 지리적 범위의 포괄일 수도 있다. 그걸 이제 결정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가치동맹 얘기까지 했다. 다만 지금은 가치동맹은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미국의 가치에 무조건 동조하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 대한 미국의 기대 수준이 굉장히 높아 무조건 맞춰줄 수도 없다. ‘상호 존중’ 한중 관계, 공중증은 벗어나야윤 당선인의 대중 관계 키워드는 ‘상호 존중’이다. 다만 3불(不)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 등 친중 저자세 외교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신: 사드도 그렇고 과연 어떤게 한중 관계의 올바른 방향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원하는 걸 우리가 다 수용하면서 어떻게든 중국으로부터 피해 받지 않는 것이 올바른가. 그보다는 중국이 우리에게 요구를 해도 전략적 이익을 보존하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과 맞서거나 입장을 조화롭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3불이 정책이 아닌 입장 표명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나왔다. 우리 스스로 잘못된 방향의 한중 관계를 만들어 갔다. 전: 사드와 MD는 미국 편들기나 대중 견제라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미중 관계 상위의 문제가 해결되면 이것은 굉장히 기능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북 군사 체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중국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윤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또 미중 관계 속에서 헤매고 미국은 한국을 의심하고 중국은 한국을 약자로 보고 보복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윤: 문 정부는 3불 약속은 합의도 약속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입장 표명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가 마치 큰일 나는 것처럼 하는 것도 이상하다. 근본적인 건데 국익이 과연 뭐냐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보면 지정학적 리스크는 숙명이다. 우리 주변 세 나라는 전부 다 우리를 침략하거나 지배하거나 했던 경험들이 있다. 최근 100여 년 사이 세 나라로 인해서 세 번의 전쟁이 일어났다. 청일 전쟁 러일 전쟁 그 다음 한국전쟁이다. 신흥 강국이 등장할 때 전쟁이 발생했다. 중국이 신흥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동북아에서 다시 ‘권력 정치’(파워 폴리틱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지역에 안정적 균형이 있는 게 제일 좋다. 70년 전 미국이 만들어 놓은 균형을 어떻게 유지시키느냐가 우리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나 호주도 한국만큼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왜 쿼드에 가입하나. 우리가 너무 공증증(恐中症)이 있는 게 아닌지 봐야 한다. 전: 중국은 한국이 쿼드에 들어가면 반중이라고 규정해버린다. 그런 말에 얽히면 우리의 정책 레버리지가 너무 약화된다. 우리가 쿼드를 어떻게 보는지 시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는 최근 유엔 총회 결의에서 인도가 기권하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도는 쿼드 참가 국가지만 이해에 따라 (중국과도 같은 입장을 취하며) 러시아편을 들었다. 쿼드가 사실 굉장히 결속력이 약하고 안보적인 측면은 특히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 윤 당선인의 경우 쿼드는 기능별 협력을 먼저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국가 이익과 한미 동맹을 고려하면서 정책을 선택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은 현실에 맞지 않는 외교다. ‘미국 or 중국’이 아닌 ‘미국 and 중국’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 모멘텀 살려야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가역적 합의’까지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들어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 됐다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에서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일본의 사도 광산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 걸림돌도 없지 않다. 윤 : 한일 간에 관계 개선을 위한 모멘텀은 생긴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상황을 워낙 어렵게 만들어 놔 복원이 쉽지 많은 않다. 한일 관계를 지난 5년간 거의 방치했다. 국가간 합의를 형해화시킨 뒤 뒤에 가서 유효하다고 얘기했다. 신: 문재인 정부 때 나온 투 트랙 기조는 이어가는 것이 좋다. 투 트랙이라는 게 결국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로 풀고 미래지향적 협력을 하겠다는 것인데 작동이 안됐다. 전: 문재인 정부 초기 북핵과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약간 일본 패싱이 있었다. 북한의 미래나 한반도를 다룰 때 한일 관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는 후보들이 ‘일본 때리기(재팬 배싱)’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다.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한일 관계도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 관계가 좋아지면 한일 관계가 좋아지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 리스크 일깨우는 우크라의 숙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의 지정학적인 운명에 대한 분석이 많다. 한반도에도 시사점이 많다. 윤: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동병상린을 느낀다. 동아시아에도 강대국 정치 시대가 다시 도래한 느낌이다. 투기디데스가 말한 ‘강대국은 원하는 걸 하고 약소국은 인내해야 된다’라는 명제가 생각난다.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국가가 됐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서 어느 때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전 : 우크라이나 침공은 근대국가 체제의 근간인 기본적인 주권 존중이라는 원칙을 해치는 국제법 위반 행위다.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미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로 삼지만 그렇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탈냉전 이후 30년간 유럽의 안보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이 없었던 결과 중 하나가 이번 침공으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 유럽에서 러시아와 동부 유럽을 아우르는 안보 질서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제국주의와 팽창주의를 키워드로 한 푸틴니즘이 들어설 여지를 주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어떻게 참여시켜서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구축할지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의 동아시아는 유럽의 1990년대 중반 정도에 해당되는 시기인 것 같다. 지금 아시아에서 미중 간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느냐가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 신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가 정책의 목적으로 전쟁을 불법화한 유엔 헌장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고 체결된 부전조약(겔로그 브리앙 조약)으로 전쟁을 불법화하는 시도가 나타났고 유엔 헌장에서 전쟁을 금지했다. 자위권만 합법적인 수단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北 핵 미사일만 강화시킨 ‘대북 유화 정책 5년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으려고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5년 대북 유화 정책은 제자리 걸음, 아니면 헛발질을 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윤 : 21세기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진행되는데 1980년대 사고를 가지고 남북 관계를 다뤘다. 남북관계만 좋아지면 모든 게 잘 풀린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북한의 의도부터 잘못 파악해서 북한의 핵무장은 기정사실화되고 최신형 전술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을 마주하게 됐다. 전 : 문재인 정부는 대북 관여를 강조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보수 정부가 좌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한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워한다.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 정책만 아니면 된다’는 접근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핵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하되 북한이 얘기하는 체제불안 해소 그리고 김정은 개인 안전 확보 등도 무시하면 안된다. 신 : 문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폈지만 국방비는 크게 늘렸다. 이는 북한 문제에 유화적으로 임한 데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대북 유화 정책을 펴면서도 국방은 튼튼히 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신 :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는 잘못된 가정과 잘못된 접근이 있었다. 잘못된 가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선의를 먼저 보여주면 북한도 선의로 응할 것이라는 것. 두 번째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가정이다. 가정이 틀려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진전도 비핵화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북 미사일에 무감각해진 현실 안타까워” 북한의 ICBM 발사 실험과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뉴스가 이어지면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이 많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윤 : 북한의 ICBM보다 몇 달전까지 쐈던 이스칸데르나 극초음속 미사일이 남한에 대한 위협이 더 크다. 그런데도 UN에 어필도 하지 않았다. 북한 미사일 발사 상황을 너무 많이 경험해 북한이 도발을 해도 주가도 그때만 잠시 출렁이다가 원상태로 돌아간다. 실제 위협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옅어져서 안보 전문가로서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전 : 민주주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의사를 계속적이고 실체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5년간 중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늘고 김정은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바닥이었다. 일본과의 우호나 대미 안보동맹에 대한 바램이 늘어났다. 이런 부분이 정책에 반영되면 훨씬 더 두려움도 덜하고 신뢰가 갈 것 같다. 정치의 ‘책임성(accountability)’의 문제다. 정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정리=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2022-03-21 10:06 
