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이광구 카드’… 靑개입-정치금융 논란에 기름 부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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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행추위, 행장후보에 이광구 부행장 선출
李후보, 취임전부터 리더십 상처… 민영화 과제 해결에 회의적 시각
두쪽난 조직 추스르기도 난제

반전은 없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1일 돌연 연임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뒤 ‘정치(政治)금융’ 논란이 불거졌지만 내정설이 돌았던 이광구 부행장이 그대로 차기 행장에 뽑혔다.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졌던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과 김승규 부행장은 고배를 마셨다. 정부 관계자는 “이미 청와대에서 쉽게 의중을 바꾸진 않을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예상됐던 결과”라고 평했다.

사실 지난달 초까지도 이 행장의 무난한 연임이 예상됐다. 하지만 ‘판’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당초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던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 이 부행장이 갑자기 급부상하더니 이 행장과 2파전을 벌였다. 곧이어 이 부행장 내정설과 대세론이 돌았다. 이 행장은 연임 포기를 선언한 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판이) 돌아가는 것 보면 내가 모르겠나”라며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암시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김승규, 김양진 후보가 거명될 때부터 이광구 부행장을 위한 각본이 짜인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5일 후보당 70분씩 심층 면접을 치렀지만 형식적인 절차였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탈락한 한 후보는 “사실 다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니냐. 문제의식을 갖고 바꿔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장 선출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금융권에는 앞으로 거센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서금회’ 논란으로 취임 전부터 리더십에 흠집이 난 이광구 부행장이 민영화란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계열사 매각은 잘 진행됐지만 가장 중요했던 우리은행의 경영권 매각은 불발됐다.

조직 내부갈등을 치유하는 일도 이 부행장에게 놓인 과제 중 하나다. 그간 우리은행은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간 불협화음을 줄이고자 양쪽이 번갈아 행장 직을 맡아 왔다. 하지만 이 부행장이 이 행장의 뒤를 이음에 따라 상업은행 출신이 연거푸 행장 직에 오르게 됐다.

정치금융 논란과 비판을 무릅쓰고 우리은행장 인선에서 자기주장을 관철한 정부에 대한 금융권의 불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노조는 이날 오전 “관치 인사에 반대한다”며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관망하기만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금융당국이 향후 금융권에 예전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후보 추천 과정에서 이 행장 등 3명을 청와대에 올렸지만 모두 반려당하면서 인사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현직 부행장이 행장으로 올라가는 모양새가 나쁜 것도 아닌데 너무 정치금융 논란으로 모든 게 해석되니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날 이 부행장을 면접한 한 행장추천위원회 위원은 “이 부행장이 ‘조직을 이끌어갈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자꾸 출신 대학이 거론되니 자존심이 상했다. 개인의 능력을 더 봐 달라’고 면접에서 말했다”고 전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유재동 기자
#이광구#우리은행#정치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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