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공장’서 유전자 조립… 비싼 치료제 뚝딱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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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 ‘바이오디자인’… 환경오염 없이 대량생산 가능

넓은 공장 터와 대규모 설비가 필요 없는 ‘세포 공장’이 미래산업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명체를 원하는 대로 설계해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바이오디자인(합성생물학)’ 기술 덕분이다.

바이오디자인된 생명체를 이용하면 1g에 수천만 원 하는 물질을 환경오염 없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런 효과를 반영하듯 바이오디자인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10대 기술’에 10년 동안 4번이나 선정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바이오디자인이 바이오혁명의 중심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2011년 김선창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사진)를 단장으로 하는 ‘지능형 바이오 시스템 설계 및 합성 연구단’을 글로벌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단으로 선정해 9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 유전자 설계하는 바이오디자이너

그동안 생명과학은 생명 현상의 신비를 밝히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알려진 지식을 활용해 인류에게 필요한 물질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혔다. 대표적인 예로 과학자들이 대장균에서 인슐린을 많이 만들기 위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영양물질의 농도를 조절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생산율은 한계에 이르렀다.

김 단장과 같은 ‘바이오디자이너’는 대장균을 키우는 환경을 바꾸는 데서 벗어나 대장균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데 주력한다. 우선 대장균의 유전자를 단순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대장균은 진화 과정에서 추위나 더위, 바이러스의 침입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유전자를 복잡하게 진화시켜 왔다.

하지만 인슐린을 만들 때는 이렇게 복잡한 유전자가 필요 없다. 과학자들은 대장균에서 각 유전자의 기능과 이를 조작하는 기술을 활용해 필요 없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또 대장균이 인슐린을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하고 각 반응이 빨리 일어나도록 설계해 인슐린 생산 효율을 극대화했다.

○ 산삼의 ‘사포닌’도 세포 공장에서 뚝딱

바이오디자인으로 만든 세포 공장은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품질 좋은 약용 물질과 기능성 소재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먹이로 삼아 유용한 물질로 바꿀 수도 있다.

실제로 연구단은 인삼에 많이 들어 있는 약효 물질 ‘사포닌’을 미생물에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효모에 사포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넣어 일주일 만에 20년 된 산삼에서나 나올 수 있는 농축 사포닌을 만들었다.

암을 헤집고 들어가 암세포 마지막 하나까지 처리하는 바이러스도 설계했다. 폐암이나 위암처럼 증세가 심해질수록 딱딱해지는 고형암은 기존 항암제로는 암 깊숙이 침투할 수 없어 치료가 힘들었다. MIT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바이러스는 암 안에 살면서 암세포가 내는 신호를 인식해서 그 신호를 차단하는 물질을 생산한다. 이 바이러스는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 중이다.

바이오디자인은 생명체를 재설계한다는 점에서 위험성 논란이 일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연구단은 세포 공장을 처음 만들 때부터 특정한 환경을 벗어나면 공장이 ‘폐쇄’되도록 다중의 잠금장치를 마련했다. 온도나 산소의 농도, 영양성분 등 어느 하나라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살 수 없게 한 것이다. 김 단장은 “산업혁명이 속도와 편의성을 가져왔다면 바이오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혁명은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더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세포공장#바이오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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