北, 南정권교체기 ‘레드라인’ 도발… ‘힘 통한 평화’ 시험대에”《긴급 진단 북한이 5년 만에 끝내 다시 ‘레드라인’을 넘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 발사 시험에 이어 7차 핵실험 징후도 감지됐다.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은 정권 교체기 ‘한반도 안보 위기’ 긴급 진단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북한이 올해 9차례 미사일 발사에 이어 16일에도 평양 순안공항 인근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았으나 발사 직후 폭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일인 5월 10일을 전후해 7차 핵실험도 감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은 15일 정권 교체기를 맞아 긴박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에는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이 참석했다. 진행은 구자룡 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맡았다.》○ 북 ICBM, 핵 보유국 향한 대미 협상용―북한은 과거 남한 정권 교체기나 미국의 주요 선거를 전후해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이번 ICBM 성능 시험 발사 등도 대선 일정에 맞춘 것인가. 윤=북한이 세계 최대 크기로 ‘괴물 ICBM’으로 불리는 화성-17형 성능 실험을 한 것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개발이 거의 완성 단계에 왔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핵 보유 후에도 제재를 받지 않은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처럼 되고 싶어 한다. 이제 미국을 괴롭힐 ICBM 발사는 유예하고 핵이나 ICBM을 제3국에 넘기지는 않겠다며 대남 위협용 전술핵은 인정받으려고 할 것이다. 미국과 이런 협상을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전=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보통 군사력 증강을 위한 군사 기술적인 수요, 국내 정치적 필요성, 그리고 대외 협상용 등 목적이 있다. 이번 발사는 단기적 협상용 시위라기보다 장기적으로 미중 경쟁 시대에 핵 국가로 인정받고자 하는 과정의 진행으로 보인다. 신=북한의 행보는 지난해 8차 당 대회 때 김정은이 결정한 바를 이행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력갱생하고 군사안보적으로 핵능력을 강화해 미국과 정면 대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한국은 별다른 변수가 아니었다고 본다. 북한이 한국을 고려했다면 베이징(北京) 올림픽에서 한국 정부 고위층과 만나 화해 제스처를 보였을 수도 있는데 그런 옵션을 걷어찼다. ○ 北 핵과 미사일, 南 정권 교체보다 자체 일정 따라―북한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큰 관계없이 자신들의 시간표나 장기적 목표에 따라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인데 이번 대선과 관계없이 ICBM 발사나 핵실험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인가. 윤=문재인 정부 초기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ICBM 시험 발사를 했다. 그 후 한반도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30∼40차례 시험 발사했다. 북한이 남한의 대선 혹은 정권 교체기라고 해서 미사일을 발사한다고만 볼 수 없고 협상용도 아니다. 1차 핵실험은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정부 때 했다. 전=대선에서 진보 후보가 이겼어도 대남 무시 전략으로 갔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가 군비를 엄청 증강한 것을 보았다. 문재인 정부도 이중 기준을 내세우는 미국의 앞잡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정권 교체가 안돼도 미사일 시험 발사 스케줄을 조정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고 본다. ○ 7차 핵실험, 전술핵 개발용 가능성―북한 영변 강선 평산 등에서 핵실험 재개 징후가 발견됐다. 폭파 쇼를 벌였던 풍계리 핵실험장의 3, 4번 갱도도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위협, 선전 효과는 있지만 기술적인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핵개발에 필요한 실험은 다 했다는 생각이다. 다만 북한은 아직 2차 핵공격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선제 타격을 받은 뒤 2차 핵공격 능력을 가질 때까지 실험을 계속할 수 있다. 신=(선거나 정권 교체 시기 등) 남북 관계 차원에서 도발을 하기도 했지만 북한은 자체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일관되게 핵개발을 했고 필요한 시점에 테스트를 해왔다.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전술핵 개발용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2년 동안 북한이 개발한 중단거리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전술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尹 시험대에 설 ‘힘을 통한 평화’ ―윤석열 당선인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했다. 정권 교체기의 북한 리스크가 차기 정부 초기의 큰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반도 4월 위기설이 상당히 가시화되고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규모를 늘렸든 줄였든 시작되는데 북한은 도발 명분으로 삼을 것이다.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 110년이다. 북한의 도발이 윤 당선인 취임 이후에도 이어지면 시험대가 될 것이다. 신속한 한미 공조, 북한 도발을 억제하도록 중국을 견인할 수 있는지 등이 역량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윤=남북협력을 중시하는 지난 30년의 포용정책이 적실성이 있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반도를 겨냥한 북한의 핵무장만 현실이 됐다. 과거에는 중국 러시아와의 북방 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겠다는 북방 외교의 꿈이 있었다. 지금은 두 나라가 북한의 뒷배가 됐다. ―윤 당선인은 선제 타격 등 대북 강경 자세를 보였다. 선거 때와 달리 윤 당선인 취임 후 정부를 운영하면서 조정될 수 있나. 신=윤 당선인의 대북 공약이나 자세를 강경이나 강공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유화정책과 대비해 강경하다고 잘못된 프레임이 씌워지고 있다. 대화의 문을 열어두되 북한이 도발하면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국가 외교안보 정책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전=억지와 제재를 유지하면서 대북 관여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윤 당선인이 ‘대화가 열려 있다’고 했는데 문재인 정부보다 더 효과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말 ‘핵을 버릴까’(가능성은 낮지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대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韓 쿼드 가입=대중 적대’ 잘못 ―윤 당선인의 한미 관계는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이 키워드다.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 가입,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가입 등 한미 관계에서 문재인 정부와는 달라질 부분들이 많다. 윤=쿼드가 대중(對中) 군사동맹처럼 비치는 것은 잘못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처럼 중국 주도 체제에는 가입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것에 들어가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미국의 MD 체제 가입 문제도 지금 북한의 전술 핵무기를 실은 미사일 수백 발이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겨냥하고 있지만 우리는 방어망이 거의 없다. 미국의 MD 체제에 들어가면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고 동북아의 군비 경쟁을 일으킨다고 김대중 정부 이래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 우리 독자적으로 방어하겠다지만 미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는 실정을 알아야 한다. 전=한미 간 ‘포괄적 전략동맹’은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문제다. 포괄적 동맹은 이슈의 포괄일 수도 있고 지리적 범위의 포괄일 수도 있다. 그걸 이제 결정해야 된다. MB 때는 가치동맹 얘기까지 했다. 지금은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미국의 가치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 ‘상호 존중’ 한중 관계, 공중증은 벗어나야 ―윤 당선인의 대중 관계 키워드는 ‘상호 존중’이다. 다만 3불(不)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 등 저자세 외교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신=어떤 게 한중 관계의 올바른 방향인지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원하는 걸 우리가 다 수용해 어떻게든 중국으로부터 피해 받지 않는 것이 올바른가. 그보다는 중국이 우리에게 요구를 해도 전략적 이익을 보존하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과 맞서거나 입장을 조화롭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정부는 3불(미 MD 체제 편입,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등 3가지 안 한다는 것)이 정책이 아닌 입장 표명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나왔다. 우리 스스로 잘못된 방향의 한중 관계를 만들어 갔다. 전=사드와 MD는 대중 견제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한중 한미 관계의 상위인 미중 관계에서 해결되면 이것은 굉장히 기능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윤=우크라이나 사태를 볼 때 지정학적 리스크는 숙명이다. 중국이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 동북아에서 다시 ‘권력 정치’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 지역에서 70년 전 미국이 구축한 균형을 어떻게 유지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일본이나 호주도 한국만큼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데 왜 쿼드에 가입하나. 우리가 너무 공중증(恐中症)이 있는 게 아닌지 봐야 한다. 전=중국은 한국이 쿼드에 들어가면 반중(反中)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우리 스스로 쿼드를 어떻게 보는지 시각과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는 최근 유엔총회 결의에서 인도가 기권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도는 쿼드 참가 국가지만 이해에 따라 (중국과도 같은 입장을 취하며) 러시아편을 들었다. 신=윤 당선인도 쿼드에서 기능별 협력을 먼저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국가 이익과 한미 동맹을 고려하면서 정책을 선택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외교는 ‘미국 or 중국’이 아닌 ‘미국 and 중국’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 ○ 한일 관계 개선 모멘텀 살려야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가역적 합의’까지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정권 교체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모멘텀은 생긴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상황을 워낙 어렵게 만들어 놔 복원이 쉽지만은 않다. 한일 관계를 지난 5년간 거의 방치했다. 국가 간 합의를 형해화시킨 뒤 뒤에 가서 유효하다고 얘기했다. 신=문재인 정부의 투트랙 기조는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로 풀고 미래지향적 협력을 하겠다는 것으로 방향은 잘 잡았으나 작동이 안 됐다. 전=문재인 정부 초기 북핵과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약간 일본 패싱이 있었다. 북한의 미래나 한반도를 다룰 때 한일 관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 후보 모두 ‘일본 배싱(때리기)’이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 한국의 지정학 리스크 일깨우는 우크라의 숙명―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에도 시사점이 많다. 윤=우크라이나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낀다. 투키디데스가 말한 ‘강대국은 원하는 걸 하고 약소국은 인내해야 된다’라는 명제가 생각난다.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국가가 됐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서 어느 때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전=러시아는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미국이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동진 중단을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로 삼지만 그렇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가 정책의 목적으로 전쟁을 불법화한 유엔 헌장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고 체결된 부전조약(켈로그-브리앙 조약)으로 전쟁을 불법화하는 시도가 나타났고 유엔 헌장에서 전쟁을 금지했다. 자위권만 합법적인 수단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北 핵 미사일만 강화시킨 ‘대북 유화 정책 5년’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으려고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 5년은 제자리걸음, 아니면 헛발질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남북관계만 좋아지면 모든 게 잘 풀린다는 생각을 했다. 북한의 의도부터 잘못 파악해서 북한의 핵무장은 기정사실화되고 최신형 전술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을 마주하는 결과를 낳았다. 신=문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폈지만 국방비는 크게 늘렸다. 북한에 유화적으로 임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유화정책을 펴면서도 국방은 튼튼히 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전=민주주의는 과정 못지않게 국민들 의사를 실체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5년간 국민들의 대중 불안감은 높아지고 김정은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바닥이었다. 일본과의 우호 증대나 대미 안보동맹 강화에 대한 바람이 늘어났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다. 정치의 ‘책임성(accountability)’ 문제다.정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정리=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2022-03-19 03:00 
