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무조건 없애면 다인가

  • 동아일보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24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각 매체는 실시간 속보로 이 상황을 전했다. 누리꾼들은 후보자 개인에 대한 의견, 좌충우돌하는 인사 문제로 인한 피로감 등에 대해 다양한 댓글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유독 추천수가 많았던 한 댓글은 이러했다.

‘총리실 해체하면 되지.’

일견 너무 어이없는 댓글이지만 원천을 따져보면 박근혜 대통령 발언의 패러디다. 박 대통령은 5월 19일 세월호 사고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말해 국민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난 한 달간 총리 후보자가 두 번씩이나 낙마하고, 결국 자진해서 물러나겠다고 한 총리가 유임되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저 댓글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웃자고 쓴 댓글에 맘 편히 웃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교육을 담당하는 기자이기 때문이다. 맘에 안 들면, 혹은 기대에 못 미치면 없애버리자는 말은 적어도 교육계에서는 낯선 말이 아니다.

세월호 사고가 수학여행 중에 일어난 탓에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잠정 중단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영세 여행업체 중 일부는 부도를 맞을 정도로 여행업계 전체가 위축됐다. 세월호 사고의 본질이 수학여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교 차원의 단체활동이 중단되자 일부 학생들은 ‘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났을 때 정부가 백화점을 없애지 않았느냐’고 비꼬기도 했다.

6·4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정치권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는 교육감 직선제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여당에서는 교육감 직선제를 없애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교육감 직선제가 이번 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교육감 직선제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을 보면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경쟁교육에 지친 많은 유권자들이 진보 교육감들이 지향하는 방향에 전반적으로 공감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사고에 다니고 있거나, 자사고 진학을 염두에 둔 중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폐지 추진이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제도나 정책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로 인해 ‘적폐’가 쌓여 갈 때 가장 확실하고도 간단한 해법은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세월호 사고에 대해 해경 해체라는 답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제도든 생겨난 연유가 있고, 또 그런 제도가 오래 운영됨으로써 관련된 사람들의 신뢰 이익이 쌓여 온 측면도 있다. 교육감 직선제의 경우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부합하는 제도라서 도입된 것이고, 특목고나 자사고의 경우 수월성 교육에 대한 국민의 수요와 필요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거나 정책 집행자들의 마음에 안 드는 결과가 발생할 경우 무조건 없애버린다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특히 교육 정책은 조금만 달라져도 현장의 혼란이 극심하다. 특정 제도를 없앴을 때 어떤 부작용이나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찬찬히 살피는 ‘어진 정책’이 절실하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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