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도약’을 목표로 한 정부 경제팀의 경제 구조 개혁 구상이 출발부터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동, 교육 개혁안이 발표되자마자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 추진하기로 한 군인연금, 사학연금 개혁 방안이 하루 만에 뒤집혔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을 경제 개혁 원년으로 삼겠다”는 정부와 개혁 피로감에 따른 불만을 쏟아내는 새누리당 사이의 엇박자가 공공연하게 표출되면서 노동 교육 금융 공공 등 4대 부문 개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하루 만에 말 바꾼 기획재정부
정부가 군인·사학연금 개혁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인 지난해부터다. 국민연금과 공적연금의 형평성 논란이 일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협의를 거쳐 합리적 방향으로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군인·사학연금 개혁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2월 내놓은 ‘경제개혁 3개년 계획’에서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3개 공적연금에 대해 내년에 향후 필요한 재정을 다시 계산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22일 발표한 내년 경제정책방향에는 사학연금은 내년 6월, 군인연금은 10월에 개혁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뒤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한 이후 군인·사학연금도 자연스레 검토해야 되지 않나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혼선이 시작된 것은 22일 오전 정부와 새누리당의 당정회의에서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군인·사학연금 개혁 일정을 밝히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당과 상의가 없었다”며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일 오후 8시 정부는 보도 참고자료를 내놓고 “군인·사학연금 개혁안 마련의 구체적인 일정을 사전에 정해놓고 추진하고 있지 않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어 23일에는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편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군인·사학연금 개혁 방침을 뒤집었다. 이런 혼선이 빚어진 데 대해 기재부는 “관계 부처 실무자 간 협의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제정책방향이 통상 3개월 안팎의 준비 과정과 여러 차례의 청와대 보고, 관계 부처들의 검증 과정을 거치는 만큼 단순한 실무자 착오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새누리당 “정부가 고춧가루”
정부가 당초 군인연금, 사학연금 개혁안을 꺼내든 것은 이들 연금이 이미 적자거나 조만간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군인연금은 1973년에 이미 기금이 고갈돼 42년째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 아직까지 흑자인 사학연금도 2023년부터 적자 전환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군인·사학연금 개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연금 개혁이 완료된 이후 추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기 3년차로 반환점을 도는 내년에 군인·사학연금 개편을 시작하지 않으면 임기 내에 개혁을 끝내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분간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점도 군인·사학연금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후 공무원연금 개혁 토론회 축사에서 “당과 상의도 없이 정부가 마음대로 밝히면 되나. 기가 막힌 심정”이라면서 “이 정부의 무능”이라고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이어 “공무원연금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일절 다른 연금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새누리당의 반발은 그동안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공무원연금 개혁과 누리과정 재원 배분 등의 논란이 잇따른 가운데 정부가 내년에 더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할 뜻을 밝히자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에 이어 전통적인 새누리당의 지지층인 군인들까지 등 돌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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