길잃은 문재인 정부 대북 유화정책 5년, 백서 만들어 귀감 삼아야 [화정안보인터뷰]<2>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새 정부 출범은 선거 후 2개월 여 뒤지만 국정의 축은 당선자와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5년을 되돌아본다. Q. 2월 20일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평창 어게인’을 하려고 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듯이 결국은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A. ‘평창 어게인’이 아니라 ‘미사일 어게인’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한국 주도로 북미 또는 남북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은 북미간에 접촉이 없었고 김정은도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이었다. 모든 것이 다 낯설고 새로운 상황이어서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중계자 역할을 시도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와 하노이 그리고 판문점까지 세 차례 북미 접촉을 통해서 양측은 수많은 러브레터를 서로 교환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북미간 메인 게임의 핵심은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기브 엔 테이크’를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였다. 하노이에서 봤듯이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한국이 뛰어들어 양측의 손목을 붙잡고 어떤 회담을 전개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다. 한국 대통령은 단임 5년이어서 3년 반~4년 차에 들어가면 정권이 동력을 잃으면서 레임덕에 빠진다. 이것은 대외 정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종전선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든 참모들이 외교력을 낭비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굉장히 공허한 것이었다. 임기 말에 ‘평창 어게인’을 하겠다는 시도는 너무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Q. 베이징 올림픽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친중국 정책을 마무리하는 계기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편파 판정 시비 등으로 한중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오히려 악화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A. 문 대통령의 대외 정책 중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을 분야 중 하나가 대중 정책이다. 왜 미국에 가서는 할 말을 하면서 베이징에 가서는 혼밥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오판과 오해는 중국에게 있어 한국의 가치는 한미동맹의 강도에 비례한다 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가까워질 때 중국이 우리를 챙기고 돌아보고 배려한다는 외교 상식의 ABC를 잊었다. 때문에 한미 동맹이 이완되고 한미 간에 거리가 생겼다. 한국 대통령은 베이징에 가서 조선시대 조공 구도 형식으로 황제를 알현하는 시대의 한중 관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든가 김정은 위원장을 활용한다는 구상 자체가 중국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중국은 세계 제2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아직 1840년 아편전쟁 시절 서구 강대국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던 트라우마,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뭔가 품격을 보여줘야 되는데 중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G2 국가이긴 하지만 베이징 상하이(上海)를 비롯한 대도시를 벗어나면 내륙으로 갈수록 국민소득 5000 달러 미만인 지역들이 많다. 시진핑은 빈부 격차가 공산당의 토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공동부유(共同富裕)’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반(反)시장 정책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IT, 유튜브를 비롯한 SNS 플랫폼의 중단, 연예인 활동 금지, 영어 공부 하지 마라 등 문화대혁명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중국의 도약이 역설적으로 한계에 맞고 있는 상황을 한국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일방적인 구애나 중국에 대한 존경, 예우 등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결국 2030세대의 공정 합리성 키워드와 맞지 않아 차기 정부는 한중 관계를 바로잡는 숙제를 맞고 있다.Q.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들어선 뒤 그 해 후반 북한은 6차 핵실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 등을 했다. 한반도에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이듬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한 것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A. 국제 정치를 볼 때 구조적인 문제냐, 전략 전술의 문제냐를 구분해야 한다. 지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구조에 관한 문제다. 푸틴 입장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다. 2017년 트럼프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북한과의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미국 지도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군사적인 도발은 하나의 수단이다. 이건 전략 전술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구조적인 문제인 것과는 다르다. 나는 2017년 하반기에도 일촉즉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대화 국면이 일어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양측은 일종의 전술 전략적 측면에서 화염과 분노를 얘기했고 한쪽은 미사일 도발을 했던 것이다. 양측의 접점 꼭지를 평창에서 찾았고 문재인 정부는 그 틈새를 파고들어 (남북과 북미) 회담으로 이어졌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한 것은 오산이었다. 차관급 회담에서 해결되지 않는 아젠다는 대통령 회담에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성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 최선희를 판문점에서 7번 만났지만 북한은 어느 것도 양보할 수 없었다. 결국은 양측 모두 정상에게 공을 던져 실무자들은 책임을 면피했다. 싱가포르는 트럼프로서는 상견례에 불과했지만 승리자는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은 꿈에 그리던 시진핑과의 회담을 다섯 차례나 하면서 브로맨스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연극의 시간은 끝나고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이제는 양측이 패를 다 까야하는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영변을 포기할 테니 대북 제재 11건 중 5건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변과 5건의 제재 해제’. 북한은 미국의 정보를 쉽게 과소평가했다. 영변이 북한 핵 개발의 성지이긴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될까말까였다. 분강 강선 등 수많은 우라늄 농축 시설이 산재해 있는데 영변 해체만으로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다.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제재 11건 중 5건만 해제해 달라는데 이걸 안 들어준 미국은 날강도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2016년 안보리 제재 2270호 이후 제재는 돈줄 제재다. 이 돈줄 제재는 하나를 풀면 실타래 줄이 끊어져 결국은 유야무야 된다. 김정은은 5개만 풀면 되겠다고 생각하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아마도 김정은이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떠나기 전 작전을 세울 때는 트럼프라는 사람이 덜렁거리고 비즈니스맨이라 우리 장군님이 코너로 몰고 가 그냥 쑥덕쑥덕해서 사인을 하면 될거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최용해 김영철 등이 그런 보고를 했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미국 정치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트럼프의 행동을 제지할 여러 가지 그물망이 있다. 존 볼턴 등 스태프들이 나서 대통령이 와인 한 잔 먹고 사인을 하는 그런 외교 행태를 못하게 견제를 했다. 여진은 남아서 트럼프가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 왔다가 6월 30일 판문점에서 한번 만나고는 각자 갈 길을 갔다. 여기까지 진행될 때 문재인 정부의 중계 외교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북미 남북 관계 진전이) 왜 안 됐을까 자성과 자숙을 해보고 대안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방향이 잘못됐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평양가서 9·19 군사합의하고 15만 명 북한 군중 앞에서 연설도 하고 부인을 동반해 백두산 정상에도 올라가니까 감격과 흥분이 있었다. 마치 통일 대통령이 되는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북한의 전면 비핵화를 전제로 제재 해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평양에 가면 듣기 좋은 얘기를 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당시의 서훈 국정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본인들이 지북파(知北派)라고 한다. 그렇지만 2019년 6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턴을 하면서 바로 잡아야 됐어야 되는데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원하는 정책만 너무 많이 했다. 대북전단방지법, 일명 김여정 하명법, 그리고 9·19 군사 합의인데 이것은 비무장지대 무장 해제로 이어졌다. 이 두 가지 정책은 한국의 근본적인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가 있다. 북한 체제의 변화는 정보의 유입인데 대북전단 방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인민들이 여전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의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다. Q. 북한은 올 1월에만 7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또 핵실험과 ICBM 발사 유예 조치도 재검토하겠다고 해서 여차하면 레드라인을 넘겠다고까지 선언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의 대북 유화 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헛발질을 했다, 평화쇼만 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A.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키워드로 정리하면 ‘대북 유화 정책’ ‘친 김정은 정책’ ‘향북(向北·북한 바라기) 정책’ ‘올인 평양 정책’ 등이다.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서 2년간 근무했던 서훈 전 국정원장은 자신은 친북이 아니라 지북이라고 한다. 북한을 알면서 안하면 그거는 더 문제가 있다. 북한을 알았으면 거기에 맞는 정책을 했으면 오늘날과 같은 결과는 안 나왔을 것이다. 결국 북한을 가짜로 아는 사이비 지북 정책이 됐다. 북한의 심기를 고려해 기분을 좋게하는 정책을 한다고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통일이나 남북 문제가 우리의 문제니까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주체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1월 7차례 발사한 미사일은 서울을 겨냥하는 동시에 워싱턴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국제정치의 전선이 약해졌다는 틈새를 노리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UN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의 전선이 대만, 우크라이나, 판문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가 대북 제재를 해제할 호기로 보고 강공 모드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한미 동맹을 통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우리 문제인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단이 우리가 원해서 됐나. 한반도의 국제 정치에서 우리의 역할은 70~80%가 안된다. 동북아는 남북 관계도 있지만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중과 압력이 굉장히 높은 곳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대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목소리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크다. 이게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의 운명이다.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동서의 대립이다. 한반도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하면서 우리끼리 손잡으면 뭔가 내일 모레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끔 걱정이 된다. Q.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을 보면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는데 맹목적으로 김정은이나 북한 정권의 선의에만 매달렸다는 비판들이 많다. 임기 마지막까지 문 대통령이 매달린 것이 종전선언이다. 그런데 2월 10일 세계 7대 통신사와 연합뉴스 공동 서면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임기 내 종전선언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종전선언에 관한 마침표를 찍는 그런 발언이었던 것 같다. A. 그래도 현실을 깨닫고 임기 중에 마침표를 찍고 퇴임을 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혹시 퇴임 후에도 붙들고 밤마다 양산에서 뒤척일까봐 걱정을 했다. 종전선언 이 아이템은 정말 헛발질을 했다. 뭐가 헛발질이냐면 우리가 무슨 거래를 하려고 하면 거래 당사자들이 관심을 갖는 아이템을 가져와야 한다. 청와대는 매번 미국 워싱턴만 갔다 오면 미국이 종전선언 문안에 합의했다고 했다. 그런 미국이 왜 1년이 지나가도록 서울에 대사를 안 보내지 않았나. 한마디로 스토킹 당하기 싫어서 안 보내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면 보내겠다는 거다. 미국이 했던 10마디 중 한 마디를 가지고 전제조건 없이 미국이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문안이 곧 나온다고 했다. 주미 대사, 외교부 장관 등이 국회만 가면 거짓말하는 것이다. 중국은 종전선언은 하면 좋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해한다. 북한은 어떤가. 종전선언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북한의 관심은 11건의 제재 중 한 건이라도 풀려고 한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해봐야 뭔 소용이 있냐고 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서울이 아니라 평양이다. 종전선언을 하면 북미 간 적대관계가 사라지고 양국이 외교 정상화를 하면 자동으로 제재가 풀린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그냥 관망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발을 땅을 디디지 않은 공허한 것이었다. 외교부 장차관, 통일부 장차관, 청와대 참모, 국회의장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프랑스 의회가 한국의 종전선언에 찬성을 한다고 언론에 푸시를 해서 보도하게 한다. 프랑스 상원이 그런 결의를 하는 것은 ‘기브 앤 테이크’가 있어서다. 국제 외교가 그런 거 없이 진행된다고 이해한다면 니콜슨 경의 ‘외교론’을 다시 읽어야한다. 외교에 공짜는 없다. 이 작은 나라가 경제 안보 외교 시대에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모든 장 차관이 파리 런던 도쿄에 가서 종전선언 협조나 요청하다 끝났다. 그러면 상대방은 한국은 뭐 줄 거냐고 한다. Q. 종전선언 지지 외교에 관리들이 분주했던 것은 대통령의 뜻이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A. 프랑스 의회가 종전선언 결의를 하면 한국 외교부에 주한 프랑스 대사를 통해서 “이번에 어떤 입찰에 들어가는데 프랑스 업체 좀 선정해 주세요” 할 수도 있다. 이런 게 거기뿐이겠나. 미국에서 삼성과 LG가 반도체와 배터리 투자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 얻어낸 것이 뭔가.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회사 대표들 일어나 보세요”하고 립 서비스 한 것 밖에 없다. 비자 쿼터를 더 얻어 냈나. 한국 유학생들 지원책을 얻어냈나. 교민 우대책을 얻어 냈나. 김훈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조정을 떠도는 유령’에 얽매여 외교력을 낭비하는 것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1941년 진주만 폭격 이후 일본인 13만 명을 격리한 것을 잘못된 것이었다고 했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얻어낸 것이다. 그러면서 관계를 대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은 안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Q. 문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머저리’ ‘삶은 소대가리’ 등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북한이 역대 한국 대통령을 비난했는데 대북 유화정책을 폈던 문 대통령이 빈도수에서 단연 1등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인내하고 기다리고 선의를 기대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왜 이렇게 했는지. 김정은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생긴 친근감인지, 북한의 반발을 막기 위한 전략적 판단인지, 아니면 겁을 먹고 하는 굴종인지 어떤 심층적인 원인이 무엇인지.A. 하나는 문 대통령의 조상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부모가) 6.25 때 배를 타고 온 뿌리에 대해서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함흥에서 우리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무얼했었지” 생각하면서 (북한) 사람들을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로 구분한 게 아니라 같은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지북주의자라고 하는 서훈 전 원장에게도 그래서 국정원장을 맡긴 것일 것이다. 그런데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간판을 내걸어 북한의 협조가 없으면 안되는데 북한은 그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과거에 북에 협상하러 가면 북한 인사들이 남측 NGO 관계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당신들 우리 때문에 밥 먹고 사는 거 아니냐. 당신들 우리가 안 오면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 그러면서 서울에서 선물을 더 가지고 오라고 한다. 북한에 약점을 잡혀 강 대 약 구조로 가면 계속 정도가 심해지다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Q. 북한의 속성을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들이 전혀 모르지 않을 텐데 유화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랄까 긍정적으로 이해할 만한 전략적인 요소는 없는지. A. 한반도 프로세스는 상대방의 선의를 기초로 한 정책이다. 평화를 제안해서 상대방이 응하면 경제협력을 해서 남북한이 윈-윈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사실은 진보든 보수든 대북 정책은 상대방이 있다. 상대방이 협력하고 선순환 구조로 가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선의를 기초로 평화를 제의했는데,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그 정책은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북 유화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가 역설적으로 제일 못한 게 이산가족 상봉이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도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남북 관계도 어차피 ‘기부 앤 테이크’여서 주고받고 하는 건데 대등한 구조가 안 되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정책이 이제 선의만 갖고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북관계는 국제관계보다 더 어렵다. 남북 협상이 영어나 중국어로 하는 것도 아닌데 대화가 안 되고 소통이 안 되고 상식이 안 통한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선의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2018년 북한과 미국 간에 어떤 협상의 물꼬를 트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후 북한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해 대북전단 방지법, 9·19 군사합의 등 우리 안보상의 취약성을 유발하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등을 얻어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학점은 C학점에 그칠 수밖에 없다.Q.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종전선언,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9·19 군사합의 이 세 가지를 ‘최악의 3종 대북 정책 선물세트’라고 규정한 것을 보았다. 다음 달 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차기 정부가 들어서는데 3종 세트 등 대북 정책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이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것을 법으로 그것도 북한의 요구로 제정된 것은 헌법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맞지 않는다. 북한 내부적으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어떤 문틈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9·19 군사합의로 전방 40개 정도의 GP를 무인(無人)으로 바꾸고 비무장지대 근거리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게 됐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1년 전 38선에서의 군의 경계 태세와 뭔가 닮아가는 양상이다. 종전선언은 북한도 별로 관심이 없는 사항이다. Q. 북한이 다음 달 대선을 주시하면서 선거가 끝나면 어떤 도발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나. 특히 야당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좀 더 강한 도발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지. A. 네 명 후보 누가 다 당선되든지 도발은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친북 후보라고 생각해서 도발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1월 7번 미사일을 발사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김정은은 워싱턴과 게임을 크게 벌리고 있다. 미국의 전선이 약해진 틈을 타 벌이는 것이다. (도발은) 남측 여야 진보 보수 후보를 떠나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워싱턴과 큰 게임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안 그럴 것 같다고 하는 말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됐을 때 도발을 해야지 워싱턴에 가서 바이든 손을 붙잡고 압박을 하든지 바지가랑이를 잡든지 해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5월 15일 차기 대통령이 취임하면 지금 예정으로는 6월 1일 지방선거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호기를 김정은이 놓칠 수가 없다. 워싱턴은 한반도에서 1만km 이상 떨어져 있는데 바이든이 서울에 왔을 때 쏴야지 위험을 절감할 수 있게 만든다. 미국이 전략자산을 괌에서 전개하든지 하겠지만 김정은 입장에서는 올해는 그런 게임을 벌려야 될 시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야 제재를 해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월 9일 대선 이후 한미 간 어떤 정치 일정에 맞춰서 ICBM 발사 시험 등 북한의 도발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김정은은 과거 유엔안보리에서는 중러가 자신들을 압박해 결의안을 내놓았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Q.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두 개 자치공화국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분으로 푸틴은 진공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으로 규정했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의 관련성에 대한 분석들이 많다. 특히 1990년대 초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주권을 위협당한다는 시각이 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면 우크라이나처럼 되니 포기하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삼지 않을까 싶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중에서 가장 심각한 측면이 이런 것이 아닌지. A. 김정은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사태를 겪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핵개발을 해왔다.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언이라는 거짓말에 속아서 일부 친북 학자들이 되뇌이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은 미국의 전선이 약해지는 틈을 노릴 것이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본다. 심리전 경제전 군사전 등이 혼합되어 있다. 3월이 되면 벌판의 얼음이 녹아 탱크 등에 의한 군사 기동이 여의치 않게 된다. 그럼에도 푸틴 입장에서는 이 전쟁은 구조의 문제여서 얻는 것 없이 철수할 수는 없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등이 과거 친 러시아연방에서 분리 독립된 것이기 때문에 원위치시켜야 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중국이 서포터즈(지원국)가 되어 푸틴는 아주 신이 났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국력이 조금 다운사이즈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제정치의 판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는데 결국은 자강의 논리를 심어주는 것이다. 북한도 자강, 남한도 자강인데 우리는 한미동맹 속에서 자강을 해야 된다. 미국과 철저하게 동맹관계를 맺지 않으면 만약 대만 해협에서 긴장이 고조돼 주한미군이 빠져나가면 한반도의 역학 구조가 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은 북한 뿐 아니라 한국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터뷰 후기남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문재인 정부 5년의 대북 정책을 정리하는 백서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북 유화 정책을 펴면서 진행했던 대북 접근에서 문제점은 무엇인지, 후임 정부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면밀히 분석해 기록으로 남겨 둘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 교수는 “북한은 남한 당국자와 대화나 협상을 할 때 ‘과거 남측 장관은 이런 얘기를 했는데 왜 다른 소리를 하느냐”고 책상을 손으로 치면서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대북 정책은 북한에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 정책 백서 발행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조가 달라지면서 빚어지는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이해된다구자룡·윤융근 기자 bonhong@donga.com}2022-02-24 11:09 
“강대국 사이 약소국 전략실패는 큰 댓가” 보여주는 우크라이나 사태[화정안보인터뷰]우크라이나는 삼면초가(三面楚歌)의 위기다.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남부 크림반도와 동부 접경 돈바스의 반군 장악지역 그리고 북부 벨라루스와의 접경지역에 12만 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세 방면에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와 비교해 병력과 장비, 무기 등에서 절대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개전 시 30분 밖에 못 버틴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중간 패권 경쟁과 갈등을 ‘신냉전’이라고 하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상대가 구소련에서 러시아로만 바뀐 것을 빼면 ‘냉전의 부활’에 가깝다.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양측이 냉전 시대에 형성된 전선에서 맞붙고 있고 주장하는 논리도 냉전시대에 세력 다툼의 논리인 ‘영향권’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30년 가량 유럽에 수면으로 내려앉았던 냉전의 기운이 되살아나고 있는 양상이다. 러시아는 구소련이 붕괴한 뒤 독립한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하는 경우 안보의 위협을 받는다며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해 무력 침공도 불사할 기세다.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러시아주의 야망에 따라 소련 제국의 부활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보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는 동부 국경 돈바스 지역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은 ‘대리 내전’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왜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었는지, 우크라이나에서 높아지는 긴장이 한반도에는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허승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에게 들었다. 허 교수는 주 우크라이나 대사(조지아 몰도바 겸임)를 지냈고 한러대화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미-러 양보 불가 지정학적 요충지 우크라이나-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사태 해결을 위한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다만 러시아의 제안에 미국이 서면 답변을 하고 러시아가 이를 검토한 뒤 다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하면서 잠시 시간은 벌었다. 하지만 마주 달리던 열차를 잠시 세워놓았을 뿐이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과 러시아 간에 회담이 잇따라 열리고는 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멀고 가까운 다층적인 요인이 바탕에 깔려 있다. 멀리는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러시아의 뿌리는 우크라이나 키예프공국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문화와 역사의 발상지라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기 전까지 300년 넘게 한 국가였다는 의식이 남아있다.”-역사 문화적인 이유만으로 엄연한 독립국인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서부 반군을 지원하면서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것은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 현상변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1990년대 말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확장시킨 서방과 강대국 지위를 다시 찾으려는 러시아간의 충돌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독일 통일을 허용할 때 ‘공동의 집으로서의 유럽’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러시아가 포함된 유럽 질서 구축 구상을 밝혔다. 당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이동하지 않는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후 NATO의 동진은 계속됐다. 러시아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했어도 구소련 붕괴 후 혼란과 경제 침체 등으로 강하게 반발하지 못했다. 냉전을 거치면서 국력이 쇠락해 반발할 여력도 부족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까지 NATO에 가입하면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사라져 자국의 턱밑까지 밀고 들어오는 형국이라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러시아는 NATO의 동진이 러시아에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나 이미 NATO에 가입한 동구권 국가들은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2차 대전 후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강압적인 세력권 편입 및 탄압도 있었다. 러시아에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18년 벨라루스와 벌인 대규모 군사훈련이나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역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것 등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국가들까지 NATO가입을 고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러시아와 중국 두 전선 마주한 미국 -냉전 종식 후 구소련이 해체될 당시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 지원에 나서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친서방 정책을 펴기도 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성숙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윈-윈의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같은 밀월 관계가 안되면 러시아가 주변 지역을 동원해 유럽과 미국을 견제하는 구도를 예상했다. 최악은 러시아가 유라시아에서 반미 동맹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러시아가 중국 이란과 동맹에 가깝게 결집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교수님께서 최근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의 ‘IIRI 보고서’에 발표한 글에서 서방이 당시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진데는 미국이 잘못 대응한 것이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를 유럽 질서에 포용하는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미국이 마셜 플랜에 버금가는 지원과 포용정책을 펴 러시아에서 시민사회와 중산층이 형성되었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미국은 패권도전국인 중국과의 경쟁 갈등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와도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이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지. 그래서 대중 견제라는 보다 큰 목표를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년대 중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견제하는 구도를 세웠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중국 견제에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렇다. 유럽에 포용된 러시아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에 맞다. 실제로 그런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구도가 되어 미국으로서는 불리한 상황이다. 미중 패권 갈등, 미러 냉전적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중-러간 전략적 협력은 당분간 더욱 공고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러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은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일로, 푸틴 때문?-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한 ‘지정학적 중추’(geopolitical pivot) 국가인 우크라이나는 미러의 ‘외교 단층선’ ‘지정학적 단층선’에서 있어 이곳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 출범 1년 가량을 맞으면서 위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있나. “트럼프 정부 때 미국과 탈레반 정부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철군 계획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가 이뤄졌다. 푸틴은 미국이 힘이 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런 약해진 미국에 대한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는 지 보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이 돌아왔다’며 국제질서의 ‘원상회복’을 내걸고 흑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강화한 것도 러시아를 자극했다.”-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압박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데 최근 NATO 가입을 위한 특별한 행동이나 조치가 있었나. “그렇지 않다.우크라이나는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1994~2005)때 유럽연합(EU)와 NATO 가입을 국가적인 목표로 선언했다. NATO 가입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국가 정책이다. 최근 들어 가입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벌인 것은 아니다. NATO도 우크라이나가 가입을 신청한다고 해도 당장은 가입에 호의적인 분위기도 아니다. 러시아가 NATO 가입을 명분으로 압박하는 것이 명분이 약하다.” 이와 관련 토머스 프리드먼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최근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푸틴의 장기 집권 야망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4년 선거에서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해 전쟁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것으로 ‘전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소연방 해체에 대해 2005년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선언했던 푸틴의 소연방에 대한 집착과 향수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에 있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면 미국과 서유럽은 무기 추가 공급 지원 같은 군사적 대응 외에 경제적으로 강력한 제재와 대응을 경고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의 국제은행간 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접근 차단 △러시아와 독일 잇는 ‘노드스트림 2’ 가스관 사업 진행 중단(개통식만 남겨놓은 단계) △친러 인사 자산 동결 등이 대표적인데 러시아에 대한 제재 중에서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중간재 수출의 금지도 있다. 러시아 공업의 30~50%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외부 압박, 내부 분열 우크라이나의 난맥상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도 국론 통일이 되지 않은 것도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크라이나에서 정권이 바뀌어 친서방과 친러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양극단을 오가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서방의 지원 의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자국의 국익과 안보에 필요한지를 반영한 장기적·균형적인 외교정책을 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도 정권 교체와 외교정책의 신뢰성, 지속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코미디언 출신으로 부패정권에 맞서며 국민적 지지를 받아 집권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부 통합은 커녕 친러 친서방의 분열이 가열되고 있다. 거기에 국정 무능과 개인 부패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러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유대도 깊다는 우크라이나와 왜 이렇게 틀어졌나? “우크라이나는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국내 여론에서 친서방과 친러시아 지지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야누코비치의 실정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그리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과의 동부 돈바스 지역 내전이 8년 째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멀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위협 등의 강압적 수단 외에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렵다.”강대국 러브콜 착각하지 말아야, 한반도 시사점-교수님은 IIRI 보고서에서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이면서도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과대하게 평가하는 경우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약소국이 대립하는 강대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 외교적 지렛대가 생긴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이때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1,2차 대전 기간 중 폴란드가 독일, 소련과 모두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양국에 의해 무력 점령당했다. 말이 러브콜이지 강대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압박으로 바뀔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과거 냉전 전선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우크라이나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적절한 외교를 펼쳤는지 실책은 없었는지.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사이의 중소국 외교가 잘못되면 어떤 댓가나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연합(EU)이나 NATO 가입을 추진하는 친서방 정책을 펴면서 러시아로부터는 국제가격이 1000㎥당 250달러 안팎인 천연가스를 계속 50달러로 받기를 원했다. 러시아가 이를 수용할 리가 없다. 러시아는 두 차례나 가스 공급을 중단하고 가격도 올렸다. 경제(러시아)와 안보(미국과 서유럽)를 강대국에 의존한 상태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경우 위협과 압박을 헤징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지 못해 댓가를 치렀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우크라이나는 구소련 붕괴 후 독립할 때는 구소련의 핵무기가 대량으로 배치되어 있어 ‘제3대 핵보유국’이기도 했다. 강대국의 안보 약속만 믿고 핵을 포기해서 영토 일부를 상실하고 안보가 불안해졌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마땅한 동맹체제나 안보 수단을 확보하지 않고 선언과 구속력 없는 합의에 의해 주권과 안보를 맡긴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의정서’를 맺었다.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후에는 중국도 가담해 유엔 차원의 조치는 아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모두 참여했다) 등이 안보를 보장할 테니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07년 우호조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지금은 동부 국경을 압박하는 사태에 이르렀지만 의정서나 우호조약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비망록, 의정서, 협약 등에 기초한 주권과 영토 보장은 얼마든지 한 순간에 휴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히틀러의 팽창 직전 뮌헨 협정부터 독-소 불가침 협약 등이 아무런 효력이 없었던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미러의 힘겨루기와 협상에서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한말 강대국의 흥정과 대결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고, 얄타회담에서 강대국 간의 거래로 폴란드와 한반도 운명이 결정된 것은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고난과 불행을 잘 보여준다. 국력과 국방력, 국론 통일에 바탕을 둔 주도적 자강 외교는 중견국이나 약소국 모두가 지향해야 할 과제이다.”구자룡 기자·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bonhong@donga.com}2022-01-24 13:43 
“한중관계 ‘비대칭성’ 갈수록 심화… 사드 제재 ‘역습’ 불러”《“마음이 한 번 멀어지면 좁혀지기 어렵다.”(이욱연 서강대 교수)“북핵이 한중 관계의 핵심이 되면 한국은 항상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김재철 가톨릭대 교수)“한중 간 상호의존 심화된 비대칭성의 역습이 곧 사드 사태였다.”(정재호 서울대 교수) “보완성은 약화되고 경쟁이 부각되는 시기가 온 것 같다.”(신정승 동서대 동아시아연구원장·전 주중대사) 올해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가진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 주최 신년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양국 관계에 켜진 경고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좌담회는 5일 신 전 대사 사회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신 전 대사는 한중 수교 비밀 협상 당시 외교부 과장급 간부로 협상에 직접 참가했다.》○ 목표, 가치와 규범 차이 안고 출발한 韓中 신: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 기반 마련, 경제적 기회 확보, 국제무대에서 전방위적 활동 확대 등 목표가 있었다. 지난 30년간 경제 인적 교류 확대뿐 아니라 중국의 북한 일변도 정책을 바꾸는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한중 관계가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인가. 정: 양국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수교했지만 당초의 기대에 비하면 성과는 무척 아쉽다. 무역 투자 관광이 그나마 양국 관계를 지탱해 온 주춧돌인데 그마저 흔들리고 있다. 양국 관계의 키워드는 상호 의존인데 한국이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비대칭화가 갈수록 심화됐다. 이로 인한 역습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의 경제 제재다. 양국 간 가치와 규범 차이가 점차 커지면서 상호 부정적 인식도 커졌다. 마늘 파동, 고구려사 문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사드 사태 등 위기가 있었다. 갈수록 안보 이슈로 비화하고 미국 북한 등 제3자가 개입되면서 양국만의 협상으로 풀기 어려운 관계가 되고 있다. 김: 수교 이후 10주년, 20주년에 비해 양국 관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훨씬 높아진 배경에는 양국 간 동상이몽이 있었다. 경제적 이익 추구는 공통점이지만 양국의 수교 목표에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반면 중국은 한반도의 세력 균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지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에 영향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국이 서로 상대방의 목표를 존중해 주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 양국은 출발부터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지 않았지만 한 해 1000만 명 이상이 오갔다. 오랜 문화적인 유대가 있는 데다 정서와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치와 규범의 차이에 따른 갈등은 커지고 정서적 유대는 낮아지고 있다.○ 미중 전략적 갈등, 한중 관계에도 먹구름 신: 한중 간 비대칭화 확대에 미중 간 전략적 갈등 심화까지 겹쳐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미중의 물리적 충돌 우려까지 나온다. 중국은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하는 상황이다. 정: 1990년대와 2000년대만 해도 중국에서의 현지 연구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진행됐다. 당시 보여준 추세라면 중국이 시장친화적이고 자유 지향 체제로 수렴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지금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중국은 미국이 깔아놓은 질서를 바꾼다는 뜻에서 ‘수정주의’ 국가로 불리지만 그 전에 스스로 세운 원칙을 바꾸고 있다. 불당두(不當頭·우두머리가 되지 않는다),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 ‘해외기지 안 만든다’ 등의 입장을 모두 뒤집었다. 미중 간 충돌이 발생한다면 몇 년 전에는 남중국해를 꼽았는데 지금은 대만이다. 다만 대만은 가연성은 높으나 폭발력은 낮다. 한반도는 가연성은 매우 낮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폭발력은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을 합친 것보다도 클 것이다. 신: 미국 영국 호주 3국이 오커스(AUKUS)라는 사실상 대중국 군사동맹을 출범시켰다. 미국은 쿼드(Quad·미국 인도 일본 호주 4국 협의체) 그리고 한미일 협력을 통해 대중 압력을 강화하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새로운 냉전 구도로 가는가. 김: 신냉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지만 크지는 않다고 본다.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반격 속에 바이든 행정부는 ‘가드레일’을 마련하려 시도한다. 양국 갈등이 선을 넘어 충돌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시도이다. 중국도 미국과의 경쟁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경쟁의 폭과 속도, 범위는 조절하려고 하는 듯하다.○ 한미 동맹의 외연 중국까지?신: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인권과 민주주의로 대중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 민주주의와 인권은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이런 압박이 중국 내부적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은 지금 1990년대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고 폐쇄적으로 가고 있다. 이런 때 밖에서 억압과 압박 공세가 들어오면 내부 변화는 오히려 어려워진다. 외부 억압으로 중국이 서방식 민주주의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회의적이다. 신: 올가을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3연임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내부적인 통제나 강경한 대외 정책이 집권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면 당 대회 이후에는 유연해질 수 있나. 정: 유연해진다 해도 단기적이고 전술적인 차원일 것이다. 긴 호흡으로는 여전히 공세적인 외교를 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필요하면 ‘끝까지 간다’는 자세를 보였다. 미중 관계에서의 ‘가드레일’이 잘 지켜진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신: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얼마 전 한미 연합작전 훈련 대상에 중국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미 동맹 대상이 중국까지 외연을 확장한다는 의미다. 김: 미국의 기대는 분명하다. 미국은 일본에 안보를 보장하듯 일본도 미국 안보 위협 대처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비대칭적으로 한국의 안보를 보장했다면 이제 한국도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할 것이다. 대응 대상에 중국을 포함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했던 한미 동맹과는 다른 차원이어서 신중하게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신: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얘기하는 항해 자유, 상공 비행의 자유를 한국은 중시할 수밖에 없지만 어디까지 미국에 보조를 맞춰야 하나. 김: 남중국해의 항행과 비행의 자유는 당연히 지지해야 할 규범이지만 미국이 공동 순항을 하자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중국이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일상적으로 항행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북핵과 한중 관계 ‘불편한 동행’ 신: 북핵은 동아시아 정세와 한중 간 관계에도 핵심적인 변수다. 김: 한국은 보수 진보 정부 모두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을 바라봐 왔다. 차기 정부는 중국에 대한 기대를 좀 조정하거나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중국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경절에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랐고,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北京) 겨울올림픽을 활용해 종전선언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앞으로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한중 관계가 아닌 미중 관계의 맥락에서 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우호적이고 협력적 정책을 취하면 돕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미중 갈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데도 북핵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을 한중 관계의 핵심에 놓으면 우리는 중국에 언제나 을(乙)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 中 애국주의와 韓 반중 정서라는 걸림돌 신: 중국의 국력이 대폭 신장되면서 세계 각국과 갈등도 나타나고 있는데 한중 양자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대국 의식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로 보완성이 약화되고 경쟁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이: 한중이 가치와 규범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정서적 유대감으로는 상당히 밀착돼 있었다. 그런데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양국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요인은 시진핑 체제가 억압적으로 변하면서 경직화하고 있는 점이다. 시진핑 체제 이후 전랑(戰狼)외교, 홍콩 민주화 운동 억압, 코로나 사태 기원 논란, 문화 기원 논쟁 등이 한국인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 한국 내 반중(反中) 정서 확산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 사회의 혐오 문화가 반중 혐중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혐중이 상업주의화되고 있는데 유튜브나 포털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클릭 수가 높아가는 것이 한 사례다. 신: 중국은 기회가 될 때마다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며 주변국과 친성혜용(親誠惠容)의 동반자 관계를 강조한다. 그런데 주변국 반응은 싸늘해 중국을 경계한다. 중국이 자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가. 정: 중국은 대외 관계에서 여러 입장을 수정하고 있다. 중국은 1000년이 넘는 중화주의의 유전자(DNA)를 갖고 있는데 사회주의란 꺼풀이 벗겨지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양제츠(楊潔지) 국무위원은 외교부장 시절 아세안 국가들과의 공식 회의에서 “우리는 대국이고 너희들은 소국이다”고 했다. 신: 중국 내에서 높아지는 애국주의도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 중국의 변화를 가로막는 중요한 내부적 걸림돌 중 하나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다. 시진핑 시대 민족주의는 ‘치욕 민족주의’와 ‘문화 민족주의’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전자는 아편전쟁 이후 당한 치욕을 계속 환기시키고 외국에 대한 배타적인 정서를 강조해 내부 통합, 중화권 통합을 이루려는 것이다. ‘문화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주요 2개국(G2), 세계 2위 경제대국 등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소프트파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평가가 낮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한중, ‘화이부동’으로 신: 수교 이후 30년간 한중 관계를 돌아보면 저자세 논란 등 아쉬움이 있다. 정: 우리는 지난 30년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중국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졌다. 한국 관리들은 소위 공중증(恐中症)에 젖어 안타깝다. 상황의 역전을 위해서는 정치인이 용기가 필요하다. 이: 한중 관계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강조하는데 ‘구동’이 핵심이다. 이는 법가적인 생각으로 통일을 강조하는 내부 통치가 아닌 외교 원칙으로는 맞지 않다. 한중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가야 한다. 서로 다른 것을 전제하고 만나야 한다. 경제적인 이익 차이나 정치적인 이견과 달리 마음이 일단 멀어지면 쉽게 좁혀지기 어렵다. 김: 한중 관계의 지난 30년이 확장과 발전의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조정과 모색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정부나 민간 차원이나 조금 더 솔직하게 이견을 다루기 시작해야 한중 관계가 관리되고 발전될 수 있다. 대중 관계에서 전략적인 모색이 필요한데 우리는 대중 정책을 둘러싸고 진영이 서로 갈라져서 상대를 비난하기 급급하다. 치열하면서도 냉철하고 합리적인 대중 전략 논쟁이 있었는지 회의적이다.정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2022-01-08 03:00 
인턴 87% 공백… 방치된 ‘의료대란 시한폭탄’ 누가 멈추나[논설위원 현장 칼럼]2일 오후 2시 반 대전 중구 목중로 대전선병원 서관 5층 27m² 크기의 남성 인턴 숙소. 방 양쪽 벽에 커튼으로 가려진 2층 침대가 있고 방 가운데에는 컴퓨터, 서류와 환자들에 대한 메모 등이 업무용 책상에 놓여 있었다. 숙소와 휴식, 업무가 분리되지 않은 인턴의 고달픈 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바닥의 빈 박스에는 야식용 컵라면과 과자 등이 담겨 있고, 의자에는 개키지 않은 의사 가운과 수술복이 둘둘 뭉쳐져 있다. 숙소 입구에는 토, 일요일 없이 짜인 인턴 7명의 야간 당직 스케줄과 비상 연락망이 빼곡히 적혀 있다. 때로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 치료를 위해 급히 콜을 받고 뛰어나가는 인턴들의 정신없이 바쁘고 고단한 생활의 단면이 펼쳐져 있었다. 과거 인턴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대기 상태였다고 대전선병원 김광민 감염관리실장(감염내과 전문의)은 말했다. 2015년 ‘전공의법’이 만들어져 그나마 나아졌다지만, 1주당 ‘80시간+8시간(긴급한 필요시)’이 법정 근무시간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안 지켜진다. 2018년 실태조사에서 수련병원의 3분의 1이 규정을 어겼다. 전국 240여 개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해 3000여 명의 인턴은 ‘수련’만 받는 학생이 아니고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궂은일을 하는 필수 의료 인력이다. 이 병원 인턴 C 씨는 “밤에 소변을 보지 못하는 환자의 요도에 삽관을 하거나, 발열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등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함께 병원의 밤은 우리가 지킨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내년 병원 인턴 2700여명 부족 이런 인턴이 내년 한 해 병원에서 거의 사라질 위기다. 올 8월 전공의 파업에 동조해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올해 의대 졸업생들이 재응시 기회가 없으면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턴이 충원되지 않으면 수도권과 지방 가릴 것 없이 의료 현장은 큰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수련병원은 규모도 크고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어서 의료 체계의 상부 고리가 흔들려 동네 의원에서 중환자가 발생해도 이송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6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모집정원 공고를 내면서 레지던트 1년차 3399명은 발표했지만 인턴 정원은 공고도 못 했다. 내년 3월 1일 병원에 배치해야 하지만 전공의 파업 당시 의대 졸업생 대부분이 실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응시 대상자 3172명 중 미응시자는 2749명으로 87%였다. 의대 졸업생은 필기와 실기 시험을 모두 합격해야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다. 내년 1월 7, 8일 치러지는 필기시험에는 실기시험 응시 대상자 3172명을 포함해 3196명이 원서를 냈다. 이제 실기 재응시가 진행되어야 한다. 10년간 4000명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하며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이 끝내 재응시하지 못하면 내년 각 병원에서 필요한 인턴은 최대 2700여 명이 부족할 수 있다. 의사 국시 실기는 준비와 시행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험은 마네킹 환자를 대상으로 채혈, 소변줄 삽입 등 50여 가지 시술 중 6가지를 각 5분씩 수행하는 ‘오스키(OSCE) 시험’과 환자 대역 배우 6명을 상대로 각각 10분간 진찰을 하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임상 시험(CPX)’, 그리고 실기시험 간 쪽지 시험 격인 ‘사이 시험’ 등으로 이뤄진다. 수험생 1인당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더욱이 서울의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서만 치르기 때문에 시험에만 2개월가량이 걸린다. 당장 재응시 결정을 내려도 내년 3월은커녕 5월까지도 인턴을 배치하기 쉽지 않다. 문제는 사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 전시’에 팔짱만 “총파업으로 인한 국민 불편은 송구하지만 대국민 사과 계획은 없다.”(대한의사협회) “정부와 의료계만이 아닌 국민 여론의 문제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의대생들의 국시 재접수를 반대한다.”(청와대 국민청원) 의대생 실기시험 재응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의료 대란의 초강력 태풍을 눈앞에 두고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10월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 성명)는 절박한 호소가 무색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방역 최전선의 의료진 확보가 시급한 가운데 누구도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는 졸업 예정인 의대생에게 의사 시험을 면제하고 8, 9개월 일찍 진료 업무를 시작하도록 한다. 방역 전쟁에 마치 ‘의료 학도병’을 투입시키는 듯한 이런 긴박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은 8일부터 2.5단계로 격상했고, 경찰에 처음 방역으로 을호 비상경계를 발령했다. 체육관 임시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야흐로 비상이다. 타국에 비해 백신 확보도 늦어 ‘국민적 방역과 의료진의 분투’로 상당 기간 버텨야 한다. 중환자 시설이 있어도 의료 인력 부족으로 치료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데도 2700여 명의 의대생들이 의사 면허증이 없어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한 해 인턴 결손 부작용 일파만파 재응시 문제가 풀리지 않아 인턴 배출이 한 해 늦어지면 우선 내년 3월부터는 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부족해진다. 그런 데다 내후년에는 레지던트를 뽑을 인력이 없어 전공의 공백이 시작된다. 한 해 채우지 못한 그 공백은 레지던트 과정 4년간 연차가 올라가며 계속된다. 전공의 한 해 결손의 여파는 군의관 보충 차질로까지 연결된다. 전공의 파업으로 3차 의료기관의 응급실에 가지 못해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증세가 악화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한 해 의사가 배출되지 않으면 2000명 이상의 전공의가 4년간 파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빚어진다. 올해 인턴에 올라가지 못한 의대생들은 내년 하반기 후배들과 인턴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 2000명 이상이 수련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가 부족하고, 상당수 인원은 외부에서 떠도는 의료 인력의 비효율과 낭비가 지속되는 것이다. 의료 인력은 한 해 시험을 보지 못하면 다음 해에 모두 합격시켜서 털 수 없는 특성 때문이다. 이런 의료 인력의 왜곡 현상이 빚어내는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환자들이다. 신규 의사 면허자가 한 해 없어지면 의료 취약 지역 공중보건의 배치에도 비상이 걸린다. “사실상 답이 없다”연세대 의대의 경우 신촌세브란스병원만 한 해 필요한 인턴 인력이 100여 명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이번에 실기시험에 응시한 학생 400여 명을 기존 배치 비율대로 복지부에서 배분받는다고 해도 10명도 채 안 돼 진료 현장의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선병원 김광민 실장은 “6, 7명의 인턴을 뽑지 못하면 어떻게 메울지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보건 당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방안 중에는 ‘공개된 불법’이라는 말까지 있는 ‘PA(Physical Assistant) 간호사’의 활용이 있다. ‘PA 간호사’는 간단한 봉합 등 의사가 해야 할 일을 간호사가 돕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나 이를 공식화하거나 합법화하는 데는 의사들의 반발이 크다. 여당 의원은 이를 엄벌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복지부에서도 단속을 강화하는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아쉬운 대로 땜질을 할 수 있는 궁여지책이라지만 갈 수 없는 길이다. 전공의들의 야간 당직을 대신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의사가 야간 당직만을 맡게 하는 것이다. 적정한 수가 책정도 안 되어 있고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인턴이 없으면 레지던트가 대신하고, 전공의가 할 일에 교수들이 투입된 것은 전공의 파업 때 벌어졌던 현상이다. 하지만 교수가 전공의 업무에 투입되는 만큼 진료나 수술이 줄어들거나 피로가 쌓여 장기간 지속할 수는 없다.환자 생명-국민 건강이 최우선 지금 상황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백기를 들고 나오라고 할 수도 없다. 학생들은 2번이나 연기된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지만 대한의사협회 김대하 대변인은 통화에서 “명분이 있었던 만큼 시험 거부 외에 달리 의사 표현 수단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비판적인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능후 장관이 재응시 허용을 위해서는 “국민의 양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다. 정부는 여론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여론 뒤에 숨거나 끌려가기만 해서도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상당 기간 계속되는 가운데 의사 부족으로 인한 의료 공백으로 예기치 못한 환자의 피해가 발생하면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부터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지금 준비해도 의료 공백에 대비할 시간은 빠듯하다. 대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2020-12-09 03:00 
“허위 자백이라도 안 했으면 지금 살아 있겠습니까”[논설위원 현장 칼럼]‘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가 다음 달 2일 ‘8차 사건’ 증인으로 수원지방법원에 나온다. 이춘재가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을 복역하고 나온 윤성여 씨(54)의 재심 9차 공판이다. 이춘재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돼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이춘재의 자백이 법정에서 사실로 확정된다면 윤 씨의 20년 복역은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한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법 피해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재심 판결은 12월 나올 예정이다. 2009년 출소 후 충북 청주의 한 자동차용품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 씨를 24일 오전 그가 복역했던 청주교도소 정문 앞에서 만났다. 윤 씨가 실명과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자신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앞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 태안읍 진안리에 살던 박모 양(13)이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중 오전 1시경 성폭행을 당하고 피살됐다. ‘연쇄 살인 7차 사건’ 발생 9일 뒤였다. 윤 씨는 1989년 7월 체포돼 이듬해 5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다. 20년형으로 감형된 뒤 만기 몇 개월을 앞두고 출소한 지도 10년여가 지난 지난해 9월 ‘이춘재의 자백’이 나왔다. “재판은 선고 내려져 봐야 압니다” “여기서 19년 6개월을 있었습니다.” 그는 교도소 정문이 보이자 탄식처럼 말했다. “장애인 복지기관 자원봉사를 위해 몇 번 밖으로 나온 것 말고는 안에서만 생활했다”는 윤 씨에게 재심 선고를 앞둔 심경을 물었다. “재판은 선고가 내려져 봐야 압니다.”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진술을 했다’며 경찰이 지난해 11월 ‘이춘재가 진범’이라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올 1월 재심이 받아들여져 재판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지만 윤 씨는 여전히 재판 결과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윤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뒤 ‘경찰 조사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며 항소했다. 왜 검찰 조사나 1심 재판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는지부터 물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내가 허위 자백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겁먹게 했을까. 그는 “당시는 상황이 그랬다”고만 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재판에서 3세 때부터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상황에서 윤 씨에게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고 증언했지만 윤 씨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한 경찰관은 구타도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현장을 지휘했던 당시 형사계장은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공개 재판 법정에서라도 억울하다고 말해 볼 생각은 못 했을까. “재판을 기다리는데 다른 미결수들이 ‘공소장의 죄로만 보면 사형이다. 화성 살인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어서 선고하자마자 형이 조기 집행될 수도 있다’고 했다. ‘법원 괘씸죄’라는 말도 들었다. 경찰과 검찰에서 인정한 것을 부인하면 그렇다고 했다.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윤 씨는 “변호사를 구할 수도 없는데 죄를 부인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주위에서 조언이나 변변한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정보와 불안, 공포 등이 뒤섞여 자기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듯했다. 윤 씨는 1심 판결이 나온 뒤 항소했지만 1년도 안 돼 2, 3심에서도 그대로 원심이 확정됐다. 국과수 감정서 미스터리 서울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모친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친척이 있는 화성으로 보내진 윤 씨는 11세에 경운기공업사에 들어가 줄곧 일했다. 1989년 7월 25일 저녁 하루 일을 마치고 공업사 사장 등 6, 7명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는데 경찰이 와서 “잠깐 가자”고 했다. 따라나섰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윤 씨는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조사한다길래 7번가량 체모를 뽑아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경찰서나 파출소 한번 가보지 않았던 그는 당시에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경찰은 피해자의 몸에서 채취된 범죄 용의자의 체모에서 티타늄 등 금속 성분이 다량 검출되자 윤 씨를 포함해 금속을 취급하는 업종 종사자를 대상으로 탐문 및 체모 채취 조사를 벌였다. 당시 이춘재도 전기 업체에서 근무했지만 ‘화성 6차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혈액형이 달라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현장 체모와 윤 씨 체모가 일치한다는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서’를 전달받은 다음 날 윤 씨를 체포했다. 지난달 14일 수원지법 7차 재심 공판. 재판부는 1989년 윤 씨 사건 재판 당시 자백 외 유일한 과학적 근거로 제시됐던 국과수 ‘감정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1989년 감정서는 현장 체모와 윤 씨 체모의 유사성이 ‘3600만 분의 1’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3600만 명 중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서로 유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 감정서에는 그 같은 결론을 스스로 부정하는 내용들도 담겨 있었다. 두 체모 간 10여 종 금속물질의 방사성 동위원소의 편차율은 40%였다. 통상 5%, 최고 20%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다 염소는 170(현장 체모) 대 1572(윤 씨 체모), 마그네슘은 198 대 844(단위 ppm) 등으로 몇 배 차이가 났다. 하지만 1989년 재판에선 누구도 그런 내용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번에 윤 씨의 재심 재판에 나선 국과수 등 전문가들은 “도저히 같은 시료(체모)라고 볼 수 없다”고 증언했다. 법무법인 다산과 함께 윤 씨 재판을 맡고 있는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편차율 40%’가 ‘유사성 3600만 분의 1’로 둔갑돼 윤 씨를 범인으로 모는 ‘확증 편향’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재심 증언대에 선 윤 씨 기소를 담당했던 검사는 “감정서의 숫자는 자세히 보지 않고 ‘일치한다’는 국과수의 결과만 믿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과수에서 감정서를 작성한 책임자는 건강 악화로 증언을 못하고 있다. 윤 씨는 잠시 휴정 시간에 “감정서를 보고 담당 검사의 말을 듣고 있으니 ‘쑥쑥 오른다’(부글부글 끓는다)”고 했다. 한 사건, 두 명의 자백 윤 씨 재심 사건에서 핵심은 감정서의 신뢰성과 함께 이춘재와 윤 씨의 자백이다. 윤 씨는 경찰에 체포된 후 범행을 ‘자백’하는 자술서를 3차례에 걸쳐 10쪽가량 썼다. 윤 씨는 “연행된 뒤 3일간 잠을 한숨도 재우지 않아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정신없이 썼던 것 같다”고 했다. 자술서는 피해자의 목을 조를 때 맨손을 사용하고 범행 후 피해자의 아래 속옷을 벗긴 후 그대로 다시 입혔다고 했는데 현장 상황과 달랐다. 초등 3년을 마친 피의자가 썼다고 볼 수 없는 표현도 여러 곳이라고 변호인 측은 설명했다. 반면 경찰이 지난해 이춘재를 진범으로 잠정 결론 내리면서 범인만이 아는 ‘의미 있는 진술’을 몇 가지 예시했다. 피해자의 신체 특정 부위에 대한 설명, 박 양의 방 구조를 펜으로 그려가며 설명한 점, 벗은 양말로 목을 조른 범행 수법과 범행 후 피해자의 새 속옷을 뒤집어 입히고 나왔다는 내용 등이 범행 당시 상황과 같았다는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윤 씨가 열린 대문을 두고 자신의 키 높이보다 높은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나왔다는 진술이나 현장 검증 내용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변호인 측은 주장했다. 여기서 한 가지. 현장 체모의 혈액형은 B형으로 이춘재의 O형과도 다르다. 이춘재가 진범이라면 현장에서 채취된 체모가 어디서 나왔는지, 혈액형 조사가 정확했는지가 문제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던 현장 체모 두 점은 오랜 시간이 지나 최근 유전자 검사 등 첨단 감식을 의뢰했으나 ‘감정 불가’ 판정이 나왔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춘재가 자백한 10건의 화성 연쇄 사건 중 5건은 유전자 검사로도 확인됐다. 엄숙히 지켜봐야 할 재심 결과 지난해 9월 윤 씨는 퇴근하고 집에서 오후 8시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청주교도소에 있을 때 근무했던 박모 계장이 이춘재의 자백 사실을 알려줬다. 평소 뉴스나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 윤 씨는 그에게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 며칠 전 이춘재를 다시 조사하던 경찰이 찾아와서 “8차 사건도 다시 보려고 한다”고 했지만 자백 얘기는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윤 씨는 이춘재의 자백 소식을 듣고 반갑거나 놀라기보다 ‘화성’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기만을 바랐다고 했다. “주위에 화성 8차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것을 감추고 오랫동안 살아왔다. 내가 화성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져서 뭐가 좋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재심을 청구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미 20년을 복역하고 나와서도 10년이 지났다. 잊혀졌던 화성 사건이 자꾸 들먹여지는 것이 싫었다.” 12월에는 1991년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21년간 옥살이를 했던 두 명에 대한 재심 판결도 나올 예정이다. 재심 결과는 당사자뿐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에도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이 모두 무죄로 나온다면 사법 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아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청주·수원=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2020-10-28 03:00 
‘코로나 후유증’ 공포[횡설수설/구자룡]“퇴원 165일째지만 계속되는 후유증은 크게 5가지다. 잠깐 전 일도 기억 안 나고 머리가 멍한 ‘브레인 포그(Brain Fog)’, 가슴과 위장의 통증, 피부 변색과 건조증, 만성 피로….” ‘부산 47번 환자’ 박현 교수(48)가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코로나19가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끝이 아닐 수 있음을 경고한다. 무증상 감염, 전파력과 치사율이 동시에 높은 특징 등에 이어 치료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공포까지 더해져 코로나와의 전쟁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여배우 얼리사 밀라노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퇴원 후에도 4개월 동안 현기증, 위통, 숨가쁨, 단기 기억력 상실, 불쾌감 등을 겪고 있고 머리카락도 뭉텅뭉텅 빠진다며 사진을 올렸다. 영국 찰스 왕세자와 미국프로농구 선수 뤼디 고베르는 완치 후에도 후각과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첫 발병 이후 9개월이 되어가면서 나오는 연구나 증상 보고들은 코로나는 더 이상 호흡기 질환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바이러스가 전신을 감염시켜 폐와 뇌, 피부까지 파고들어 브레인 포그와 만성 피로, 심장부정맥과 심혈관 합병증 등을 일으킨 사례들이 보고된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 중 하나는 혈소판 과잉반응이다. 출혈 시 피를 멎게 하는 기능이 혈관 내에서 일어나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유발할 수도 있다. ▷급성 호흡기 질환인 사스도 완치 환자의 27%가량이 수년간 만성피로증후군을 겪었다는 연구가 있지만 코로나의 후유증 범위는 아직 다 드러나지도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가 섬망증(환각 초조 과잉행동을 동반한 정신질환), 우울증 등도 유발할 수 있다며 ‘전례 없는 정신보건 위기’라고 경고했다. 미국 파우치 소장은 “바이러스 한 종이 이처럼 광범위한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항체의 단명’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연구진은 무증상 감염자의 40%가 두 달 뒤 항체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29세 남성 변호사는 두 번째 확진을 받고 치료 중인데 치료돼도 또 감염될 수 있다고 의료진은 우려한다. ▷미국의 보고를 보면 걸렸는지도 모른 채 넘어간 이들이 많지만, 발병해 완치된 뒤에도 “짧은 대화도 하기 어려워 몇 분마다 호흡기를 사용”하거나 “극도의 피로감으로 단 1분만 걸어도 지친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완치 후에도 일부는 각종 후유증으로 ‘건강과 질병의 중간 지점’의 삶을 살 수도 있다. 코로나는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 정도로는 부족한,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막아야 하는 난적이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2020-08-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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